어느 호주인의 어이없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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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이 기사는 의료관광의 비극적 단면을 부각해서 의료관광 자체를 부정하고, 나아가 의료관광을 포함한 의료산업화를 추구하는 현 정부를 비난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한겨레 신문이니, 이해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기사만으로 놓고 보자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첫째, 비만 당뇨 등 고위험군에 속하는 환자가 외국에서 입국한 바로 그 다음 날 환자에 대한 충분한 검사나 수술전 평가없이 곧 바로 수술한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둘째,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전신마취 하에 이런 수술을 진행하고, 합병증이 발생하자, 2차 3차 수술을 강행한 것이 바람직한 의료 행태일까 의문이다.

셋째, 정작 문제가 발생한 후 서울 시내 3군데 병원을 전전하다가 천안 까지 가야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대개 이런 식으로 환자를 전원 시킬 때에는 보낼 병원에 미리 연락해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병실을 확보한 후 상대 병원이 OK 해야 환자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기사로만 보면, 사설 앰브란스에 환자를 싣고 무작정 다른 병원으로 보낸 것처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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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관광은 “대세”이다. 우리나라만 대세인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최근 들어 진료를 받기 위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향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류의 소득 수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된 측면도 있고(소득이 증가하면, 소득 증가율보다,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더 커진다), 예전같았으면 포기했을 환자들이 정보의 발달로 새로운 치료 시설과 방법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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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관광의 가장 큰 맹점은 사고가 났을 때이다. 의료 사고란 명백한 의료 과오에 의한 사고와 예기치 못한 불가피한 의료 사고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즉, 의료 사고가 반듯이 의료 과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치료를 받다가 의료 사고가 날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다.

왜냐면, 통상적으로 의료 과실에 의해 환자가 피해를 받았음을 환자나 환자 가족이 입증해야 하는데, 대개는 수 년이 걸리는 지리한 민사 소송을 거쳐야 하며 소송은 국내에서 벌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 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을 생각하지 않는 환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한국에 와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와서 진료받는 외국인들은 대책없이 혹은 무작정 한국 의료를 믿고, 들어와 치료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2012년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즉, 약칭 의료분쟁조정법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을 국민이 아니더라도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발생하는 모든 의료 사고로 확대하는 것을 법문화하여 이에 대한 안전 장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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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조(적용 대상) 이 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보건의료기관에 대하여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에도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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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외국인이 국내에서 진료를 받던 중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분쟁조정원에 조정 신청을 하게 되면, 그것이 의료 사고인지, 사고라면 의료 과실에 의한 것인지를 조사해 주고, 피해 보상을 위해 조정까지 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걸리는 시간은 통상 90일 이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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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의 가해자 꼴인 <강 원장>은 신해철 씨 사망 사건으로 이미 유명세를 치룬 의사이다.

신해철 사건과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수술 후 모두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 하려다가 환자 상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다른 병원으로 이송 시켰다는 것이다.

강 원장이 수술할 때, 마취는 누가 했는지, 수술 보조는 과연 누가 했는지도 의문인데, 의원급 의료기관이라 할지라도, 이런 류의 수술을 하는 것이 용인된다고 치더라도, 합병증이 발생했을 경우의 대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외국 환자 유치 업자들이다.

기사대로라면 현지의 의료관광 전문 여행사를 통해 강 원장을 소개받았다고 하는데, 그 현지 여행사는 한국인 혹은 한국 교포가 운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 여행사는 국내 브로커 혹은 국내의 유치업자와 연계하여 국내 병원을 소개하고 환자를 유치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과연 합법적인 유치 업자를 거친 것인지도 의문이며, 규모있는 병원들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의원급 의료기관을 소개 했는지 역시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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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수술을 위해 외국으로 갈 경우 보호자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국영의료를 제공하는 일부 국가의 경우, 자국 환자를 외국으로 보낼 경우 자국 의사를 동반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수술 후 환자를 가료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수술에 대한 설명을 같이 듣고 수술 후 문제가 생길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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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행위는 근원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악의적으로 사람을 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행위 결과에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처벌하지 않으며,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료 사고에 대해 받아들이는 인식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체감적으로 보자면, 그것이 의료 과실이든 아니든 병원과 의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질 경우, 그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으며, 의료 사고를 법적으로 다루는 경우 역시 우리나라 보다 적다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이나 호주, 캐나다처럼 국영의료를 제공하는 나라일수록 이런 가치관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호주인의 경우, 강 원장 입장에서는 <무연고 환자>를 수술한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강 원장은 환자에게 사망을 포함한 수술 합병증을 모두 설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설명을 들은 환자는 사망했으므로 이를 반론할 방법이 별로 없고, 검찰이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가족이 민사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즉, 안타깝게도 한 호주인의 죽음으로 강 원장의 의료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의사의 시각에서 본 강 원장의 의료 행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하고 불만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가 한 모든 행위가 법망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도의적으로라도 그는 더 이상 메스를 잡아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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