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라에네크와 청진기








청진기는 의사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다.

2월 17일은 청진기를 고안한 르네 라에네크 (René Laennec)가 태어난 날이다. 구글은 이를 기념하는 두들을 게재했다.



사실 "가슴 소리를 들어 진단한다"는 건 르네에 의해 정립된 개념이 아니다. 이미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어떤 환자에게는 특별한 가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후 각 자의 방법으로 가슴 소리를 들어 왔는데, 가장 흔한 방법은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는 것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불편한 일이었으며, 르네가 활동한 19세기 프랑스에서도 그랬다.

결국 르네는 구멍이 뚫린 나무 파이프를 통해 가슴 소리를 듣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청진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청진기를 뜻하는 영어 Stethoscope는 "가슴"을 의미하는 Stetho 와 "본다"는 의미의 scope 가 합쳐진 용어이다.

이후 여러 의사들에 의해 진보를 거듭 했는데, 현재 널리 사용하는 청진기는 1960년 대에 데이빗 리트만(David Littmann)에 의해 만들어졌다.

리트만 박사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하바드 의대의 심장내과 교수였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청진기를 특허 내고 의사용과 간호사용으로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후에 3M은 이 회사를 인수한 후 리트만 박사를 고문으로 고용했으며, 현재까지 다양한 리트만 브랜드의 청진기를 양산하고 있다.

3M 리트만 청진기가 가장 널리 쓰이는 브랜드이긴 하지만, 일본 Kenzmedico, 독일의 ERKA 브랜드의 청진기도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과연 청진기는 의사의 심볼에 불과한 것일까?

사실 최근 들어 청진기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는 경우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폼으로 청진기를 목에 걸고 다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영상 기기, 진단 기기들이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청진처럼, 비침습적(non-invasive)으로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진단 방법은 별로 없다.

특히 폐나 심장을 다루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비침습적 진단 검사란, 환자에게 위험하거나 유해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X-ray나 CT는 아무리 작은 양이라도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유해성이 있고, 혈관조영술과 같은 검사는 혈관을 통해 관을 집어 넣어 이루어지는 검사이므로 보다 더 위험하고 유해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초음파 검사는 대표적 비침습적 검사이다. 청진도 마찬가지이다.)

청진기는 심장 소리(심음)과 호흡 소리(폐음)을 듣는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진단 기기이며, 이를 위해 사용한다.

또, 장의 소리를 듣거나 기관(endotracheal tube)이나 L-tube와 같은 위배액관를 삽입한 후 제대로 집어넣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간호사들은 혈압 측정을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심장 소리를 들어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대부분의 선천성 심장 기형은 독특한 심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청진만으로도 심장 기형을 진단할 수 있다. 특히 청색증을 보이지 않아 조기 진단이 어려운 선천성 심장 기형은 감기 같은 다른 질환으로 소아과를 방문했다가 진단되는 경우도 많아 소아 심장 질환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상 심장에서도 소리는 들린다.

심장에는 모두 4개의 밸브가 있는데, 이 밸브가 닫힐 때 와류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중 첫번째 들리는 소리는 심방과 심실 사이에 있는 밸브(들)이 닫힐 때 들리는 소리이며, 두번째 소리는 심실에서 동맥(폐동맥이나 대동맥)으로 피가 나갈 때 들리는 소리이다.

심음은 주로 밸브에 의해 생기므로, 밸브에 병이 있을 경우 독특한 심음이 들리는데, 이를 심잡음 혹은 murmur라고 한다.

밸브의 질병이란 주로 밸브의 협착이나 폐쇄부전을 말한다. 이를테면, 대동맥 밸브 협착이 있을 경우에는 첫 심음과 두번째 심음 사이를 잇는 심잡음이 들리고, 반대로 대동맥 밸브 폐쇄부전이 있을 경우에는 두번째 심음이 들린 이후 첫번째 심음이 들릴 때까지 심잡음이 들리는 식이다.

심장 소리가 혈액의 와류에 의해 생기는 것처럼 폐음은 공기의 흐름의 변화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관지 천식은 말단 기관지가 좁아지기 때문에 생기는 병인데, 공기가 이 좁은 기관지를 지날 때, 마치 피리에서 소리가 나듯 높은 음(high pitch)의 독특한 소리가 들린다. 이를 천명(wheezing)이라고 한다.

폐렴의 경우에도 폐음이 들리는데, 이는 컵에 물을 담고 빨대를 꽂아 공기를 불어넣을 때 나는 소리와 유사하다.

폐렴은 폐포에 점액이 차게 되는데, 점액이 찬 폐포에 공기가 들어가면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를 수포음(rale)이라고 한다.

늑막 질환에서도 소리는 들린다. 폐를 싸는 장측 늑막과 가슴벽 안쪽을 싸는 벽측 늑막 사이에 물이 차는 늑막염이 걸렸거나 종양이 있는 경우 이 두 늑막이 서로 비벼지면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때로 심장 소리가 아주 멀리에서 들리는 것 처럼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심장을 싸고 있는 심낭 안에 물이나 피가 차기 때문인데, 보통 응급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폐음이 작게 들리는 경우도 있는데, 가슴에 공기가 차는 기흉인 경우에 그러하다.

심음과 폐음이 모두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심정지, 호흡 정지 상태로, 사망한 경우이다. 그래서 사망 선언을 하기 위해서도 꼭 청진기가 필요하다.

201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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