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북미의 ‘노가다’들은 현장에 적합한 공구나 자재가 없으면 준비될 때까지 일손을 놓는다.
한국의 ‘노가다’들은 현장에 공구가 없으면, 앉아서 뚝딱뚝딱 공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불문율은 공기 단축, 경비 절감이므로 공구나 자재가 없다고 일손을 놓고 기다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를 외치며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한다. 얼기설기 만든 대용 공구나 자재로 땜빵하는 건 한국이 일등이다.
그러나, 시방서 원칙대로의 자재와 원칙에 맞는 공구로 작업한 걸 따라갈 수는 없다.
병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 의사들의 머리와 재주는 세계적이다.
게다가 한국 건설 현장의 노가다들처럼 어떻게든 치료해야 한다는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의사가 대부분이다.
선진국 의사들 시각에서, 한국 의사들처럼 장시간 일을 하거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환자를 보거나, 동시에 수 많은 입원 환자를 관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술, 처치, 검사 소모품의 불인정, 삭감을 당하며 진료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대장 용종을 떼내는데 몇 개만 인정해주고 나머지는 보험 인정 해 주지 않으면, 인정해주는 만큼만 떼내는게 맞다. 용종을 떼내고 출혈이 우려되어 클립이 써야하는데, 보험 인정이 안되면 대장내시경으로 용종 떼는 건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의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정하든 않든 보이는대로 다 떼내고, 돈을 받든 못 받든 일단 클립으로 지혈하고 본다.
이렇게 해줘 버릇하니, 안하는 의사가 나쁜 놈이 된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북미의 노가다들은 절대 무거운 짐을 한번에 나르지 않는다. 딱 질 수 있는 만큼만 들어 옮긴다. 결코 헉헉거리며 일하는 법도 없다. 오늘 하루만 일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가다들은 그렇지 않다. 죽자살자 일한다.
한국의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만 일하고 죽을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 붙인다.
그런다고 칭찬받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다 떠 안아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된 외상센터 문제나 소아중환자실 사건의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적합한 공구나 자재가 없을 때 손을 놔 버리지 못하는 건설 현장과 유사한 이유 때문이다.
싸구려 치료재료를 강요하고, 충분한 인력이 없는 환경의 진료는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고 40년이 흘렀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이 모양 이 꼴이다. 지금부터라도 손을 놔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2017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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