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버그달과 미국의 오판







미국이 한 델타포스 팀이 알카에다 기지를 급습한 후 그 곳에서 잊혀졌던 미군 포로 한 명을 구출하게 되었다.

그는 2003년 피랍된 미 해병대 척후 저격병이었으며, 동료와 함께 실종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근 8년 만에 생환되어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었고, 집권당의 주목을 받고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차기 부통령 후보로 거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알카에다의 오랜 고문을 받다가, 강요에 의해 동료를 주먹으로 때려 죽이고, 전향하여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부 나지르의 아들의 영어 가정교사를 하면서 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자신이 아끼던 아부 나지르의 아들이 미군 무인기의 폭격으로 사망하게 된 것을 목격한 후 민간인을 학살한 미 군부와 이를 지시한 부통령에 대한 적개심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위장 생환을 한 것이었다.

이 스토리는 실화가 아니라, 2011년부터 방영된 미국 드라마 "홈랜드 (Home land)"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일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실제 주인공의 이름은 "보드리 버그달(Robert Bowdrie Bergdahl)".





23살의 젊은 병사인 그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해 피납된 사실은 2009년 7월 BBC가 탈레반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도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납치되거나 포로로 잡힌 미군의 대부분은 희생되었지만, 이 병사는 달랐다. 미군은 처음엔 침묵하였다가 후에 그가 기지를 무단 이탈하였다가 납치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의 여론은 어떻게든 그 병사를 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고, 미정부의 대응 방식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5년 가량을 질질 끌던 협상 끝에, 탈레반이 버그달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가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던 탈레반 지도자 5명과 버그만을 교환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버그달이 과거 수 차례 기지를 이탈한 경력이 있고, 허가 없이 아프간 주민과 접촉했고, 어쩌면 스스로 탈영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거졌다.

또 이미 이슬람으로 개종했을지 모른다는 의혹과 심지어 그가 스스로 탈레반 진영을 찾아갔다는 현지인의 증언도 이어졌다.

또, 버그만을 찾기 위해 미군을 동원했다가 8명의 장교와 병사가 사망한 것이 드러났고, 이에 사망한 장병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들이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한 것이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이나 보고 없이 억류된 탈레반 포로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며, 그 탈레반 지도자들이 아프간으로 복귀할 경우 아프간 주민을 상대로 보복행위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탈레반들은 아프간 마을의 주민이 미군에 협조했다는 의심이 있으면 그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초토화시켜 왔다.

탈레반의 원래 의미는 “학생 조직”이라는 의미이다.

탈레반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소련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생적 무장세력이다. 이후 이들은 아프간 정권을 잡고 급진주의적 행동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후에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여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으나 여전히 이들의 잔당은 아프간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초 미국 등 서방은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파키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를 통해 탈레반을 지원해 왔다.

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으로 아프간 무슬림을 구해야 한다며 아프간의 소련에 대한 저항을 지하드 즉 성전으로 간주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우디에서만 건너간 전쟁 자금이10억불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 때 만들어진 여러 조직 중 하나가 바로 알카에다이다. 알카에다는 기지 (base)라는 의미이다. 알카에다는 사우디 주요 가문 중 하나인 빈라덴 가문의 오사마가 만든 지하드 조직인데, 사우디나 오사마가 아프간을 지원한 사실상 이유는 미국의 공작과 개입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오사마 빈라덴의 아버지는 사우디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공공부문 장관으로 임명되어 이 기회를 이용해 이미 1966년 전세계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빈라덴 가문은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구조로 석유 등 에너지는 물론 물류 사업도 하고 있었고, 1968년 부친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오사마는 아프간 전쟁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당시 막대한 전쟁 물자의 수송이 필요했는데, 오사마는 자신의 재력을 이용하여 아프간 전쟁에 참여하며, 물자 공급, 훈련, 건설(빈라덴은 토목공학 학위가 있었으며, 산에 동굴을 파고 기지를 건설하는 일을 주도) 등 합법적(?)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이 설치한 아프간을 통과하는 석유와 가스 관로를 보호하고 냉전 당시 소련의 팽창 정책에 억제하기 위해 아프간 지원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친미 정부인 사우디를 이용한 것이다.

10년간 끈 전쟁 후, 소련은 아프간에서 철수를 결정하지만, 이 여파로 소련은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받았고, 동유럽의 민주화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소련 연합은 해체된다.

이는 냉전의 종식을 의미하며, 미국의 독주를 의미한다.

이후 미국은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의 질서로 재편하고, Pax Americana를 완성하기 위한 단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소위 “세계화 (Globalization)”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미국 표준을 따라가는 것을 좋게 표현하는 말일 뿐이며, 세계화 즉 미국 표준화는 미국 기업이나 정부가 해외 다른 나라에서 그들의 목적을 편이하게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난 이후였다.

아프간 전쟁에 참여했던 사우디 등 아랍 국가의 지하드 전사 즉, 무자헤딘 들은 본국으로 귀환을 희망하지만, 동유럽의 독재국가들이 민주화되는 것을 목격한 사우디 왕가는 이 여파를 우려해, 이들 즉, 실전 경험이 있고, 의식화되어 있는 젊은이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꺼렸다.

알카에다를 조직해 아프간 전쟁에 참여했던 빈라덴 역시 90년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사우디의 안보를 위협하자 무자헤딘과 함께 사우디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주장했지만, 더 친미적 경향을 갖게 된 사우디 왕가는 그를 배격하고 미국에 의지하며 미군의 사우디 주둔을 허락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이후 오사마는 반미로 돌아서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미국과 사우디 왕가로부터 이용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실제, 오사마는 이미 91년부터 미국에 대한 테러를 계획했고, 이를 알게 된 사우디 정부는 그를 추방하여, 오사마는 수단을 거쳐 파키스탄과 아프간 등지에 머물게 된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사우디가 아닌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9.11 테러를 주도한 19명의 비행기 납치범들 중에 아프간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사우디와 이집트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사우디에 살았거나 아니면 유럽이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비행 연습을 한 곳도 아프간이 아니며 미국의 플로리다나 미네소타 등지였다.

그럼에도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명목상 이유는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빈라덴은 9.11 테러 이후 CIA의 집요한 추적 끝에 파키스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제로니모 작전으로 명명한 네이비 실의 불법 군사작전 끝에 2011년 사살된다.

(왜 불법이라고 부르냐면, 미국이 남의 나라(파키스탄)의 허락 없이 무장 헬기 2대에 무장 군인을 싣고 그 나라 수도 인근 도시를 습격했기 때문.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합치될 경우 이런 짓을 수없이 해 왔다. 북한 가서 김정은이나 잡아오지…)


Operation Geronimo에 참가한 헬기. 미공개된 스텔스 헬기로 착륙시 추락함.



9.11 테러와 오사마 빈라덴의 행적, 일부 급진 이슬람들의 테러 행위에 대한 의혹과 루머는 무성하며 아직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많은 이들은 오사마 빈라덴을 미국 CIA에 의해 “잘못 길러진 괴물”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심지어 일부 미국 컬럼니스트는 9.11 테러범의 대부분이 “Made in USA”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빈라덴은 사살되었지만, 알카에다 조직은 여전히 잔존하며, 여러 나라에 흩어져 지금도 테러를 획책하고 있다.

그러나 알케에다나 탈레반, 이란, 이라크의 일부 급진 시아파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보고, 나머지 아랍인이나 무슬림들을 같이 봐서는 안 된다. 16억 명에 이르는 대부분의 무슬림 (이슬람교도)들은 선량하며, 알케에다나 탈레반과 같은 급진주의자들을 경멸한다.

일부 종파와는 달리 무슬림의 절대 다수인 수니파들은 지하드 (성전)을 무슬림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폭력을 혐오하며 특히 살인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아프간 등 탈레반이 장악한 곳이나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은 서방의 여성들보다 훨씬 더 보호받고 존중 받으며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박해 받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버그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기사와 정보를 취합해 보건데, 그는 그저 철없고 군이라는 조직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영혼이 자유로운(?) 청년으로 보인다.

철부지 행동을 한 끝에 납치되었고 협박과 고문, 회유와 장기간 억류 생활 탓으로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럼”에 빠졌고, 자의와 무관하게 미국의 적 즉 탈레반에 유리한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무의미하게 미군들이 희생당했고, 여론에 밀린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된 정보와 섣부른 판단으로 탈레반 지도자들을 풀어주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해외 작전에서 오판하여 어이없는 희생을 치른 사례는 수 없이 많은데, 버그달 수색 작전에 동원되었다가 전사했다는 8명 역시 그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은 군인이었고, 작전 중 군인의 전사는 불행한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문제는 탈레반 지도자들의 석방으로 몰살하게 될지 모르는 아프간 민간인들이다.

만일 이런 비극적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경우, 결국 국제 여론은 미국 정부를 비난하게 될 것이며, 버그달은 자신이 저지른 철없는 행동의 대가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 의식 수준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관련 기사>

"버그달 탈영 경력있어…살해 협박에 신속 결정"

버그달 '탈영병'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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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연합뉴스) 탈레반에 5년 가까이 억류됐다 관타나모 수감 탈레반 간부 5명과 맞교환돼 풀려난, 미국 보 버그달 병장의 석방과 관련 상원 임시의장이자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레이히(민주·버몬트, 가운데) 의원이 4일(현지시간) 의사당내 정보당국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아프간 주민, 탈레반 지도자 석방 소식에 공포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탈영 논란에 휩싸인 보 버그달 미군 병장이 실제 두 차례 탈영 전력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탈레반 포로와 맞교환 방식으로 석방된 버그달 병장이 과거 미국 내 훈련소와 아프가니스탄 전투 기지를 이탈했다가 복귀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버그달 실종 두 달 뒤에 완성된 35쪽 분량의 군 기밀 보고서 내용을 열람한 소식통들을 인용했다.
이들에 따르면 보고서는 버그달이 심야에 자유 의지로 기지를 이탈한 것 같다고 결론짓고 부대 경비 허술과 규율 부실을 주로 비판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버그달이 고의로 탈영했다는 확고한 증거가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버그달은 아프가니스탄 파병 전 훈련소 시절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거나, 해돋이를 보겠다는 이유로 근무지역을 이탈했다.
또, 아프간 기지에서는 무단으로 철조망 밖을 돌아다닌 적이 있을 것이라고 부대 동료들이 진술했다.
보고서에는 그러나 버그달이 탈영 의사를 명백히 밝힌 편지를 남겼다는 등의 내용은 없다.
보고서는 버그달 실종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가 실종 전에 컴퓨터와 일기를 고향 집으로 부쳤으며 물과 칼, 컴퍼스만 들고 나갔다는 점은 확인했다.
보고서에서 버그달은 무술 관련 책을 읽고 아프간 군인들과 차를 마시며 파슈툰 어를 배우려고 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젊은 남성으로 묘사돼있다.
군인으로서는 시간을 잘 지키고 복장이 단정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동료들은 그가 탈레반을 때려잡으러 가지 않는다고 다소 지루해하고 짜증을 냈다고 회고했다.
한편, 미 정부는 포로 교환 계획이 공개되면 버그달을 살해하겠다는 탈레반의 협박 때문에 의회에 사전 보고할 수 없었다고 상원의원들에게 해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중부의 한 마을에서는 버그달 석방 대가로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파즐이 풀려났다는 소식에 주민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이 마을은 1999년 파즐이 이끄는 탈레반이 휩쓸고 가면서 초토화됐다.
주민들은 파즐이 카타르에서 당국의 감시 아래 1년간 지낸 뒤 아프간에 돌아오면 마을을 다시 불태워버릴 것이라며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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