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추돌사고 환자는 의료진에게 화를 낼까?




정차 중 혹은 서행 중 뒷차에 의해 추돌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사고를 당한 앞 차 운전자나 승객이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이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차 중에 발생한 사고의 경우, 상대 차량의 과실이 100%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동차 보험 관례상 움직이는 두 차량의 충돌 사고의 경우 어느 한쪽이 100% 과실 책임을 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모든 추돌 사고 당사자를 일방적 피해자로 보기는 어렵다.

둘째, 이런 추돌 사고 피해자의 상당수는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기 원한다.

증상의 경중과는 무관하다.

또 가능하면 입원 치료를 원한다. 사실 이런 환자들로 빈 병상을 채우는 중소병원이 적지 않다. 이를 일명 “자동차 보험 전문 병원”이라고 부른다. 이들 병원에 있는, 언론에서 떠드는, 소위 “나이롱 환자”의 상당수가 추돌 사고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이들이 병원을 찾을 경우 외래 보다는 응급실을 찾으며, 역시 증상의 경중과 무관하게 119을 이용해 주시는 센스를 발휘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 유난히 의료진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이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도 있다.

사고 현장에서 119에 의해 곧바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들은 의료진에게 짜증을 내는 걸까?

첫째, 사고 당시 놀란 가슴을 미처 진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무고하게 피해를 당했다는 억울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억울한 피해자”인 자신을 데면데면 대하는 의료진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진짜(!) 응급환자로 정신없는 의료진이 경상이라고 볼 수 있는 염좌 환자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 가능성은 크다)

넷째, 가해자(?)에 대한 울화통의 화살이 의료진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학용어로 전이(displacement)라고 한다.

전이는 일종의 정신적 방어 기제(defence mechanism)로 어떤 계기로 발생한 정신 역동(Psychodynamics) 즉, 정신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할 경우 생기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자신을 구박 하는 언니에 대한 분노를 차마 언니에게 표출하지 못하고, 언니의 책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대신 화풀이를 하는 것과 같다.

교통사고가 나면 가해자(?)의 멱살을 잡고 그 자리에서 바로 화풀이를 할 것 같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일단 경찰, 119 대원, 행인 등 보는 눈이 많고, 자칫 멱살을 잘 못 잡았다가는 피해자가 폭행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차가 비참하게 찌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거나, 동행한 가족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분노 게이지는 더욱 더 올라가게 되지만, 이를 마땅히 해소할 방법이 없어 찾는 정신적 방어기제가 바로 “전이”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이가 의료진에게 향하는 이유는 첫째, 둘째, 셋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추돌 사고 피해자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고, 병원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응급실이 아닌 외래를 방문해 약 처방 정도를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추돌 사고가 그 특성 상 (제 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앞 차를 들이박을 상황이 되면 급제동을 하여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외상이 있다고 해도, 가벼운 타박상이나 경추 혹은 요추의 염좌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입원이나 수술 등 특별한 치료를 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사실 추돌 사고 피해자의 상당수는 이에 속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전국 응급의료기관에는 뒷목이나 허리를 잡고 응급실로 들어와 빨리 봐 주지 않는다며, 입원 시켜 주지 않는다며 의료진을 향해 고성을 지르고 화풀이하는 “피해자님”들이 적지 않다.

언니에게 화를 내는 대신 언니의 책을 찢는 행위는 매우 ‘어린애 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감정을 의료진에게 전이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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