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탄스러운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취해진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각각 입장이 다른데, 의료계의 입장은, 회생이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 등에게 단지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해 막대한 의료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대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만일 연명의료(치료) 중단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면, 의료계는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의학적 자문을 하는 선에서 역할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입법을 먼저 주장하거나 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나, 바램대로 되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 치료에 대한 제반 여건, 환경에 좌우되어서는 안되며 단지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치료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 중단은 ‘존엄’이란 단어로 어떻게 아름답게 포장하더라도 환자가 사망하도록 방치하는 것인데, 그 결정을 의사가 주도하거나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환자나 그 가족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면 의사는 환자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선에서 그쳐야 하며, 마찬가지로 입법 과정 역시 환자 단체나 시민 단체들이 입법을 추진하고 의료계는 자문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부 의료계 인사 들이 총대를 멘 꼴이 되었고, 동시에 야기된 혼란의 책임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게 되었다.

법이 “~~을 하지 않으면, 혹은 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하면 이건 규제 법이며 처벌 대상이 있다는 얘기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인 동시에 규제법이다. 이 법이 정한 주요 규제, 처발 대상자는 의사이다.

이 법 39조는 법이 정한 방식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아닌 경우에 연명의료 중단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법이 정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법이 공포된지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법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제까지 관례적으로 이루어진 DNR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DNR(심폐소생술 금지) 은 주로 의식이 없거나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보호자들에 의해 작성되며, 이 서식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는 (혹은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 사망하더라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일종의 사전 각서라고 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없을 당시 많은 병원들이 이 DNR을 근거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소극적 치료를 해왔다.

그런데, <연명의료결정법>의 처벌 조항이 2월 4일 자로 발효되면서, 만일 DNR을 믿고 치료를 중단할 경우, 그 의사는 이 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등, 법이 정한 복잡한 절차의 연명의료 결정이 없는 경우 치료를 중단할 수 없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의료 행위를 다해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물론 기관삽관 등 심폐소생술도 해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하고, 치료를 중단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 존엄사라면, 당분간 수 많은 환자들은 존엄하지 못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오로지 이 법의 잘못된 설계와 어리석은 처벌 규정과 게으른 입법 홍보와 멍청한 사람들 때문에.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 2016년 2월 입법되었고, 1년 6개월 후 시행되도록 하였으며, 위에서 언급한 법 39조 1항의 처벌 규정은 2년의 유예 기간을 두었는데, 오는 2월 4일 그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처벌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법의 입법 후 법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다수 설치하고 이를 홍보하여 미리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이것이 미흡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굳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 복잡한 요건을 정하는 규제 법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법은, 형식과 틀을 좋아하는, 대형 병원의 사정을 알지 몰라도, 그러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병원의 실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하더라도, 매우 아쉽다. 아쉬움을 넘어서, 걱정이 앞선다.
악의를 가지고 이 법의 약점을 파고 들어 의사를 고발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말이다.


2018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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