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메디게이트 뉴스 임솔 기자는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과거부터 있었다는 것이며 그 예로 보사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8월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의 경향과 과제‘ 연구보고서를 들었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2014년이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있어왔으며,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2016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2009년 말 구성되었다.

이 의정 협의체가 구성된 배경에는 의료법 개정이 있었다.

2009년 당시 의료법 제 3조 2항은 “②의료기관의 종류는 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의원·치과의원·한의원 및 조산원으로 나눈다.”라는 선언적 의미만 가지고 있었는데, 2009년 1월 30일 개정되고 2010년 1월 31일 시행 예정인 의료법은 “② 의료기관은 다음 각 호와 같이 구분한다.”라고 명시한 후, “의원은 주로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은 주로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기관이라고 업무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했을 뿐 아니라, 3항 역시 “③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보건의료정책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의 종류별 표준업무를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고 개정한 바 있다.

당시 의협은 이와 같은 법 개정을 명분으로 삼아 의료기관 표준 업무를 정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009년 당시 논의되었던 원격 의료 도입에 대하여 전달체계가 명확하지 않는 상태에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일차의료가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뚜렷하게 했다.

복지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2009년 12월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 의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첫 번째로 의료기관의 종별 표준 업무를 고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2011년 6월 24일 시행규칙 “의료기관의 종류별 표준 업무규정”이 고시되었다.

의료기관의 종별 업무 고시는 의료전달체계의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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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주요 정책을 만들 때, 행정 부처 산하의 연구기관이 그 학문적, 이론적 근거를 만들며, 이를 토대로 관련 단체와 협의하여 입법을 거처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사연은 복지부의 보건의료 행정과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주요 연구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의료계가 의료상업화(!),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등의 논란과 의협 회장에 대한 고소 고발 및 신임 회장에 대한 탄핵 등 내분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정부와 학계는 의료전달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 개발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임솔 기자가 인용한 보사연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의 경향과 과제”라는 연구 결과라고 하겠다.

연구자는 이 연구서 서두에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이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결코 동시성을 가질 수 없는 특성이 한 시대에 공존하는 부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의 결과, 이 같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역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있는데, 일견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고 자평하는 한국 의료에는 동시에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후진적 성향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암치료는 세계적이나 외상 영역은 여전히 후진적이며, 불임 치료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미숙아를 위한 중환자실 관리는 낙후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목표는 의료서비스 공급 (즉, 의사 간호사 등의 인적 자원과 병상, 병원, 의료장비 등의 물리적 자원)의 총량 증대에 두어, 전국민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라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의료기관들은 마치 군비 경쟁(medical arm race)하듯 병상 공급 과잉과 의료 장비의 중복 과잉 투자를 하였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따라서 이제는 전달체계 구축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의 많은 부분은 충분한 자료와 개연성을 근거하여 작성되었고, 우리나라 만의 의료 정책과 보험의 특수성 (단일 보험 체계, 저 수가, 저 보장책, 단 시간내 고도 성장한 의료 수준 등등)을 고려할 때 이른바 한국적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고안하기 위한 고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이 보고서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은 보고서를 소개하거나 비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임솔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복지부 주도의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숨은 의도 혹은 음모가 있는 것처럼 썼다. 즉, 이른바 가치 기반 지불제도(VBP, value based purchasing)를 도입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조는 매우 유감스럽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는 모두 단점과 문제점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지불제도가 필요하며, 그 대안이 가치 기반 지불제도이며, 이는 ‘비용 효율성’과 ‘의료의 질’ 개선 측면에서 이 둘을 모두 반영하여 그 성과를 지불 제도와 연계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한 마디로 평가지표를 만들고 그 지표를 충족하면 포지티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공급자 인센티브에서 공급자-환자 인센티브 형태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지표에 따른 보상 기전은 이미 병원내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며,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지표 내용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임솔 기자가 음모론을 편다기 보다는 자극적 제목으로 의료계 여론은 환기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마디로 제발 정부의 움직임에 관심을 좀 가지라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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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의 전달체계 개선안이나 VBP 도입 검토 또, 복지부가 제시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 “뜸금없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개선안은 의료계 일부만 공유한 체 일반 의사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임솔 기자 만이 계속 이를 추적해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계는 정부 안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거나 의료계의 대안을 제시한 역량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 안을 알고 있는 지도부는 회원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능력도 없다. 오히려 쉬쉬하며 감추는 듯 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만일 감추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안이 공론화될 경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 안이라면 일단 부정적 시각을 갖는 의사 대중들이 그 화살을 지도부에 돌릴 것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면 회장 선거가 코 앞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뜸금없다며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자.’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시간을 가지고 포괄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의료계에 엄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적어도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서 정부는 늘 의료계보다 몇 발 자국 앞서 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나 보건산업진흥원 같은 연구소 뿐 아니라, 심평원 연구소 등은 해외 각국의 새로운 의료, 보험 제도를 연구해서 이를 차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복지부내에서도 각종 과제를 계속 오븐에 넣고 구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계 유일의 대응 기구인 의협은 늘 내분과 소란에 휘말려 있고, 그나마 얼마 안되는 자원들은 국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부당한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바람직한 의료계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추진하는 건 언감생심일 뿐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고 안건을 제시하면 이를 숙지하지 못한 체 반대하기에만 급급하고 뒷북치기만 할 뿐이다.

세상은 내가 준비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의료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의사 모두가 200 쪽 분량의 보사연 보고서를 읽어 봐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걸 추진하는 건 반칙이라는 주장을 더 듣고 싶지도 않다. 의료계의 이런 주장과 반대는 의협과 관련하기 시작한 지난 25 여년 동안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다. 그 동안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정부를 상대하는 의사들이 믿는 구석은 오로지 하나 뿐이다.

“의사가 모두 결사 반대하면 절대 못한다.”는 것.

이 믿음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의사 사회 내부에서부터 깨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의약분업은 의사 대중이 모두 반대하는 가운데, 의협의 일부가 동조하면서 실현되었다. 몇 년전 신포괄수가제 도입 반대 역시 의협의 일부가 동조하며 시위의 칼을 버려야만 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그들 모두 자신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어렵다.

지금 거의 모든 주요 의료계 정책은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정책 조율을 한다. 시민단체는 끝장을 보려고 덤벼들고 의료계 일각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스스로 칼을 던지고 의료계를 포로로 내모는데, 오히려 복지부 관료들이 이러다간 의료계가 붕괴된다며 방어막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복지부 공무원이 ‘적’이라면, 그 적들에 의해 목숨이 부지되는 형국인 것이다.

나라가 어렵다. 어려운 만큼 국운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는 더 어렵다. 전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새해도 이렇게 시작한다.


2018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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