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이 보이지 않는다




의협의 역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한성) 부근의 의사 10 여명이 모여 만든 "한국의사연구회"가 의협의 시초였다.

한국의사연구회는 일본인 의사들이 조직한 계림의학회에 대항하기 위한 항일결사조직체로 발족했고, 육군 군의장이었던 김익남 선생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최초의 의사 단체 회장이 군의관이었던 것이다.

당시 연구회는 월례회를 열고 주로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의사법 (지금의 의료법) 제정 반포를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연구회는 강제 해산된다.

한일합병 후 일본의사들은 '조선의학회'와 '경성의사회'를 각각 발족하였고, 한국인 의사들은 '한성의사회'(1915년 12월 1일)와 '조선의사협회'(1930년 2월 21일)를 설립한다.

한성의사회는 현재 서울시 의사회의 전신이고, 조선의사협회는 의협의 전신이라고 볼 때, 지역 의사회인 서울시 의사회의 역사가 더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 의사들은 이 두 단체를 강제 해산시키고 '조선의사회'라는 관변 단체를 조직(1941년)하게 된다. 이후 해방이 되자, 해방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서울 시내 개원의 400여 명이 '건국 의사회'를 건립하였고, 이와 별개로 의대 교수들이 주축이 된 '조선 의학 연구회'가 창립(1945년 9월 19일)되었다.

그러나, 수 개월 후 이 두 단체는 논란과 진통 끝에 '조선 의사회'로 통합되게 된다. (1945년 12월 9일)

조선 의사회는 좌익과 우익, 개원의와 교수로 나뉘며 진통을 겪다가 1947년 5월 '조선의학협회'를 창립하면서 중앙회로서의 첫 걸음을 띄게 된다.

이 역시 반목을 겪다가 10월에야 총회를 개최할 수 있었고, 1948년 1월 15일 조선의료령으로 법정 단체로 인정받고,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대한의학협회'로 명칭이 확정된다.




의료법이 현대적으로 정비된 것은 5/16 혁명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대한의학협회는 명실상부한 전문가 단체로써 의료법 개정과 혁명 정부의 의료 정책에 공조를 취해 왔다.

대한의학협회의 명칭은 1995년 대한의사협회로 개정되었다.

경남의사회 등이 시대 변화에 맞게 협회의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명칭 개정에 불을 붙였다. 의협은 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의협발전위원회를 설치 하였고, 위원회는 명칭 개정에 대한 논의를 거쳐 대한의사협회로 명칭 개정을 결정하고, 의협 47차 총회에서 긴급 동의 형태로 명칭 개정에 대한 안을 처리하고, 이어 법정관 위원회 (법령 및 정관토의안건 심의분과위원회)가 이를 의결하는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그 자리에서 이를 다시 총회 안건으로 제출하여 총회에서 절대 다수(234대 2)가 찬성하며 이 안건을 의결하였다.

이 간단한 역사를 통해 의협을 둘러싼 의료계 내부의 알력과 갈등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의료계 내의 갈등은 늘 내재한다. 의료계는 수 많은 직역 단체와 지역 단체가 씨줄과 날줄처럼 얼켜있기 때문이다. 그 주축에는 개원의와 교수, 개원가와 병원이 있다.

의협의 명칭이 의사협회로 바뀐 1995년 당시는 민초 의사들이 의협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전만 해도 의협은 의무적으로 회비를 내고, 의사 면허증이나 찾으러 가는, 일반 의사들에게는 먼 존재였을 뿐이다. 

동부이촌동 의사협회 회관의 신축 공사 모습


의사들이 의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의협이 1993년 개설한 대한의학협회 정보통신망이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통신망에 수 만명의 의사들이 가입하면서 자연스레 의협의 업무나 역할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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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의 영문 명칭은 여전히 Korean Medical Association이다. 이를 그대로 두고 국문 명칭만 변경된 것이다. 이를 의사협회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1995년까지만 해도 의학협회는 대한민국에 단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명칭이 개정되면서 우리나라의 의사협회는 모두 세 개가 되었다.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가 그것이다.

의협은 이들 중 하나가 되었고, 의료법상 의료인 단체 중 하나로 전락 했으며, 우리가 동의하든 아니든, 의협은 다른 의료인 단체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과거 의학협회는 그렇지 않았다. 모름지기 대한민국 의료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위와 위상이 있었다.

2000년 의약분업을 전후해, 의협과 정부가 갈등을 빚자 정부는 의협을 배제하고 병협을 대화 창구로 삼기도 했다. 병원협회는 의료법상 의료기관 단체이며, "설립할 수 있는" 임의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의협은 의료인 중앙회로 "설치하여야 하는" 설립 의무 단체이며, 법정 단체이다.

의협의 위상이 추락한 건 단지 명칭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2000년 이후, 더 정확하게는 직선제 이후 회장이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빈번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게다가 무능했기 때문이다.

의협은 과거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이끌어 가던 위치에서 정부의 정책 협의 대상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정부 정책을 전달하는 위치로 추락했다. 그나마 전달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의협을 정책 파트너로 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갈지자 행보때문이다. 의협의 대표자들과 실컷 합의해도 수 일 후에는 이를 번복하기 때문이다.

이를 번복하는 이유는 정책에 대한 대원칙이 없고, 정책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일단 합의 하더라도 회원들의 반대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정책이라면 회원들이 반대해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지만, 그럴 역량이 부족하니 정부 뒤통수를 치는게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정부가 의협을 믿고 파트너로 생각할 리 없다. 그래서 의협을 배제하면, 의협 지도부는 모든 화살과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며 비난한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정부로써는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관련 단체 의견 청취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정부 공무원은 행정 전문가이지 의료 전문가가 아니므로 정책 업무의 의학적 견해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정책에 따른 수 많은 민관합동 위원회를 개설하고 운영한다.

문제는 이에 참여하는 (주로) 대학 교수들은 의학 전문가이지 행정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행정 절차와 그 정책이 다른 정책에 미칠 영향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다른 업무처럼 의료 정책도 풍선 효과가 생긴다.

이를테면, 2000년 초반에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국가 암관리사업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의약분업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은 암 관리가 병원 경영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에 집중 투자하면서 경쟁적으로 암병동을 늘렸다. 2000년 이후 수도권 병상 수는 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암병동을 신축한다고 당장 환자가 차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환자를 먼저 채운다는 것이다. 결국,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진공 청소기처럼 환자를 빨아들이면서 중소 병원 병상이 비고, 의료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또 모든 외과가 암 질환에 집중하면서 외상 분야가 홀대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전부터 정부는 응급의학, 외상에 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데만의 석해균 선장의 영향이 크다. 지금 하루가 멀다하고 응급의학, 외상에 관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지금은 느닷없이 감염에 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깨끗한 근무복 착용, 넥타이 착용 금지, 장신구 착용 자제, 단정한 머리모양" 등 초등학생에게 말해도 잔소리라며 짜증낼 것 같은 지침을 내렸다.

주무과인 질병정책과 담당자에 따르면, 이 권고안은 "의료단체와 감염 관련 학회 등이 참여한 항생제 내성 전문위원회 협의를 거쳐 작성한 것이었다”고 한다.

"항생제 내성 전문위원회"는 복지부가 만든 수 많은 민관합동 위원회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감염학회가 참여할 것은 분명하고, 그는 어느 대학 교수일 것이다. 이 교수들은 병원 감염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애들 잔소리 같은 주장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강제 규정으로 하면 안되며 권고 규정으로 하자고 목에 힘주어 주장했을 것이며, 이로써 의료계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며 만족해 했을 것이고, 게다가 권고 규정이므로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위원회에 참여했다는 "의료단체"는 과연 누구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병협이나 간협이 참여했을까? 만일 참여했다면 이들은 반대할 리가 없다. 이미 병원 대부분은 근무복을 사용하고 있고, 간호사들은 단정한 머리 모양, 넥타이 착용 금지, 장신구 착용 자제 등 이 규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이 이 회의에 참석했는지 의문이다.

의협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면, 정부는 또 뒷통수 맞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의협 대표가 참여해 회의 때는 찬성하더니, 이제 와서 의료계가 난리이니 말이다.

의협이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언젠가부터 의협이 배제된 체, 병원(병협), 교수, 각 직역 단체들이 자의적으로 정부와 협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사실은 많은 문제를 내포한다.

앞서 언급했듯 의료계는 갈등과 반목이 늘 내재된 집단이다. 그런데 어느 직역이 자신이 유리하도록 정책 변경을 추진하거나, 각자 알아서 정부와 협상할 경우 갈등은 폭발할 수 밖에 없다. 또, 언급했듯 그들은 협상 전문가, 정책 전문가도 아니다.

게다가 정부는 의견 청취, 업무 협의를 위해 사당동의 김 내과 원장, 시흥의 최 이빈후과 원장을 부르지 않는다. 주요 대학 교수들을 부르며, 이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대형 종합병원의 실정을 말하게 된다.

결국, 정부 정책은 병원 위주 정책, 그것도 대형 병원 위주 정책으로 흐르게 된다.

1월 1일부터 모든 병원 응급실은 환자 분류소를 따로 두고,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에 따라 환자분류(Triage)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대학 병원, 대형병원은 이렇게 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중소병원이 운영하는 응급실이다. "깨끗한 근무복 착용, 넥타이 착용 금지, 장신구 착용 자제, 단정한 머리모양"과 같다. 이 역시 대형 병원은 문제가 없다.

이 두 정책의 동일 점은 강제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잘 하면 보상 (수가 등으로)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즉, 대형 병원들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함으로써, 보상을 받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 못했고, 할 여력이 없는 병의원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거나, 가랭이 찢어지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가야 한다.

게다가 대개 이런 정책은 조만간 강제 규정으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 협의를 한 교수들이 중소병원, 의원을 생각했을리 없다.

자, 이제 정리해보자.

가치 중립적 차원에서 균형감을 가지고, 마치 전문가처럼 이런 것을 정부와 협의하라고 의협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거 하라고 상임이사, 부회장, 회장으로 뽑아주고 월급주고, 활동비 주고 대접해 주는 것이다. 고매한 교수님들이 잘난척하고 어설프게 정부와 협상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의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도 문제지만, 정부도 문제이다. 싫던 좋든 의협과 협의해야 한다. 아무리 무능하고, 갈지자 행보를 해도 의협과 만나 정책 논의를 해야 한다... 라고 말하지만, 나 같아도 의협과는 협의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의협은 넋 놓고 있고, 지방 방송은 각자 알아서 날뛰고 있고, 정부는 간보며 이걸 즐기고 있으니, 답답하지 그지 없다.


2017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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