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가고, 처방사만 남을 것이다.
미국 병원 내 직종 수는 225개에 달하며, 미국 전체 피고용자 중 비농업 피고용자의 12.6%(12.6 percent of all nonfarm workers)가 병원에 종사한다고 한다. (2010년 기준) 미국 병원은 엄청난 고용 창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병상당 종사자 수는 한국이 0.9 명인데 비해 미국은 4.82 명에 달한다.(2003년 OECD data)
미국 병원의 이처럼 많은 종사자는 높은 진료비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병원 종사자 수가 적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낮은 진료 수가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진료 수가가 낮아 최대한 고용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국 병원들이 DRG (포괄수가제)를 채택하는 이유도 피고용인의 수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를 사용하고 있어 행위 기록을 해야하고 청구하기 위한 인력이 많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비해 적은 병원 종사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의사들이 이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병의원이 OCS, EMR 등 병원 전산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수기로 의무 기록을 남기는 미국 의사와 달리, 의사들이 컴퓨터에 직접 처방, 진단 코드를 입력하기 때문에, 전산 요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보험 심사를 위한 전산 입력은 심평원의 업무이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심평원(연합회)에는 백 명이 넘는 전산요원들이 각 병의원이 송부한 청구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을 했다.
EDI 청구가 활성화되면서 그 전산요원들은 사라졌다. 대신 의사들이 진찰실, 병동에서 이걸 입력하고 있다.
미국은 수술 기록지도 의사가 직접 입력하지 않았다. 대신 녹음을 하면, 별도의 직원이 이를 타이핑했다. 의사의 시간 당 인건비보다 의무기록사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무기록사도 의사의 인건비에 비해 싸지만 여전히 의사가 의무기록사, 전산요원의 업무를 하는 건, 병원 전산화가 가져온 전형적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OCS/EMR에 의무기록을 입력하게 되면서, 진찰실 책상 위는 모니터가 자리를 차지하였고, 의사는 더 이상 환자와 눈을 맞추지 않는다.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쳐야하기 때문이다.
병원이 "5분 진료"를 한다며 짧고 무성의한 진료를 비난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부터이니 5 분 진료는 이미 30년이 넘었다. 5분 진료는 일상이 되었고, 이제 의사가 환자에게 눈을 맞추고 이것 저것 물으면 환자가 짜증내는 시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원하는대로 약이나 빨리빨리 처방해 달라는 쪽이다. 아예, 진단을 붙여 와,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 이것저것 달라는 환자도 상당수이다. 흥미로운 건,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단언컨대 10년 안에 의사는 사라진다. 단지 처방사만 남을 것이다.
그 10년 안에 네이버나 다음이 IBM 왓슨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미국은 WebMD를 비롯해 어마무시하게 의학 정보를 일반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의사를 불신하는 똑똑한 환자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의사의 처방사 전환 속도는 불이 붙을 것이다.
처방사의 역할은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어주는 알바생의 업무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행이다. 외과를 해서.
은퇴 전에 봉합하는 왓슨 서비스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S : 세상이 이럴진대, 면허 이원화니 진료 면허니, 한가한 소리 하는 잘난 의사들이 있다. 제발 의사 면허가지고 장난질 하지 말아 달라. 이런식으로 면허를 쪼개면, 처방 면허 즉, 처방사 면허도 나오게 되어 있다.
2017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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