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에는 혁명이 필요하다






인민위원회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다르다.

인민위원회는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가 개편된 것이다. 건국준비위원회는 한반도 남부에서는 여운형, 안재홍 등이, 북부에서는 조만식이 해방 후 총독부로부터 행정권과 치안권을 이양받기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1945년 당시 건준은 인민위원회로 개편한 뒤, 약 140 여개의 지부를 구성하였고, 이 지부에는 주로 지역의 원로들이나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이 참여하여 치안, 행정, 식량 배급 등의 업무를 했다.

즉 인민위원회는 헌법이 만들어지고 정부와 의회가 만들어지기까지 권력 공백을 메꾸고 조선총독부로부터 새로 수립되는 정부로 권력을 이양하기 위한 일종의 자치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혁명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든 NTC(National Transitional Committee)가 있었는데, 이와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규재 주필이 언급하려고 했던 것은 인민위원회가 아니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헌법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는 최고주권기관이다(북한 헌법 제 87조). 최고인민회의는 입법권을 가지므로,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아 보이지만, 국가의 대내외 정책의 기본 원칙을 수립하고, 법적으로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할 권리도 갖는데, 북한의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영도자(제 100조)로 거의 모든 권한을 갖는다. 또한 국방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내각 총리 등 행정부는 물론 검찰 총수, 중앙재판소 소장 (대법원장) 등 사법부를 선출할 권리를 갖는다.

즉, 최고인민회의는 입법, 행정, 사법부의 위에 존재하는, 말 그대로 권력의 첨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 헌법에 따른 규정일 뿐 실제, 북한의 기본 운영 원칙은, 국가는 당이 영도하며, 당은 수령이 영도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그 형식을 갖추기 위해 최고인민회의라는 회의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대통령제도 내각제도 아닌, ‘회의제’라는 형식적 의결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구 소련의 최고 “소비에트” (자치 회의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선출직이고,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며, 국정 전반에 걸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행정 책임을 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보니,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는데, 대통령 권력 집중은 대통령제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큰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김대중, 노무현 등 좌파 대통령이 권력을 잡으면서, 이른바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란 명목 하에 국가 권력을 위원회란 형태로 쪼개고 분산시켰다. 그 후 이른바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 많은 위원회들이 중앙 정부, 지방 정부에 만들어졌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각종 자치기구, 위원회가 연상된다.

일견, 국가 행정 업무에 시민이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위원회 의결 과정은 사형 집행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위원회란 책임 소재를 흐리게 하는 의사 결정 기구이기 때문이다. 즉, 사형수를 세워놓고 총살할 때, 다수의 사형집행인이 총을 쏘는 이유는 자신이 생명을 앗아갔다는 책임 의식을 회피하고 희석하려고 하기 위한 것과 같다. 덕분에 사형 집행인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며 편히 잠을 잘 수 있다.

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위원회의 정책 결정 결과 폐해가 돌출되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게다가 위원회는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하기 쉽다. 그러다보니,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 정하기 쉬운 정책이 결정되기 마련이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

또 정부에 만들어진 크고 작은 위원회에는 시민단체, 이권단체와 그 업무와 밀착된 인물들이 소속되게 되어, 국가 정책이 큰 그림 아래 이루어지기 보다는 참여 위원의 입맛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게다가 시민이 참여한다는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위원회 참여 자체가 생계 수단으로 바뀌고 이권 다툼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왜 야당은 지금 이 시기에 또 다시 수 많은 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집권을 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지지세력들이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시켜 생계를 이어가고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별히 직업없이 시민 운동을 하는 자들, 과거 운동권으로 분류되어 제대로 취업하지 못했던 자들, 정상적 사회 생활이 어려운 자들 중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감투를 쥐어 주고, 생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모든 민관위원회 위원의 1/3 은 사회시민단체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이 위원회에 침투해 한편으로는 생계 수단으로 삼고, 정책을 왜곡하고 국가를 흔든다.

우리나라 최고의 위원회는 모름지기 국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 역시 생계형 직업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고,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무리한 입법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의 선출에 의해 뽑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미 가지고 있는 권력 즉, 입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

문제는 이를 견제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여당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배반하고,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과 영달을 쫓을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우리 헌법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기전도 없다. 과거의 우리 역사를 보면 이런 경우 혁명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또 다시 혁명이 필요할지 모른다.


2017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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