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정지가 전가의 보도냐?
모든 외과의는 수련의 시절 첫 집도 수술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집도 수술은 몇 일 후 혹은 몇 개월 후 어느 날 한다고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늘 하던 식으로 수술 준비를 하고 조수 자리에서 교수를 기다리던 어느 날, 수술방에 들어 온 지도 교수가 갑자기 '뭐해? 빨리 시작하지 않고.'라고 했을 때, 얼른 수술자 위치에 옮겨 마치 늘 해왔던 것처럼 '메스'를 달라하고 피부를 가르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주춤거리거나,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거나, '네? 제가 말입니까?'라고 되묻는다면 집도의 기회를 잃는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그랬다.
그래서, 칼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늘 그 날을 기다리며 수술을 익히고, 상상 속에서 집도의가 되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책을 보는 것이다.
그 수련의의 첫 수술 날 가장 마음을 졸이는 이는 그 수련의가 아니다. 수술받는 환자나, 수술실 밖의 보호자도 아니다.
칼을 주는 지도 교수이다. 왜냐면, 그는 칼을 받는 수련의가 어떤 실수를 하든 원상복귀하고, 그 수술을 책임질 각오를 가지고 칼을 주기 때문이다. 그럴 신뢰와 용기와 배짱이 없다면 감히 칼을 줄 수 없다.
수련 기간 내내 칼을 받지 못한 수련의도 전문의를 딸 수 있다. 여전히 종이 시험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전문의가 제 몫을 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의학은 여전히 도제로 사사되며 교육, 훈련과 더불어 회초리도 필요한 영역이다. 물론 회초리가 반듯이 체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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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움' 같은 의료기관내 괴롭힘과 폭행·성폭력 등이 연루된 의료인은 면허 정지 수준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이 기사는 믿기 어렵다.
'태움'의 실체가 정확히 뭘까?
의사든 간호사든 대학을 나와 면허를 취득했다고 실무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업무인 정맥 주사(IV)를 즉시 할 수 있는 신규 간호사를 본 적이 없다.
병원에서 사용되는 수 많은 의학 용어와 약어를 다 알아듣는 신규 간호사도 본 적이 없다. 이런 신규 간호사는 당연히 의사 오더를 받기 어렵다.
신규 간호사에게 별도로 수습 기간을 두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병원도 있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당장 현장에 투입돼야 하고, 한 사람의 간호사 몫을 해내야 한다. 물론 불가능하다. 때문에, 선임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들이 가급적 빨리 일을 익히도록 교육한다. 간호 업무도 의학이며 이 역시 도제로 사사된다.
선임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도 없다.
지도와 교육에 훈계는 필연적이다. 어느 정도 교육 기간이 끝나도 여전히 제 업무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군대에만 고문관이 있는게 아니다.
문제는 의료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의료 현장에서 실수는 전혀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수 많은 의료인들이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렇게 발생하는 실수의 결과의 책임 대부분은 의사가 진다. 법이 그렇다.
태움이 모두 부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실수를 줄여나가기 위한 장치로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태움'이 집단 따돌림이나 인격적 모멸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만일 태움의 정체가 실수나 잘못에 대한 문책이나 야단,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주의라면, 이런 태움이 존재하지 않는 업종이 있을까?
물론 태우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 사람에 의해 발생한 모든시시콜콜한 사고, 과실을 모두 인사위원회 회부와 같이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모두가 이렇게 누군가의 업무 과실을 공론화한다면, 병원은 분쟁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왜냐면, 당사자는 과실이 아님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고, 제소한 자는 과실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이 참 잘되겠다.
이 기사가 더 믿기 어려운 건, 과연 태움에 연루된 의료인을 어떻게 면허 정지시킬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법에 기술할까?
태움과 업무 과실 문책, 주의, 경고를 어떻게 구분할까? 문책마져도 못하게 할까?
'성폭력에 연루된 의료인의 면허 정지'도 우습다. 성폭력에 연루되었으면 성폭력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별도의 입법으로 면허 정지시키겠다는 건 과잉 입법의 전형적 사례일 뿐이다.
면허 정지가 전가의 보도인가? 아니면 꼬뚜레인가?
면허 정지를 꼬뚜레마냥 의료인의 코에 끼워 질질 끌면 맘대로 부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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