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지난 2월 14일 미 의회는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긴급히 통과시킨 후 백악관에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사인한 후 1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근거법은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이며, 이 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 발생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되면 미국 대통령에게 대략 136가지의 비상 사태권(Emergency Power)이 주어지는데, 이중 의회 선언(declaration)이 필요한 13가지를 제외한 123가지 비상 사태권을 행사하여 다른 법을 일시 정지시키거나, 법이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초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법은 지난 1976년 발효된 이래 43년간 58회나 선포되었을 정도로 흔히 이용되어왔다.

그런데, 이번 59번째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논란이 극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유가 과거와는 달리 예산 전용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비상사태는 주로 이란, 북한 등 특정국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대외관계, 테러, 대규모 파업 등을 대처하기 위해 발동되었다.

반면, 이번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멕시코 국경 장벽 공사를 위한 예산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는 지난 해, 의회 예산안에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안에 사인을 거부한 체 35일간 셧다운(Shutdown)을 강행했다. 대통령의 예산안 승인 거부로 셧다운이 발생한 건 여러 차례지만, 이번 셧다운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다.

결국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장벽 건설 비용으로 의회에 요구한 57억 달러 중 13억7천5백만 달러를 반영한 예산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예산안에 사인하는 동시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재무부가 보유한 몰수자산에서 6천만 달러, 국방부 대마약 예산 25억 달러, 군 건설 예산에서 36억 달러 등을 전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물론 여론이 이같은 조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보기 때문이다.

즉, 헌법에 따라 의회가 예산안을 만들면, 행정부는 그 예산안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법을 악용해 예산을 독단적으로 전용하여 의회의 기능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의회의 예산권이 침해되는 이런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상하원 합동으로 국가비상사태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2/3가 결의안에 찬성해야 (veto-proof) 하는데, 공화당은 대체로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동의하고 있으며,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므로 결의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통과되었다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즉, 의회가 막을 도리는 없다.

다른 방법은 국가비상사태선포의 적법성은 따지기 위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즉, 위헌 여부를 묻는 건데 이 소송을 할 경우 꼭 누가 더 유리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판결까지 상당 시간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때는 이미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을 다 써버린 이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판단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점에 대해 물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 미국-멕시코 장벽을 만들어야 하나? 과연 이 장벽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마약 밀수와 불법체류자 유입을 막을 수 있을까?

둘째, 장벽 건설을 위해 헌정 질서를 교란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합당한가?

이 두 가지 물음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할 사람도 있고, ‘네’라고 답할 사람도 있다.

후자(後者)의 경우는 아마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라는 단서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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