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식 비핵화"는 끝난 게 아니다

















VOA보도(기사 참조)에 스티브 비건의 방북 결과에 대한 논평이 ‘긍정적’이라고 하길래, 뭐가 긍정적일까 봤더니,


CFR(미 외교협회)의 스콧 스나이더는 비건이 ‘비핵화,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의 순서대로 발표했다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것이었고,

갈루치는 ‘서로 욕하던 사이가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와 갈루치는 모두 내놓으라 할 북핵 전문가인데, 스콧 스나이더는 사실 대북 강경파에 속한다. 한때 그는 북핵 해결의 유일한 대안은 북한의 정권 교체뿐이라고 주장했다.

갈루치는 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제네바 합의를 추진한 미국의 대표였고, 그때 북한에게 농락당한 아픔 혹은 미련때문인지 몰라도 이후에도 계속 미북 트랙 2 외교에 기용된 바 있는데, 그의 기조는 대북 협상은 필요하나 CVID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며, 외교적 노력으로 북핵 검증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갈루치가 ‘서로 욕하던 사이가 앉아 이야기하는 건 좋은 소식’이라고 한 건, “대화는 좋아. 그러나 대화로 비핵화는 안돼”라는 비아냥으로 들리고, 사실은 북한을 잘 아는 둘 다 비건 방북, 나아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스나이더 말한 ‘비핵화,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리마인드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 수순은 사실상 ‘리비아 식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수 일만에 바그다드가 아작나는 걸 보고 2003년 중순, 은밀히 영국 정보기관과 접촉해 핵 개발 포기 의사를 타진한다. 영국은 이를 다시 미국 정보기관에 전달했다.

왜 영국과 접촉했을까?

리비아는 전통적으로 영국과 가까운 나라이다. 영국 등 서방이 리비아를 독립시켜주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카다피가 쿠테타를 일으키기 전인 69년까지 통치한 이드리스 1세 (쿠테타 전 리비아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했다) 는 영국군과 함께 북아프리카에서 나치 독일, 이태리를 상대로 싸웠다.

카다피도 미국과는 관계가 나빠도 영국, 이태리 등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리비아의 관료, 학자들 중에는 영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이 지금도 상당수에 이른다.

아무튼 2003년 말 카다피는 공식적으로 비핵화를 선언했다. 도망다니던 후세인 대통령이 검거되어 압송된 직후였다. 짐작컨대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도 후세인 꼴이 될 것이라고 겁을 먹은 듯 하다.

부시 대통령은 비핵화에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제재를 풀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는 심각했다. 미국 폭격기가 카다피의 대통령 궁을 폭격해 카다피 딸이 죽기도 했다. 카다피 자신은 폭격 직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대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핵 포기 선언 이후 폐기 절차는 즉각 시작되었지만 완전 폐기가 된 건 2005년 10월 이후였다. 22 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리비아가 다시 수교를 맺게 된 건 2006년 5월이며, 그 동안 미국은 제재를 풀지 않았다.

즉, 리비아식 핵폐기는 완전한 비핵화 및 검증 후 제재 완화 및 국교 정상화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를 지휘한 인물이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이다.

그 동안 청와대는 북핵 해결에 리비아 식 핵폐기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으며, 지난 해 4월에는 리비아식 핵폐기 논쟁은 이미 종결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건 비핵화 과정을 여러 단계로 쪼개고, 매 과정마다 일정한 수준의 댓가를 받는 것이다. 이를 살라미 쪼개 먹듯 한다고 해서, 살라미 전술이라고 하며, 종래 북한이 국제 협상에서 써 먹어왔던 방식이다.

그런데, 만일 스콧 스나이더가 말하듯, 비건이 ‘비핵화,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의 순서대로 발표했다면, 청와대의 바램과는 달리 미국은 여전히 리비아 식 핵폐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의 하나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면 미국은 핵탄두와 미사일은 물론 핵개발과 관련한 모든 시설 장비 자료를 미국 모처로 옮겨 밀봉한다. 또, 핵뿐 아니라 리비아에서 그랬듯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은 최소한 2년, 어쩌면 3~4 년은 넘게 걸릴 긴 작업이다.

이 과정이 끝나도 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한 후 의회의 승인을 받기까지도 또 수 개월이 걸릴 것이다.

물론 그 동안 미국의 제재 해제는 없으며 그 어떤 원조도 없을 것이다.

그걸 북한이 용납하고 견뎌낼까?

게다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확인이 안되었는데...

거의 가능성이 없는 얘기이다.




2019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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