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동계전 트라우마와 한국적 대비용 미 해병 훈련 기지 Mountain Warfare Training Center
















<브리짓포트 미 해병 훈련 기지>

미 해병대 훈련교육 기지가 미 본토에 약 16개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브리짓포트 시에라네바다 인근에 있는 Mountain Warfare Training Center 이다.

이 기지 캠프는 고도 2,100 미터 높이에 있으며, 캠프 전체 면적은 190 평방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최고 고도는 3천 미터가 넘는다.


이 기지가 만들어진 건 1951년.

바로 한국전이 한참일때, 한국전에 대비해 만들어졌다.

6/25는 6월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서 발발해 3일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고, 3개월이 안된 9월 초에 낙동강까지 밀렸다.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을 이끌고 인천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역전되어 10월 19일 평양을 수복하고, 일 주일 뒤인 10월 말에는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때 중공군이 참전을 선언하며, 산발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맥아더 사령관은 11월 24일 크리스마스 공세라 명명된 최종 공세를 통해 중공군을 내몰고 북괴를 완전히 절멸시킬 계획을 짰다.

그러나, 11월25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려 연합군 방어선이 붕괴되면서 무질서하게 후퇴를 시작한다.

이미 북한의 겨울은 깊었다.

연합군은 12월 4일 다시 평양을 내주고, 12월 말, 북괴와 중공군은 38선을 넘었으며, 연합군은 1월 4일 서울에서 철수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 작전의 대대적인 성공에 힘입어 1950년이 가기 전에 한반도를 통일시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빠르게 북진했다.

결국 유엔군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평양을 통과해 압록강에 이른 서부의 8군단과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고,원산 상륙을 통해 북진한 동부의 10군단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더 험한 산악지형과 긴 거리 탓에 북진 속도가 늦어진 10군단은 11월 말부터 장진호 인근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실제 연합군을 괴롭힌 건 중공군이 아니라 더럽게 추운 날씨였다. 미군과 연합군은 겨울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침 시베리아 한랭기단이 그 일대를 덮쳤고, 기온은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졌다.

장진호 전투에서 죽거나 실종된 군인은 약 6천명에 이르며 부상자 역시 5천명에 이르는데, 이외에도 비전투 손실자가 7천명이 넘는다고 보고되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동상으로 보인다.

10군단은 결국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 철수 작전을 펼쳤는데, 그게 흥남 철수이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주었고, 이후 미군은 ‘겨울 전쟁’을 가급적 회피한다.

브리짓포트 기지는 한국의 산악 지형과 차고 매서운 겨울 날씨를 경험할 동계 훈련 캠프로 지금은 나토(NATO) 파견군으로 북유럽에 배치되는 해병의 훈련을 맡고 있기도 하다.




2019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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