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자라고 있는 새로운 금융 위기 폭탄














지금 한국의 중장년들에게 ‘세계 경제 위기’란 용어를 각인시켜 준 건, 97년 시작한 IMF 사태 즉, 아시아 발 외환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비교적 빠르게 IMF 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파장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 10년 후 세계 경제에 또 다른 충격을 가져다 준 건, 이른바 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이 두 번의 세계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편으론 금융 체질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두 금융 위기는 약 10년 주기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전에는 세계 금융위기가 없었을까?

대부분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IMF 발생 약 10년 전에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다.

이른바 ‘저축대부조합(S&L. Savings & Loan Association) 사태’가 그것이다.

저축대부조합은 원래 조합원들이 낸 저금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해주는 일종의 협동저축기관이었는데 미국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자 시중 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주택 담보대출로 써야 할 돈을 부동산 업자에게 부동산 담보대출을 하거나, 정크 본드 등에 대거 대출하고, 횡령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80년 당시 미국 전역에는 약 3천개가 넘는 저축대부조합이 있었는데 88년에 이르러 이 중 500개가 파산했고, 630여개가 부실화되었다. 그 결과 대공항 이후 미국 최대의 경제 위기 사태에 이른다.

이 대부조합의 출자자들이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 조합의 파산은 서민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파장을 막기위해 1천6백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동원해 747개의 저축대부조합을 정리했다.

사실 미국의 금융위기 역사는 뿌리가 깊다.

1929년 대공황 이전에도 1873년, 1884년, 1893년, 1907년 등 거의 10년에 한번 꼴로 금융위기가 있었다.

미국의 금융 위기가 잠잠해진 건, 대공황 후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오일 쇼크 등으로 발생한 경제 위기는 있었지만, 이를 금융위기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1990~2000년대)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1988~1993)에도 금융위기는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나 이들 나라들의 금융위기는 같은 패턴을 보인다.

금융자유화나 규제 완화, 저금리 등으로 유동 자금이 늘어나고, 그 결과 버블이 생기고, 그 버블이 터지면서 실물 경제 위기가 생기는 것이다.

금융 위기의 결과, 투자자들이 대거 손실을 보고, 기업은 파산하고,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되고, 금리도 오르며 대출은 막히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반복되게 된다.

반대로 금리가 낮고, 유동자금이 넘쳐나고, 그 덕에 기업의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 결과 소비도 늘어나는 건 모두가 바라는 바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버블이 생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호황의 결과 거의 반복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지금 미국 경기는 호황이다.

미국의 경기순환사이클을 볼 때, 지난 7월 기준으로 경기확장기가 121개월을 넘어서, 1854년 이래 가장 긴 경기상승 구간을 구가하고 있다. 그 전의 경기 확장은 1991년~2001년으로 120개월간 경기 확장기가 있었다.

그 덕에 미국 실업률은 49년 이래 최저 수준이며, 주가 등 자산 가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중이다.

이렇게 미국의 경기가 좋은 건, 연준의 저금리 정책, 양적 완화의 영향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정책과 맞물려 IT 등 기술 혁신과 셰일 가스 산업의 급속적 성장이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호황 뒤의 불황 즉, 또 다른 금융 위기가 생길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많은 언론과 기관들은 새로운 금융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새로운 금융 위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복습할 필요가 있다.

리만브라더스 사태의 뿌리는 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결과 월가가 휘청거렸고, 미국 정부는 경기를 부흥시키기 위해 금리를 낮춰 시장에 돈을 풀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야 했으며, 월가의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94년, 월가의 스타 금융인과 25명의 내노라하는 경제학자들이 슈퍼컴퓨터로 무장한 헤지펀드를 설립한다. 이 회사에 참여한 파트너 두 명은 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막강한 인력을 갖췄다.

이 회사의 이름은 롱텀캐피탈매니지멘트(LTCM).

이들의 투자 원칙은 이 회사를 구성하는 ‘천재’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구성한 슈퍼컴퓨터가 파악한 특정 자산의 이론적 가치가 싸면 매입, 비싸면 매도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이들은 최소 투자액을 1백만 달러로 제한하고, 다른 회사의 두배에 이르는 수수료를 받았으며, 투자 시 3년동안 회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음에도 막대한 투자를 끌어들였다.

LTCM은 47억 달러를 모집해 이를 자본금으로 1,250 억달러를 운용했다. 자기 자본의 26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투자를 한 셈이다.

투자 첫해 수익율은 19.9%, 그 다음해부터는 40%~59%가 넘는 수익율을 올리는 기세를 보였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17.1%의 수익율을 올렸다.

이러니, 개인과 각종 기금, 월가는 물론 유럽의 시중 은행들도 ‘제발 투자를 받아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 같던 LTCM은 98년 8월 17일,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LTCM의 슈퍼컴퓨터가 러시아의 국채금리는 싸고, 미국 국채금리가 비싸다는 판단을 했었는지 알수 없지만, 당시 LTCM은 러시아 국채를 대거 사들이고, 미국 국채는 공매도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모라토리엄 선언 당일 LTCM은 자기 자본의 15%를 잃었다. 월가의 기린아 LTCM이 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돌자, 그 즉시 다우존스 지수는 1,000 포인트가 빠졌다.

LTCM은 큰 손실을 보자, LTCM에 투자한 미국 은행들도 큰 손해로 부실화되었고,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본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통해 LTCM 의 파산을 막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LCTM은 결국 파산하게 된다.

연준은 파장을 줄이고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대거 금리를 인하하고 주택 담보 대출 규제를 완화하며 경기 부흥을 꾀했다.

동시에 미국 국채로 꿀을 빨던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날리기 시작했다.

금리가 떨어지고 주택 담보 대출의 규제가 풀리자 너도나도 주택 담보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한 투자 은행들은 채권 시장에 눈을 돌렸고, 주택 저당권을 모아 새로운 채권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y)라고 부른다.

은행은 MBS를 판매한 돈으로 더 많은 주택 담보 대출을 해 주면서, 직업도 없고 신용도 낮은 이들에게도 주택 담보 대출을 하게 된다.

이렇게 낮은 신용도를 가진 이에게 대출하는 것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한다. 은행은 이들에게는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대출을 꺼리지 않았다. 뭐, 어쨌거나 주택이라는 담보가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는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신용도가 좋은 주택담보 저당권을 묶어 부채담보부 증권 (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판매했다.

이외에도 각종 파생 상품을 만들어 팔아제꼈다. 이런 식으로 실제 주택 담보 대출금의 20배에 달하는 금융 시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금리가 오르고, 주택 경기가 꺽이자, 집값이 떨어지면서 거품이 터졌고, MBO가 부실화되었고, 연쇄적으로 각종 파생 상품도 부실화되었고 손실 규모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그 결과, 5조 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연금, 예금, 퇴직금 등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국 8백만명이 실직하고, 6백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미국에서만 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교훈은 명확하다.

상환 능력이 없는 저신용자들에게 무리하게 대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파생 상품을 만들어 구매자와 투자자의 눈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한 듯 하다.

왜냐면 또 다른 위기의 폭탄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폭탄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우선, 미국 기준금리가 어떻게 변동했는지 알아보자.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전 미국 기준금리는 5.5%였다. 2000년 5월 6.5%까지 올라간 금리는 2001년 11월 2.0%까지 급락했으며, 2003년 6월 1.0%로 떨어진다.

이후 2004년 말 2.25%, 2005년 말 4.25%로 꾸준히 올랐다가 2006년 6월 5.25%로 정점을 찍은 후 떨어지기 시작해, 2008년 말 0.25%를 기록한 후 2015년 12월까지 만 7년간 기준금리 0.25% 를 유지했다.

12월 이후 또 다시 금리가 올라, 2019년 8월 2.25%를 찍은 후 다시 1.75%대로 떨어져 있다.









이렇게 연준이 저금리를 유지하며, 미국 국채를 매입해 달러를 시장 푸는 것을 양적 완화라고 표현한다. 흔히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중에 달러를 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MBS나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것으로 유동성을 키운다.

최근 미국이 0.25%의 낮은 금리를 유지하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건, 경기가 과열되고 부동산 자산 가격이 높아지며 인플레이션 징조를 보이자 이를 조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경기 침체 조짐을 보이자 다시 금리를 다소 떨구었던 건이다.

연준은 만 7년간 0.25%로 묶었던 미국 기준 금리를 2015년 12월 0.5%로 올렸다가, 1년 후인 16년 12월 0.75%로 다시 올리고, 3개월 후 1% (2017년 3월), 다시 3개월 후 1.25% (2017년 6월), 6개월 후 1.50% (2017년 12월), 3개월 후 1.75%(2018년 3월), 3개월 후 2.0% (2018년 6월), 3개월 후 2.25% (2018년 9월), 그 3개월 후인 2018년 12월 2.5%로 올렸다.

즉, 2015년 12월부터 만 3년간 2.25%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 경기와 달러 금리는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면 안전자산인 달러의 수요가 늘고, 글로벌 자금은 미국으로 유입되고, 신흥 시장에서는 자본이 유출되어 그 결과 달러가 마른다.

또, 미국 경기가 침체하면 신흥 국가들의 수출이 감소해 세계 경제 침체가 야기된다.

반대로, 달러 금리가 떨어지면 미국 투자자들은 더 나은 수익을 쫓아 신흥 시장에 투자를 하게 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건, 미국 경기에 거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금리 인상을 견딜 체질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 경제가 탄탄한가를 알려면 금리를 올려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연준이 금리를 계속 올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강하게 연준을 비난하며 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시장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결국 연준은 올해 8,9,10월 세 차례에 걸쳐 0.25% 씩 0.75%의 금리를 인하해 현재 미국 기준 금리는 1.75%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아니라 연준을 ‘적’으로 규정하며 더 빨리, 더 낮은 금리로 인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다’면서 마이너스 금리까지 언급하며 연준 의장 파월을 압박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국가는 일본과 유럽 국가들을 말한다. 현재, 독일,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등은 모두 마이너스 금리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도 0% 이다.

이들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고, 낮은 금리를 유도하자, 저성장 기조에 있는 유럽 국가들은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달러 유출을 막고, 소비를 늘려 경기를 부흥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일본과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가 경기 진작에 도움이 되었을까?

딱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국가들의 무역 흑자는 늘었으나 덴마크, 스웨덴 등은 정체를 보이며, 대부분 국가의 주가와 소비는 늘다가 다시 줄어 들고, 기업 대출은 정체하는 반면 오히려 가계 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즉, 실물경제 개선 효과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

유일하게 오르는 건 부동산 가격 뿐이다.

전 세계 주택 시장 중 고평가되었거나 버블 위험이 있는 도시 15 곳 8 곳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취하는 나라에 속한다.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 국채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하는 연기금은 불리하게 된다. 현재 전세계 각국이 발행한 국채 중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국채의 규모는 무려 17조 달러(약 2경580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 이것에 투자하는 각종 연기금의 운용 수익률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피해 사례가 GE 이다.

한때 미국을 대표하던 기업인 GE는 경영 악화와 채무로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만 수십억 달러의 채무가 돌아와 상환해야 했고, 내년 초에도 50 억달러 이상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GE는 한때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었지만, 작년 미국 주식 시장인 다우존스 지수 구성종목에서 퇴출되었을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나마 수만명의 임직원을 퇴출하는 구조조정과 문어발 사업 매각을 통해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직원을 퇴직시키려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제는 퇴직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

GE와 같은 미국 대기업 대부분은 퇴직시 지급할 연금액을 미리 정하고, 적립금 운용을 회사가 맡는다. 만일 연금 수익률이 부진할 경우, 그 부족분은 회사가 메워야 한다. 현재 GE가 임직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연금 총액은 918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금액은 GE 시가 총액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즉 회사를 다 팔아도 퇴직금 줄 돈이 모자라단 말이다.

이처럼 미국 상위 100개 기업의 퇴직연금 총액은 1조6,6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저금리에 의한 연금수익률 저하로 큰 곤란을 겪고 있으며, 대안을 만들지 못할 경우 커다란 문제가 야기될 수 밖에 없다.

또, 저금리로 은행은 예대마진을 노릴 수 없어 은행도 부실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수익 중 상당 부분을 예대금리에 의존하는 일본의 지역 기반 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충격을 크게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 이제, 새로운 미국 금융 위기의 폭탄으로 떠 오르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에 대해 알아보자.

이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대출채권담보부 증권)이다.

CLO ?

우리는 앞서 부채담보부 증권, 즉 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유발한 주범이었다고 복습한 바 있다.

CDO는 일부 우량과 대부분 부실한 주택 담보 채권(MBS 즉, 주택저당권)을 섞어 만든 파생 상품이었다. 마찬가지로 CLO는 주로 부실한 기업에 제공한 대출채권을 섞어 만든 파생 상품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나 이미 대출을 받은 기업도 대출이 필요하다.

신용도가 BB 미만인 기업에 대한 대출은 거의 투기와 같은데, 이런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렵다. 이런 기업은 영업 자산이나 다른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며, 이를 레버지리 론(Leveraged Loan) 혹은 시니어 시큐어드 론(Senior Secured Loan), 뱅크 론(Bank Loan) 등으로 부른다.

은행은 이런 저신용도 기업에게 대출 조건을 완화하거나 약식 대출(Covenant Light Loan)을 통해 대출해 준다. 2018년 레버리지 론의 80%가 약식 대출에 의한 것이다. 약식 대출은 대출할 때, 기업에 부과하는 책임 조항을 완화하는 대신, 높은 이자를 받는 대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출이 쉬워지고 재무상황 보고 등에 대해 의무에서 벗을 수 있지만, 은행이나 투자자는 보호받기 어렵다.

은행이 이런 부실 기업에 대출을 해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율이 높기 때문이다. 대개 레버리지 론은 변동금리형 선순위 담보대출로 이루어진다. 즉, 채권과 달리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올라 회사채와 달리 손실이 적고 다른 부채보다 우선 상환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렇게 여러 기업에 대출한 후 그 채권을 담보로 ABS(Asset-Backed Securities. 자산담보부증권)을 발행한 후 이를 특수목적회사에 판다. 특수목적회사(SPC. Special purpose company)는 이를 묶어 거대 규모로 만든 후 이를 CLO로 쪼개 파생상품으로 판다. CDO가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y)를 묶어 만든 것과 같다.

CDO와 CLO의 특징은 여러개의 채권을 묶어 구조화함으로써 재무재표 상의 위험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CLO 증권을 구매한다는 건, 짬뽕 한 그릇을 사 먹는 것과 같은데, 구매자는 그 짬뽕의 신선도와 상품 가치를 알기 어렵다. 서로 다른 여러 재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CLO라는 짬뽕은 대부분 신선하지 못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CLO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각각의 재료의 CLO 신선도를 알 수 없다. 하나의 CLO에는 대개 100~300개의 대출 기업 채권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만일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모든 기업의 재무 구조가 건전하고, 담보가 충분하며 경기가 계속 좋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기업의 부채가 증가하거나, 담보 가치가 하락하거나, 주가가 떨어질 경우 기업의 가치는 떨어지고, 기업은 대출을 갚을 수 없다. 레버리지 론을 해준 은행이 어떤 이유로든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 CLO 시장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영란은행 (Bank of England)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CLO 기초 자산 규모 즉, 레버리지 론의 규모는 1.3 조~2.2 조 달러에 이르는데, 전년도에 비해 15% 늘어난 것이며, 증권화된 CLO는 8천억 달러에 이르며, 전년도에 비해 25% 증가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2018년 한 해에만 1,281억 달러 CLO가 발행되었다.

이렇게 CLO 시장이 커지는 건, 저금리 기조에서 기업의 부채가 크게 증가하고, 일반 회사채에 비해 CLO에 대한 수익률이 커, 이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CDO 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계속 위축되고 있는데, 이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가계 대출은 줄고, 기업 대출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CLO 투자의 큰 손은 일본이다.

마이너스 금리에 시달리는 일본 금융 기관들은 공격적으로 CLO 투자를 늘렸다. 현재 일본의 CLO 투자는 137 조원이 넘으며, 글로벌 투자액의 15%에 이른다.

일본금융 기관 중 CLO의 큰 손은 바로 노린추 은행(The Norinchukin Bank. 농림중앙금고)이다.

노린추 은행은 일본 전역 6천여개의 농업, 수산업, 임업 협동조합의 출자로 1923년 만들어졌다. 일본 농어민들이 가진 부동산 가격이 증가하면서 노린추 은행의 수신고도 급증해 현재 자산 규모는 1조 달러에 이르며, 운용 자금은 5천5백억 달러로 알려지고 있는 투자 은행이다.

지난 3월 노린추 은행이 사들인 CLO는 7조4천억엔 (680억 달러)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양은 JP 모건과 웰스 파고 은행이 보유한 양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기관들의 CLO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군인공제회, 경찰공제회, 행정공제회 등은 물론 우정사업본부, KB손보, 동부화재, 신한생명, KDB 등이 모두 8 조원에 가까운 CLO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이들 기관이 투자한 CLO의 신용 등급은 70~90%가 투기 등급에 해당한 BB 등급으로 고위험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큰 손 일본의 은행들은 대개 AA 급 이상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기업의 고위험 부채 규모는 얼마나 될까?

미국 기업의 고위험 부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레버리지 론과 하이일드 채권(High Yield Bonds)이 그것이다. 하이일드 채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가 발행하는 회사채이다. 대개 수익률은 높지만, 그만큼 위험도도 크다.

지난 해 말, 하이일드 채권의 규모는 대략 1.2 조 달러 수준인데, 하이일드 채권 규모는 2013년 이래 계속 줄어들고 있다. 당연하다. 레버리지 론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내 레버리지 론의 잔액 규모도 1.2 조 달러 수준인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인 2008년 말 대비 2 배이상 증가한 것이다. 레버리지 론의 대략 60% 가량은 CLO로 증권화하여 팔렸다.

즉, 레버리지 론은 늘어나고 하이일드 채권은 줄고 있으며, 이 둘의 고위험 기업 부채 규모는 2.4 조 달러에 이른다.

그럼, 기업들은 대출을 받아 어떻게 쓸까?

원칙적으로는 설비투자에 쓰거나 고용을 늘려 실물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달된 자금은 M&A, LBO(차입매수. Leveraged Buy-Out)에 쓰거나 자사주 매입, 배당에 쓰고 있을 뿐 신규 투자에는 거의 사용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된다.

그렇다면 CLO는 새로운 금융 위기의 뇌관일 될까?

S&P Global 에 따르면, 2018년 말 레버리지 론의 채무불이행률은 1.6%에 불과하다. 2014~2015년의 4~4.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왜냐면 여전히 미국의 경제여건은 양호하기 때문이다. 즉, 단기간 내에 대규모 기업군의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CLO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전 세계의 저금리 지속 경향으로 대출 이자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크다고 할 수 없다.

또, CLO는 주택담보가 기초자산인 CDO와 달리 기업을 상대로 대출한 ABS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금리가 올라 이자율이 덩달아 오르고, 주택 구매자들의 주택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거품처럼 커진 주택 가격이 폭락하자 담보가 대출 원금에 못 미치면서 발생한 default 사태이다.

기초 자산이 붕괴하자 기초 자산의 20배에 달하는 각종 파생 상품들이 연쇄부도를 일으키면서 은행, 보험사, 펀드 등이 연달아 부실화되고, 여기에 투자한 일반인, 연기금 등이 모두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CLO는 CDO처럼 이를 응용한 각종 파생 상품을 만들 수 없으며 비교적 단순한 구조이다.

또 기업의 경우, 인수 합병 등의 방식으로 채무와 함께 기업을 매각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많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CLO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생각이 짙다.

그럼, CLO는 마냥 안전할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월가 사람들은 미국의 주택 가격이 동시에 폭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주택들이 동시에 폭락하고 담보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CDO가 부실화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태는 현실화되었다.

레버리지 론은 은행이 기업에 기한없이 빌려주는 돈이 아니다. 대개 2~3년 후에는 상환해야 하는 돈이다. 그때까지는 이자만 내면 된다. 그러나 상환시기가 도래했을 때 기업의 상환 능력이 없거나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거나, 담보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사라져버렸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레버리지 론이 급증했음으로, 기업들의 상환 시기도 동시에 돌아오게 된다. 대개 2020년부터 상환이 시작되어 21년 이후 본격적인 상환 시기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 시기에 맞물려 금리가 인상되고, 미국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고, 이들 기업의 상환 능력이 갖춰지지 못했을 경우 이는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

수 많은 기업은 매각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이며 그 중 몇몇은 자본력이 있는 기업에 합병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파산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자금력을 갖춘 몇몇 사모펀드들의 기업 사냥 파티가 벌어질 수도 있다. 시장에 나온 기업들의 가치는 더욱 더 떨어져 헐값에 팔려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매각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파산하게 되고, 주로 약식 대출을 통해 대출해 준 은행들은 큰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고, CLO의 가치도 하락해 이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부실화되고 과거처럼 은행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세상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게다가 경제는 심리이다.

불안은 전염처럼 번지며, 루머는 기업이나 은행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다. 호황 끝은 늘 불황이었으며, 경제 위기, 금융 위기는 바보처럼 늘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 위기 속에서 노다지를 캐는 자들도 늘 있어왔다.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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