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 법은 왜 정부 입법 발의를 하지 않았을까?







지난 11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민식이 부모의 사연을 듣고,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출입기자 단톡방에 문 대통령이 민식이 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이 관심을 갖자 민식이 아버지가 11일 올린 청와대 청원글은 19일 저녁까지 동의자가 2만7천명에 불과했으나 방송이 끝난 후 20만명을 넘어섰다.

대통령이 이 사건을 국민적 관심사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민식이 법은 현재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스쿨 존에서 아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을 수 많은 이들이 반대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사이트에 올라온 관련 법에는 입법을 반대한다면 의견만 가득하다.

반대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법에 따라 설치해야 할 시설물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고, 둘째는 처벌 규정이 다른 법과 비교할 때 형평성이 없다는 것이다.

민식이 법 논란을 차치하고, 스쿨 존에서 어이없게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많다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대책 마련은 꼭 법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관은 행정 지도, 조례 등을 개정해 스쿨 존이 운전자의 눈에 더 잘 띄게 노력하고, 부모와 학교는 아동들에게 교통 안전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며, 사회적으로는 스쿨 존에서의 안전 운전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 없이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게 바로 입법 만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꼭 법으로 해야 하고, 법이 필요하다면, 민식이 부모의 호소를 듣고 눈물을 보였다는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있다.

정부 입법을 통해서 말이다.

법안 발의는 꼭 국회의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므로 법안 발의를 부처에 명령할 수 있다. 이게 국정 운영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했고, 대표 발의한 여당 의원의 과거 무면허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 전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의안 접수된지 2 개월도 안되는 법, 상임위 상정된지 일주일도 안된 법이 본 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온통 난리이다.
(의안 접수 : 10월 11일. 소관상임위 상정 11월 27일)

뭔가 석연치 않다.

왜 정부가 직접 입법 발의하지 않았을까?

만일 정부가 입법을 추진했다면 이런 논란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법안 공포까지 최소 5~7 개월이 걸린다. 그나마 여당이 절대적으로 밀어줄 때 그렇다.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원 입법도 1, 2 년 걸리는 건 예사이다. 그러나 당정이 뜻을 같이하는 법안은 훨씬 더 빨라진다. 민식이 법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정부가 필요로 하는 법도 의원에서 부탁해 발의하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정부는 빨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고, 의원은 자기 이름으로 내건 법을 만드는 실적이 생기니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행정부처에서 미는 법안을 다른 의원에게 가져다 주면, 화를 내는 의원도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 입법으로 만들어진 법보다 의원 입법 법이 월등히 많다.

2018년의 경우, 정부가 발의해 공포된 법은 모두 189 건인데 비해, 의원이 발의해 공포된 법은 752 건으로 무려 4배에 달한다.

두번째 이유는 정부 입법의 경우, 규제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은, 대체로 규제의 성격이 강하고, 행정 부처가 만드는 법은 더욱 더 규제의 성격이 강해 정부 입법 법령은 반드시 규제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키고, 국민권을 제한하므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규제 철폐를 주요 아젠다로 삼고 규제개혁위를 가동하기도 했으며, 행정부처가 의원에게 부탁해 규제 심사를 우회하여 입법하는 행위를 막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민식이 법은 대표적인 규제법에 속한다. 만일 이 법안을 정부가 발의했다면 당연히 규제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스쿨 존에서의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가 입법했다면,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를 통해 이 법이 막무가내 식 처벌 규정을 두지도 못했을 것이며, 충분한 숙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감정에 취우친 입법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대통령이 그것에 앞장선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2019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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