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집 성추행 판결' 단상
최근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곰탕집 성추행 판결'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판결이 되거나, 사회에 경종을 내리는 판결이 될 것이다.
1. 사법부에 대한 불신
법원은 형사 사건을 다룸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등이 그것이다.
특히 증거재판주의는 형사소송법 제 307조에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즉, 유죄로 판결하려면, 증거에 근거하여 한다는 것이다.
'곰탕집 성추행 판결'의 1심, 2심, 3심 모두 유죄로 판결되었다.
이 사건의 유의한 증거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피해자의 증언이며, 두번째는 CCTV 였다.
그런데 CCTV를 판독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전문가는 CCTV로는 성추행을 확인할 수 없으며, 피고인의 행동 패턴으로 볼 때 강제 추행으로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우발적 신체 접촉의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법원은 이 전문가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증언이 일관성이 있고 구체적이라며 피고인의 주장을 기각하고 유죄로 선고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검사 역시 언론을 통해 '추행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피고인의 행동이 피해자의 진술과 일치해 기소했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검찰은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기소하고, 법원 역시 오로지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판결했다.
이들의 판단은 결국 이런 것으로 보인다.
좁은 장소에서 우연히 신체가 접촉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행동이 없었다면, 피해자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굳이 문제를 제기하고 고소하며 여기까지 왔겠느냐?
우연히 신체가 부딪힌 것이라면 왜 피고인은 그 즉시 사과하고 오해를 풀지 않았느냐?
많은 이들이 이 판결에 분노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증거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증언 만으로 유죄를 판결할 경우 사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판결이라면 누구든지 성추행의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남성혐오주의에 빠진 어떤 이는 게시판에 자신이 싫어하는 동료 직원을 CCTV 없는 곳으로 데려간 후 성추행으로 신고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법 체계는 유죄의 입증은 검찰에게 책임이 있고, 이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판결하는 사법부의 태도는 증거재판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며 사법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법원은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유죄 판결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2. 사회적 경종
우리나라는 보편적으로 성추행 등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었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데, 동양 문화권의 특성일수도 있고,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불법 부당하게 성추행, 성범죄에 노출되어 희생되어온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의 증언에 의존해 성추행을 판단하는 법원의 고민은 성추행을 증거로 입증하기 어렵다고 해도, 이런 판례를 통해 피해자를 구제하고, 사회적 경종을 울리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경종이란,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일 것이다.
성추행은 상대의 행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남성들은 '내'가 하는 행동이 언제 누구에게 수치심을 주게될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법원은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성적수치심을 느꼈다고 해도, 그 행동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행동이 아니라면 성추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즉,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예민한 부위에 신체 접촉이 있었을 때, 그게 의도적이지 않고, 그 즉시 대응한다면 성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하철 등 밀집한 장소에서 우연히 신체 접촉이 있었을 때 무시하고 딴짓을 하거나 상대가 항의할 때, 부인하고 오히려 역정을 내면 성추행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객기에, 혹은 술에 취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추행하려다 발각되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혀 추행의 의지가 없었어나,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성수치심이나 불쾌감을 주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체 행동을 했다가 상대가 이를 항의한다면 그 즉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이렇게 했을 때 이를 기소하거나 처벌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미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몸이 부딪히거나 신체가 접촉되면 내가 한 행동이 아니라, 상대가 와서 부딪힌 것이라도 그 즉시 'sorry' 라고 말하며 서로 양해를 구한다. 그 전에 남에 접촉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고 주의하려고 한다.
반면, 우리는 멀쩡히 남의 발을 밟고도 모른 척하고, 좌석이 좁다는 이유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의 신체에 밀착하거나 닿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문화적 차이거나 후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만일 곰탕집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여성이 항의했을 때 고의가 없었다며 사과했다면 과연 2 년 넘게 재판에 시달리고 성추행범 전과가 생겼을까?
검찰이 증언만으로 무리하게 기소하고, 법원이 사법부 질서를 훼손하며 유죄로 판결한 것에 대한 문제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법은 죄를 짓고 증거가 차고 넘쳐도 그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되었다면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즉, 유죄 유무는 반듯이 죄의 유무와 같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 성추행에서 예외적으로 증언에 의존해 판결하는 것을 계속 용납해야 할까? 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법부와 시민단체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이 감정적이라고 오해받아서도 안된다.
둘째,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용인되고 묵과하고 넘어갔던 부당하고 무례한 행동, 상대를 얕잡아 보고 함부로 했던 행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 통에서 피난민으로 사는 게 아니다.
2019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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