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개 엄마, 개 아빠입니까?
이른바 반려 동물 (애완 동물)을 키우는 우리나라 인구는 천만명이 넘으며, 애완 동물의 수는 최소 160만 마리(2014년 조사)가 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는데, 이 수는 허수이며,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유기되는 동물의 수 역시 해마다 수 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추정조차 어렵다.
이처럼 애완 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동물의 수가 늘자, 애완 동물 산업은 성장일로에 있어 2015년 이미 9천억원 시장이 되었고, 지금은 조 단위의 시장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애완 동물을 “반려 동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반려(伴侶)’란 ‘짝’을 말하는 것이며, 영어로는 companion, mate, partner 등이 되겠다.
우리는 흔히 ‘부부 관계’를 ‘인생의 반려자 관계’라고 부르는데, 반려라는 호칭을 붙이려면 적어도 동격 즉, 격이 맞어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개나 고양이가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개와 사람이 동격일 수는 없으므로, 반려견, 반려묘라고 부르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일종의 PC(political correctness)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애완 동물에 ‘빈려’라는 명칭을 붙이는 건, 외국의 비하면, 사실 애교에 가까운 일이다.
2012년 영국에서는 방송에 나와 애견에게 공개 구혼하고,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을 ‘동의’로 보고 결혼하겠다는 여성이 있었고, 2005년에는 41세 백만장자 영국 여성이 15년간 흠모해 온 돌고래에게 청혼하여 이스라엘 리조트에서 호화 결혼식을 했으며, 브라질의 한 노인은 염소와 결혼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 동물과의 결혼이 합법화된 것이 아니므로, 그저 이벤트 성 행사에 그칠 뿐이지만, 동물과 결혼하겠다는 이들의 마음도 과연 일회성 행사였을까는 의문이다.
동물과 결혼하겠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동물을 “나와 동등한 격체(格體)”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같은 격체(格體)를 영어로 ‘personhood(개성)를 가진 subject’ 라고 하고, 사람이 아닌 personhood를 가진 격체를 ‘non-human person’이라고 한다.
‘non-human person’ 은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진보적 시민 운동에서 주장되었고, 이 운동을 주도하는 토마스 화이트 교수(Thomas White)는 인간(human)을 “a biological concept, pertaining to the specific species homo sapiens (호모 사피엔스로 국한하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규정하고, 격체(person)는 “a philosophical concept, as ‘a being with special characteristics who deserves special treatment’(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특별한 개체라는 철학적 개념)”로 정의한다.
그는 또, “비인간 격체”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Alive
- Aware
- Feels pleasure and pain
- Has emotions
- Possesses self-consciousness, personality
- Exhibits self-controlled behaviour
- Able to recognise and treat other persons appropriately
- Exhibits higher order intellectual abilities
즉, 의식이 있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감정이 있고, 자의식이 있으며, 조절가능한 행동을 하며, 다른 개체를 인식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물도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이성과 감정이 있으며 때로는 도덕적 행동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는 만큼, “동물은 기계이다”라는 데카르트 식 명제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하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의도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이들에게 ‘격’을 부여하고 나아가 인격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두려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이들의 진보적 시각은 동물 복지, 동물 권리 보호에서 그치지 않으며, 동물과의 결혼, 동물을 통한 매춘 (수간) 등을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이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2년 스위스는 동물을 ‘thing’이 아닌 ‘being’으로 간주하도록 헌법을 개정했으며, 독일은 2002년 헌법에 동물의 권리를 명시하였다.
뉴질랜드는 1999년 다섯가지 대형 원숭이 종에 대해 기초 권리를 보장해 주었으며, 이에 따라 이 동물들에 대한 연구, 시험, 교육이 전면 금지되었으며, 스페인의 한 주에서는 모든 원숭이에 대해 같은 권리를 부여했다.
2013년 인도는 고래와 돌고래 등의 동물이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예민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사육하거나 전시하거나 흥행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2014년 아르헨티나 동물원에 있던 ‘산드라’라는 이름의 오랑우탄은 아르헨티나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자유를 빼앗긴 ‘non-human subject’로 간주되었으며, 기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2015년 허클레스와 레오라는 이름의 두 마리 침팬지를 풀어달라는 인신보호 영장(the writ of habeas corpus) 청구가 뉴욕 법원에서 접수된 바 있다. 이것의 의미는 이 두 침팬지를 소유한 스토니 부룩 대학이 이 동물을 데리고 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리 과정에서 이 영창 청구는 기각되었다.
이 같은 동물 권리와 격에 대한 일련의 헌법 개정과 법원의 판결은 진보적 사회 단체들의 노력(?)과 암암리에 젖어든 PC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건, 사실상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수의 인류가 최대의 풍요와 평화를 누리면서 생겨난 가치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빈곤과 궁핍했던 영국이나 한국 전쟁 당시의 한반도, 대공황 당시의 미국에서도 이처럼 동물 권리를 주장했을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또, 멀리볼 것 없이, 먹고 살만했을 때는 ‘남들처럼 개 한 마리 쯤’이란 생각으로 ‘반려견’을 데려오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 버리는 세태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애완 동물 사육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건, 어느 날 갑자기 국민들이 동물의 복지나 권리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그야말로 ‘먹고 살만해지니까’ 가능해진 것이다.
즉, 인류가 누리는 평화와 풍요의 낙수 효과를 동물들이 누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동물 보호나 동물 복지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성(sex)에 만족하지 못해 다른 성 역할에 빠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성애를 탐닉하고, 나아가 동성애 권리를 부르짖으며 심지어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된 다음의 과정이 동물과의 결혼 합법화라는 건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미 동물과의 상징적 결혼이 수없이 이벤트처럼 있어왔으며, 이는 상징적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해왔던 바로 그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동물 성애자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면, 동물과의 성관계나 결혼을 추구하는 소수자의 권리 역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동성애, 동성결혼이라는 좋은 교과서가 있기 때문에 쉽게 따라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이제 동물은 짐승이 아니라, 법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객체이며, 단지 인간이 아닐 뿐, 지성, 감성, 개성을 지닌 non-human person인 것이다.
Human이 person과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성관계(수간)를 하고, 나아가 결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주장될 수 있는 시기가 올 날이 멀지 않았다.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고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용어는 사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는 개이고,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다. 개는 내 동생이나, 내 새끼나 우리 애가 될 수 없다.
당신이 개 애비나 애미가 될 수 없듯이.
2017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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