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영웅의 전설










12년전 한국에는 영웅이 있었다.

온 국민이 그에게 성원을 보내는 것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 유시민,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등 참여 정부 핵심 인물과 주요 정치인들이 모두 그를 성원하고 지지했다.

정부는 거의 대통령 급 경호를 지원해줬고, 대한항공은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기도 했다. 기념우표도 만들어졌다.

바로 황우석 박사의 얘기이다.

그는 언론 플레이에도 능해서 열린음악회에 참석해 클론 공연 후 ‘강원래가 다시 벌떡 일어나 화려한 발놀임을 하기를 바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PD 수첩은 이 발언이 ‘너를 걷게 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주말없이 연구에 매진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자신과 연구원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지 망설임없이 강조하곤 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연구 목적이 환자와 국가를 위해서라며, 자신의 애국심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과학은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책을 낼 정도로 애국자(?)였다.

그의 연구 핵심은 기증받은 난자의 핵을 제거한 후, 환자로부터 추출된 체세포의 핵을 난자에 넣어 전기 자극 후 이 난자를 배양하면 줄기세포가 되어 신경, 심장, 근육 세포 등으로 만들 수 있어, 이를 통해 뇌질환, 척수 질환, 심장 질환 등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적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 난치병, 불치병 등을 가진 환자와 가족들에게 황우석 박사는 영웅 이상이었다.

그는 실제 줄기세포를 배양했다며 논문을 써 ‘사이언스’ 지에 발표를 했는데, 이후 PD 수첩은 탐사 보도를 통해 황우석 박사의 연구 행태에 대한 지적을 했다.

PD 수첩의 의문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실험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였다. PD 수첩은 난자가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제공된 것이라며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에 대한 광적인 지지에 본질은 묻혔고, PD 수첩은 매도되었고, 담당 PD 는 경질되었다.

모 의학 전문 기자는 ‘진실보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말을 남기며 황우석 박사를 옹호했고, 노무현 대통령, 정운찬 총장 등도 전면에 나서 황우석 박사를 감싸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이 윤리적 논란의 한편, BRIC(포항공대 생물학 정보센터) 사이트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최고 업적인 사이언스 지에 제출된 논문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시되었다. 한 마디로, 배아줄기세포라고 주장한 사진들이 조작되었거나, 다른 세포 사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소장파 학자들은 외국 학계가 이를 문제 삼기 전에 내부적으로 검증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우석 박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2차 검증에 응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 그의 초췌하고 수염이 더부룩한 모습이 방송을 타, 지지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 가운데 언론과 여론은 황우석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공방을 거듭했고, 국민들은 누구 주장이 사실인지 의문을 가진 체 황우석 박사에게 동정표를 던졌다.

결국 이 논란은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이 ‘체세포는 없다’고 폭탄 발언을 함으로써 종지부를 찍게 된다.

서울대는 자체 조사에 착수하였고, 조사 결과 연구는 조작되었다, 즉, 체세포 핵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허탈감에 빠진 탄식의 소리만이 거리를 메웠다.

서울대는 나아가 황우석 박사를 스타로 만든 복제소 영롱이에 대한 논문이나 연구 노트도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국민을 들뜨게 한 죄, 국민과 과학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죄의 댓가로 검찰은 황우석 박사 주변을 탈탈 털었지만, 서울대에서 파면되었을 뿐, 실형을 선고받지는 않았다. 그와 연구를 같이 했던 연구원들은 관련 논문이 취소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한국 과학계는 국제 사회에서 낙인 찍혔고, 사건 종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의 줄기세포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규제가 강화되고 외면받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사이언스 지에 제출한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은 지나친 국민적 기대에 못이겨 논문을 조작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적 기대는 2004년 사이언스 지에 제출한 논문의 결과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지식인이라고 추켜세우며, 그의 개 복제, 젖소 복제를 침소붕대하며 황우석 박사를 바람들게 하고, 언론 앞에 내세운 잘못이기도 하다.

황우석 박사 스스로는 자신을 통해 줄기세포 연구에 더 많은 지원과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줄기 세포 연구가 꽃을 피울 수 있으며, 나아가 수 많은 난치병 환자를 구원하고 의료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 기꺼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자신과 연구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연구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환자와 국가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 노력을 하는지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사진 조작 쯤이야 하는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백명을 동원하여, 길을 걷는 한 사람 주위를 애워싸고, 갑자기 백명이 주저앉으면, 그 한 명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릴 틈없이 따라 주저앉는다는 실험이다.

백명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그도 뛴다. 백명이 빈 하늘을 가리키면 그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믿게 된다.

이를 군중 심리하고 한다. 군중에 속하려면 남들과 같이 애꾸가 되어야 하며, 왼손잡이가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왜냐면, 군중 심리의 속성 중에는 군중이 아닌 자를 배격하고 타도하려고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중 속에 둘러쌓인 사람은 본능적으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영문도 이유도 모른 체 같이 지지하고, 같이 성원한다. 이 때 ‘아니다’라고 말하면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민족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한국 국민의 민족성에는 냄비 근성과 피란민 근성이 민족성일 것이다.

군중 심리는 배척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피란민 근성은 따라가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그래서 남들이 롱 패딩을 입으면 나도 입어야 한다. 그걸 입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부모를 졸라 결국 사고 만다. 아니, 그 전에 자식이 그걸 입지 않으면 뒤떨어질까봐 먼저 사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등은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 영웅이다. 누구나 좋아하므로, 나도 좋아해야 한다.

황우석 박사도 초기에는 그랬다. 그가 하는 연구가 무언지는 잘 몰라도 기적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는 이라며 모두가 그를 지지했다. 우리 민족처럼 ‘기적’, ‘비방’을 신봉하는 민족도 드물다. 그 때 그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의문을 품는 건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오늘 날의 이 결과이다.

영웅은 원래 없다.

영웅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그 사회는 후진적 사회이다.

사회 시스템이 영웅이어야 한다.

어느 한 개인이 만드는 혁신, 개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만드는 구조와 이를 통한 혁신과 개혁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래서 영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에 의존해야 한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가 아니라, ‘그도 이렇게 말했다’가 되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2017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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