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젊은 피, 개혁 드라이브를 걸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
지난 11월 4일 사우디 정부가 구성한 반부패위원회는 위원회 결성 직후,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을 포함한 전현직 장관 수십 명을 체포한 후, 사우디 왕가 소유인 리츠 칼튼 호텔을 통채로 비워 이곳에 구금했다. 체포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왕자 중 한 명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부패위원회의 위원장은 현 왕세자 즉, 차기 국왕이다.
그의 이름은 모하메드 빈 살만이며 현 국왕의 아들로, 지난 6월 21일 전 왕세질이자 사촌인 모하메드 빈 나예프를 폐위한 후 왕세자 자리를 꾀찼다.
아랍인들의 이름은 서로 비슷해 보여, 구분이 쉽지 않은데, 이름을 정하는 방식을 알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현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full name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빈 파이살 빈 투르키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 빈 사우드"이며, 이 이름에는 가문 (집안),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등의 이름이 족보처럼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런 풀 네임을 쓸 수 없으므로 대개는 "어느 가문의 누구의 아들, 누구"라는 식의 이름을 쓴다.
즉, 살만 국왕의 경우, "사우드 가문의 압둘아지즈의 아들 살만"이며, ~의 아들이라는 아랍어는 빈 (bin), ~ (가문)의 라는 아랍어는 알(al)이므로, 그의 통상적 명칭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가 된다. 딸인 경우에는 빈트를 쓴다.
즉, 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는 '사우드 가문의 살만의 아들 모하메드'라는 뜻이다. 이를 약칭해 빈 살만이라고 하면 살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 빈 살만은 모하메드 빈 살만을 의미한다. 빈 나예프 역시 마찬가지이다.
왕위 계승을 놓고 두 왕자 간의 암투와 갈등, 왕세자 교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난 2016년 1월 포스팅한 적이 있다.
관련 자료 : 사우디 왕가의 내우외환과 국제 정세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 같은 사태를 '사우디판 이방원의 난'이라고 빗대 기사를 썼지만, 왕위 계승권을 놓고 다투었다는 점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엄밀히 말하면 이방원의 난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왕세자였던 빈 나예프로부터 왕세자 자리를 물려받는(?) 과정에서 차이가 난다.
언론에 의하면 살만 국왕과 아들 빈 살만은 빈 나예프 왕세자를 왕궁으로 불러 감금한 뒤, 왕세자 자리를 내 놓으라고 밤새 협박했다고 한다. 결국 이에 굴복한 빈 나예프는 빈 살만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동영상을 찍은 후 언론에는 "약물 중독"을 이유로 왕세자 자리를 내 놓았다.
살만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 |
즉, 현 국왕과 그의 아들이 공모(?)했다는 것이다. 현재 빈 나예프는 왕세자 권리는 물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수도 리야드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제다에 가택 연금된 상태이다.
빈 나예프 왕자 |
1. 왜 살만 국왕은 처음부터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지 않았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를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사실 18세기 전만 해도, 유목민이 주로 거주하는 황량한 사막에 불과했다. 개중에는 도망다니거나 쫓겨난 이들도 합류하여 살았는데, 핍박을 피해 달아난 초기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사우디의 유력 부족 중에는 사우드 가문이 있었는데, 20세기 초 사우드 가문의 압둘아지즈가 당시 오스만 제국(터키)이 지배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봉기를 일으켜 건국을 선언했다.
이후에도 스스로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 (선지자이자 왕)라고 자칭한 후세인 알 하심(이슬람 교를 만든 무하메드의 직계손)을 몰아내는 등 수 차례의 전쟁과 합병을 통해, 1932년 전제 군주제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을 선포 했는데, 사실상 영국 연합군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알둘아지즈는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부족과 결혼하였고, 20 여명의 부인을 거느리며, 40 명이 넘는 왕자를 두었다. (이중 살아 성장한 왕자는 30 여명이다)
알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 |
또, 왕권을 놓고 다투는 일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사우디 왕은 2 대 왕부터 현 7 대 국왕 살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에 이르기까지 모두 초대 왕들의 아들들이다.
새로 왕이 등극하면 다음 순위의 왕 즉, 왕세제가 결정되었는데, 현 살만 국왕이 2015년 재위에 오를 때 결정된 왕세제는 초대 왕의 35번째 아들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이었으나, 부정부패를 이유로 곧 폐위된 후, 살만 국왕의 친형 즉, 초대 왕의 8번째 부인이 낳은 7 형제중 세번째 형인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의 아들, 모하메드 빈 나예프를 왕세질로 결정하였다. 당시 빈 나예프의 나이는 56세이었다.
2017년 6월 이전의 왕위 계승 구도 |
이 7 형제를 낳은 8번째 부인의 이름은 '하사 알 수다이리'이며, 이 아들 중 장남인 파흐드와 (5대 국왕) 현 국왕인 여섯번 째가 국왕이 되었고, 다른 형제들의 위세도 강력해서, 이 7형제를 흔히 '수다이리 7형제'라고 부른다.
즉, 살만 국왕은 자신의 세째 형 아들을 왕세질로 지명한 것이다.
(2015년 폐위된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은 배다른 형제이며, 그의 아들, 만수르 빈 무크린은 지난 5일 즉, 왕자들의 체포가 시작된 다음날 헬기 사고로 사망해 의혹을 사고 있다.)
당시 왕세질을 왕위 계승자로 정한 파격은 초대 왕의 아들들로만 왕위가 계승되면서 너무나 나이 많은 왕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에 대한 조치로 이해되었다.
살만 국왕은 81세에 즉위하였고, 전임인 6대 왕 역시 80세가 넘어 즉위한 후 10년의 재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또, 왕세질로 책봉된 모하메드 빈 나예프는 친미 성향이 강하고, FBI와 영국 경찰청 등에서 대테러 교육을 받은 특이한 경험 탓에 위협 받는 왕실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한편, 빈 나예프를 밀어내고 왕세자로 책봉된 빈 살만은 1985년 생으로 현재 32세에 불과하다.
즉, 살만 국왕이 자신의 아들에게 다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어도, 초대 왕의 아들이 아닌 다음 세대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것도 파격인데, 살만 국왕이 등극한 2015년 겨우(?) 서른인 왕세자를 책봉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2. 빈 살만 왕자는 왜 개혁을 서둘렀을까?
빈 살만 왕세자는 6월에 책봉된 후, 5 개월 만에 칼을 빼들었다.
우선 대내외적으로는 서울 크기의 44배에 달하며 5천억 달러(약 564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신도시 NEOM 프로젝트 개발을 공표했다. 이 도시는 사우디의 북서부 끝 홍해 바다 근처,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의 인접 지역에 세워질 예정이다.
사업 부지 개요 |
사업 부지. 산맥과 해안가 황무지에 조성된다. |
이 도시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로 가동되는 도시로 계획되었다. 이 도시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인 아람코를 해외에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제까지 금기시 되었던 사우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등 경직된 이슬람 종주국에서 유연한 이슬람 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개혁 방안이 공고하게 뿌리박고 있는 사우디 왕가의 기득권 층의 반발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현재 사우디에는 왕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수가 7천명~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왕궁을 가지고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며,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소득을 챙기고, 부정부패 역시 극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빈 살만에 반발하는 기득권층은, 빈 살만이 경험이 없으며, 성미가 급하고 호전적이라고 주장한다.
2016년 초 사우디 반 체제 인사인 님르 바르크 알님르에게 사형을 집행하여 이란과 단교하게 된 것이나, 카타르와의 단교 조치, 예맨 내전의 개입 등은 모두 빈 살만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연인지 몰라도, 왕자들을 체포한 4일, 예맨의 후티 반군들이 사우디 공항을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격추 되었다.
일각에서는 올해 안에 현 국왕이 사임한 후 왕위를 빈 살만에게 넘겨 줄지 모른다는 추측도 한다. 현 국왕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우디 아라비아는 경제적 어려움도 겪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으며, 2016년에만 115조원에 가까운 재정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게다가 이 같은 재정 적자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물론 최대 소비처인 미국이 세일 가스 개발로 경쟁자가 되었고, 에너지 자립을 했기 때문일 수 있다.
전제 왕정 국가 즉, 왕국(kingdom)에서의 국민적 불만은 보편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 이 불만을 억누른 건 무상 교육, 무상 복지 등 오일 머니의 힘이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통치 자금을 만들 여유가 없어지면서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고 있고, 덩달아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왕권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빈 살만 왕자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는 급하고 강력한 권력욕 때문일수도 있지만, 석유를 탈피하는 국가 운영을 꾀하고 왕족들이 누린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승부수일수도 있다.
3. 향후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은 숙청이 시작된 후, 트윗을 통해 빈 살만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트럼프의 빈 살만 지지는 사우디 일부 왕족 즉, 기득권 층의 사치와 호화로운 삶을 위해 부패를 저질러 국민들을 쥐어 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쿠슈너는 비밀리에 사우디를 방문한 후 새벽까지 빈 살만과 머리를 맛대고 향후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러드 쿠슈너 |
최근 사우디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무려 124 조원의 무기 (주로 사드)를 구입하기로 계약한 바 있다.
빈 살만이 등극해도 여전히 친미 정권을 유지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미국 역시 사우디를 중동의 주요 우방으로 간주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 |
왕족들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빈 살만에게 저항할 것이며, 특히 종교적 이유를 들어 반전을 꾀하겠지만, 결국 꼬리를 내릴 것이며, 국민들은 빈 살만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빈 살만이 서방식 민주주의를 도입하지는 않겠지만, 점진적으로 복지 혜택을 줄여가며 대신 산업과 기간 시설에 투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빈 살만 왕자가 강력히 추진하는 네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NEOM 은 "new" 를 의미하는 NEO 와 future를 의미하는 아랍어 "Mostaqbal"의 합성어)
사우디에 현대화된 신도시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은 있으나 이미 킹 압둘라 경제 도시 등이 건설 중인데, 이 도시 역시 2백만명 수용을 목표로 했지만, 2020년 완공인 현재 5천명이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여 대형 도시를 만들고, 동서양을 잇는 허브 도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두바이와 유사하며, 친환경 도시라는 측면에서는 아부다비에 건설 중인 Masdar city 계획안과 유사하다.
Masdar city는 약 2.3 평방 마일(6 평방 킬로미터)의 크기로, 5만 명을 수용할 계획이며, 2008년 시작되어, 완공 목표는 2030년인데, 현재 채 10%도 완공하지 못했다. 반면, 네옴의 크기는 무려 10,000 평방 마일로 서울이 44개, 싱가폴이 37개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신도시 개발을 투자를 유치하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유사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 위기, 아랍 민주화에 대한 열망, 빈부 격차와 왕족들의 지나친 사치 행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IS와 알케에다는 물론 이란 등 시아파 들의 위협 등 국가와 왕권에 대한 수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왕은 너무 늙고 병약하며, 왕세자는 너무 젊고 의욕에 앞선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민주화 여파가 사우디에도 불어닥칠까봐 전전긍긍했던 바 있다. 다행히 그 때는 조용히 넘어갔지만, 젊은 왕자의 설익은 개혁 드라이브가 사우드 왕가에 충성해왔던 사우디 국민들에게 어떤 파문을 던질 지는 사실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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