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전쟁


설상복을 입고 수오미 기관단총을 든 핀란드 병사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미국 항모 3개 전단이 한반도 인근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최소 3~4 대의 핵잠수함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주일 미 해병 2천명이 한반도에 전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산케이 보도에 따라면 미해병 제 3원정군 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지, 아니면 항모 등 한반도 인근 해군 선박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 주일 미 해병대에 F-32B 3대가 추가배치되어 16대 편대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F-32B 는 수직이착륙할 수 있는 멀티 툴 전투기로 강습상륙함과 같은 경항모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해병대 상륙 지원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의회가 14일 통과시킨 국방수권법안(NDAA)에 따라 곧 핵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이 동해에 상시 배치될 예정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이후 핵 감축에 따라 핵잠수함에 더 이상 핵 미사일을 싣고 다니지 않았는데, 핵 미사일을 실은 핵잠을 동해에 배치한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한반도 비핵화는 더 이상 의미없는 구호가 된 것이며,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를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 의회의 권고에 따라, 괌에 배치된 B-1B 폭격기 뿐 아니라, B-52 및 B-2스피릿 등 3대 핵심 전략폭격기들이 상시 순환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폭격기에도 당연히 핵 미사일이 탑재 가능하다.

이렇게 한반도 주변에 미군의 무력 전개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주한 미 사령관은 일본에서 대북 관련 협의 중이며, 해리 해리스 미 태평관 사령관 역시 16일 일본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북한 관련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이 최근 수 일안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로 전쟁이 임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첫째 이유는 유엔이 휴전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최근 내년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되는 시기 전후 7일을 포함하여, 2월 초부터 3월 말까지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휴전을 촉구한 바 있다.

유엔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있을 경우 전쟁이 발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이 먼저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유엔의 결의를 어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말이다. 물론, 유엔이 결의한 기간까지는 40 여일 남아 있기는 하다.

두번째 이유는 겨울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에 있어 계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단지 폭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겨울 전쟁은 쌍방 모두에게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했던 독일도 겨울을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625 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 악몽을 겪어야 했다.

"겨울 전쟁"으로 불리는 소련의 핀란드 침공은 대규모 병력이 추위와 눈 폭풍으로 어떻게 무너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고 볼세비키가 러시아를 장악하는 틈을 타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했다. 소비에트 제국, 즉 소련은 핀란드와 국경선 재조정을 빌미로 치욕적인 요구를 했고, 핀란드는 거절하였다.

결국 소련은 막대한 물량을 동원하여 핀란드를 침공하였다. 당시 소련은 100 만명에 가까운 병력과 6천대가 넘는 전차, 3천대가 넘는 항공기를 동원하였지만, 당시 인구 3백만의 핀란드는 30만명의 병사와 연습기 등을 다 합해 고작 100 대 남짓의 항공기만 있을 뿐이었다. 전차도 있었지만, 전투에 사용할 수준은 아니었다.

소련의 침공은 1939년 11월 30일에 시작되었다. 침공의 이유는 26일 핀란드가 발사한 포탄에 의해 소련 국경 수비대 10여명이 사상 당했다는 것이었다.

핀란드는 소련과 헬싱키 사이 카렐리아 지협, 국경 30~40 km 후방에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쳤다.

이 지역은 수시로 영하 30~40도에 이르는 혹한이 몰아닥치는 곳이었다. 땅이 얼어 붙은 곳은 전차의 이동은 수월했지만, 폭설 속에서는 처박혀 있어야 했고, 병사들도 추위에 견디지 못했다. 소련이 춥다고 해도 이 전쟁에 동원된 우크라이나 출신 병사들에게는 처음 겪는 추위였다.

핀란드 군은 세계 최초로 흰색 설상복으로 위장하였고, 세계 최초로 스키 부대를 구성하여 치고 빠지는 작전을 구사했다. 이들은 거친 지형에 길게 늘어서 측면과 배후가 노출된 소련군을 기습 공격하는 유격전을 벌였다. 이 작전을 장착패기(Mottie) 전술이라고 부르며, 현대 유격전의 교범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당시 핀란드 군의 주요 무기로는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불린 화염병과 '카사파노스(Kasapanos)'라고 불린 흡착식 대전차 폭약, 그리고 '수오미(Suomi)' 기관단총였다.

몰로토프는 당시 소련의 외무 인민위원이었는데, 그가 헬싱키를 폭격하는 소련 폭격기가 핀란드에 빵을 공수하는 것이라고 라디오에서 떠든 것에 분노한 핀란드 군은 소련 전차에 던지는 화염병을 "빵에 대한 보답으로 주는 술"이라는 의미로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이름 붙였다.

당시 소련 전차는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여 화염병을 맞으면 엔진이 폭발하여 적잖은 피해를 주었다. (이후 소련은 디젤 전차를 양산하게 된다.) 겨울 전쟁 중 핀란드 군은 무려 45만 병의 몰로토프 칵테일을 소련군에 안겨 주었다.

수오미 기관단총의 정식 명칭은 KP/-31 이며, 이는 핀란드 사람인 아이모 라티(Aimo Lahti)가 당시 독일이 생산하던 MP 18의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핀란드 최초의 기관단총 M/22의 개량형이다. M/22는 KP/-26로 다시 개량된 후 KP/-31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수오미는 경량형의 기관단총으로 바나나형 탄창과 드럼형 탄창을 장착할 수 있었으며 겨울 전쟁 중 KP/-31 SJR로 개량되기도 했다.

이 총에 참혹한 피해를 받은 소련은 수오미를 그대로 복제하다시피 하여 PPSh-41을 만들어 냈다. 이 총이 그 유명한 "따발총"으로 625 전쟁 당시 북괴군이 사용한 것이다.

겨울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저격은 전쟁의 주요 전술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격병의 중요성을 새삼 각인시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시모 해위해'가 그랬다.

기록을 보면, 시모 해위해는 M28 소총으로 약 100일간 무려 500~600 명의 소련군을 저격했으며, 수오미 기관단총을 사용해 200 여명을 사살했다. 그의 저격 기록은 여전히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그는 망원조준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특징도 있다.

즉, 나안(naked eye)으로 조준 사격했는데, 조준경을 사용할 경우, 빛의 반사로 노출될 수 있고, 추운 날씨 탓에 성에게 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작전 중 폭탄에 맞아 얼굴의 반이 날아가는 중상으로 대수술을 받고 은퇴하여 97세에 사망했다.

핀란드는 절대적 열세 속에서 전쟁을 치뤄냈지만, 영토 일부를 소련에 넘기는 조건으로 결국 항복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 비록 항복했지만, 의지를 가지면 절대적 약세에도 강한 군대를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다.

겨울 전쟁은 군인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다.

만일 한반도에서 또 다시 겨울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민간인 피해 즉, 북한 주민들의 희생 역시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대량 폭격으로 아무리 조기에 전쟁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북한을 수복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원조 물자를 가져다 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사하거나 동사할 수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 미국이 무리하게 겨울 전쟁을 벌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 같은 가정은 희망 사항이며, 방아쇠를 북괴가 당길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꼬랑지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엎드려 숨 죽이고 있는다면, 봄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무고한 북한 주민의 희생을 생각하면 그러길 바랄 뿐이지만, 세상 일이 늘 바램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2017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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