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글론









의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


의료전달체계란 의료이용체계, 나아가 “건강보험 이용의 단계적 절차”를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에서 건강보험 이용의 단계적 절차는 단 하나 뿐이다.

즉, “2단계 의료기관을 이용하려면, 먼저 1 단계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한다.”는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단 한 조항이다.

이 2단계 의료기관은 42개 상급종합병원을 말한다. 나머지 모든 의료기관 즉, 의원, 중소병원, 대학병원을 포함한 종합병원이 모두 1단계이다. 즉, 수천개 의료기관 중 42개 병원을 뺀 나머지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이 한 바구니 속에서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사실 상급병원이용 절차에 대한 규정일 뿐, 의료전달체계라고 하기 어렵다.

만일 의료급여법처럼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을 정하고, 2차 의료기관은 1차 의료기관을 통해, 3차 의료기관은 2차 의료기관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면 그나마 아주 기초적인 의료전달체계가 구축될 것이다.

그런데, 무려 40년간 의료보험-건강보험을 운영하면서 왜 이런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지 못했을까?

바로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의료계 때문이다.

의료계 일각은 말로는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를 반대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만일 의료급여처럼 건강보험 이용의 단계를 둘 경우, 당장 3차 병원이 될 상급종합병원이나 일부 대형 종합병원은 환자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생긴다. 2차 병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나아가 1차 병원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2차 병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1차 의료기관을 통해 환자를 건네받아야 할 경우, 역시 환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도 의료전달체계 구축 논의가 있었고 실제 시도하였지만, 이런 우려때문에 병협 등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럼 병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전달체계가 구축되면 1차 의료기관은 행복할까?

그 전에 누가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할 건지 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1차 의료기관은 gate keeper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gate keeper가 되어 환자를 안내하려면 가정의와 일반의, 혹은 일반의 역할을 하는 내과의가 근무하는 의원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상식에 따라, 가정의, 일반의, 일반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내과의 (혹은 일부 외과 계열 의사)가 이 역할을 하게 하자고 한다면, 다들 동의할까?

Gate keeper가 된다는 건, 사실상 환자가 그 의료기관에 등록하고, 그 의료기관 의사는 주치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의협이 절대 반대했던 제도가 바로 주치의 제도이다.

만일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이번에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치의 제도 나아가 주치의 등록제를 할 경우, 주치의가 아닌 의원들의 환자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또, 잘 다니던 내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에 등록할까 걱정이고, 새로 배출되는 의사들은 이미 환자군을 등록받은 기존의 의료기관 때문에 환자 확보가 어려울까봐 걱정한다.

병협은 이래서 반대하고, 의협은 또 이래서 반대하니, 의료전달체계는 상상 속의 제도일뿐이다.

결국 1천 병상이 넘는 대형 병원들이 겨우 100 병상 규모 병원과 경쟁하고, 의원과 대학병원, 종합병원이 외래 환자를 놓고 혈투를 벌인다.

그래서 의료계는 그 어떤 룰도 없는,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이다.



2018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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