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뭘까 (1)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빠른 시간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원인 중 하나는 대형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들이 많다.

비단 메르스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형병원 선호 사상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데, 대형병원 선호가 나쁘다기보다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대표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 병원,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그리고,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말하는 5대 메이저 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대형병원”이란 용어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

1) 상급종합병원과 대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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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법은 의료기관을 의원과 병원으로 나누며, 병원은 다시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나누고 있으며, 의료법은 또 ‘의원은 외래 환자를 중심으로, 병원은 입원 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하라.’고 명확하게 명기하고 있다.
(병원에는 요양병원과 전문병원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 둘은 배제하기로 하자.)

의료법 어디에도 대형병원 혹은 ‘5대 메이저 병원’이라는 용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인식에는 상급종합병원이라고 다 같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며, 상급종합병원 위에 대형병원 혹은 메이저 병원이라는 상위 개념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상급종합병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정하며, 왜 정하는 건지 생각해 보자.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 고시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평가규정>에 따라 정하게 되는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어 입원 환자의 질병구성형태를 반영해 중증 환자를 많이 본 병원을 고르고, 의료인 수, 교육 기능 등을 점수화하여 매 3년마다 선발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43개 병원이 있다.

10개 권역 중 서울권에는 14개 상급종합병원, 경남권에 7개, 경기 서북부권, 경기 남부권, 경남권에 각각 4개, 충남권, 전남권에 각 3개, 전북권 2개, 강원 및 충북권에 각 1 개가 있다.

서울권에 압도적으로 많은데, 사실 2012년에 비해 3개 병원이 줄어든 것이며, 이는 ‘지역우선 배분’ 방법을 씀에 따라, 지역 병원보다 점수가 높은 서울 병원이 있었으나 탈락한 것이다.

또 2012년 경우 44개 병원을 선정했지만, 2015년 43개로 줄어든 것은 재선정 병원들의 병상 수가 늘어남에 따라 소요병상수를 초과할 수 있어 1개소를 줄인 것이다.

권역마다 필요한 상급종합병원의 수는 진료권역별 상급종합병원 소요 병상수 산정 방법에 따라 먼저 병상수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병원 수를 정하는데 이때 중요한 변수는 “상급종합병원의 기능분담률”이다. 이는 과거 종합병원 입원진료량 중 상급종합병원 입원진료량의 비율을 환자구성상태별로 구하여 산출하고 있으므로 권역별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수는 향후에도 거의 변동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급종합병원은 의료법 상의 구분보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데,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2조(요양급여의 절차)는 요양급여를 1단계 요양급여와 2단계 요양급여로 구분하며, 가입자 등이 요양급여를 받을 때, 즉 의료기관 (정확하게는 요양급여기관)을 이용할 때는 1단계 요양급여를 받은 후 2단계 요양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중 2단계 요양급여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받는 요양급여를 말하며, 1단계 요양급여는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모든 의료기관(요양급여기관)을 말한다.

즉, 쉽게 말해서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려면,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기관을 이용한 후 그 의료기관의 판단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응급환자, 분만 환자, 치과 환자, 재활치료 환자, 혈우병 등은 구분없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으며, 상급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 역시 제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 특히 대형병원의 응급실에 환자가 몰리는 이유 중 하나가 법이 정한 요양급여의 절차를 무시하고 진료 받을 수 있으며, 입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1단계, 2단계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의 유일한 의료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규칙대로 하면, 의원은 종합병원과 경쟁해야 한다. 왜냐면 의료기관 결정권은 전적으로 환자에게 있으며, 이를 규제하는 법이 없으므로 환자는 제한 없이 의원이나 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과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었던 병원도 재지정되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양급여의 절차 외에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병원비의 차이가 있다.

종합병원에서 굳이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별도 체계를 만든 이유는 이들 병원에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의료기관 종별 본인부담률>과 <의료기관 종별 가산률>이라는 개념의 이해가 필요한데, <의료기관 종별 본인부담률>이란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의 4 단계 분류에 따라 진료비 중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통상 총진료비 중 의원은 30%, 병원은 40%, 종합병원은 50%, 상급종합병원은 6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이렇게 차별을 둔 이유는 더 윗 단계의 진료를 받고자 하면, 환자가 더 많은 돈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런 규정으로 환자가 윗 단계 의료기관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면, 이른바 산정특례에 해당되어 본인 부담률을 낮게 책정하는 질환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암질환이며 암질환의 본인부담율은 의료기관에 관계없이 5%에 불과하다.
(중증 화상도 5%이며 기타 희귀난치성 질환은 10%인데, 이에 속하는 질환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즉, 암 환자의 경우 전국 어느 병원을 가나 본인 부담은 5%에 불과하므로 지방도시에 거주하는 환자도 지방 병원으로 갈 이유가 없다. 이왕이면 더 큰 병원, 그 중에서도 5대 메이저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형 병원들은 이들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병상을 늘려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도권 병상 수가 두 배로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이렇게 늘어난 병상은 대형병원 순으로 차기 시작한다. 즉, 서울아산, 삼성서울병원 병상이 차고, 나머지 5대 메이저 병원 병상이 차면 그제서야 서울권 내 다른 상급종합병원, 서울 시내 종합병원 순으로 차고, 그 다음 경기권 순으로 차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KTX과 더 빨라진 교통 사정으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지방의 환자들이 대거 서울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리적 의료접근성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이다.

한편으로는 본인부담률이 더 이상 병원 접근성의 저해 요소가 아닌 이상, 높은 본인부담률은 각 병원의 캐시 플로우(cash flow)를 원활하게 하는 잇점이 될 수도 있다.

의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본인부담금 (30%)를 환자에게 받고 나머지 70%는 청구, 심사 과정을 거쳐 지급받게 되므로 진료 소득이 제 때 생기지 않게 되는데, 상급종합병원은 환자에게 60%를 받으므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본인부담률보다 더 중요한 건 종별 가산률이다.

종별 가산률이란 각 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행위별 수가 (이를테면, 진료, 수술, 주사, 처치 등의 행위)에 가산을 하여 주는 건데, 이렇게 가산하는 이유는 각 의료기관 투자에 대한 보상책임이 명백하다.

이 종별가산률 비율은 의원이 15%, 병원은 20%, 종합병원은 25%, 상급종합병원은 30%이다.

즉,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의원에서 하면 15%를 더 주고, 상급종합병원에서 할 경우에는 30%를 더 준다는 것이다.

이건 건강보험제도의 기본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건강보험제도는 모든 의료기관은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모든 의사는 같은 수준의 의료 행위를 한다는 가정 하에 설계되었다.

물론, 이같은 설계가 과연 합리적일까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이 원칙과 정확하게 어긋나는 것이 바로, 의료기관 종별 가산률과 선택진료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왜 모순적인지는 다음의 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내과 과장으로 일하던 A의사가 개원하며 의원을 차릴 경우, A가 아산병원에서 하는 행위 B에 대해서는 30%의 종별가산률과 선택진료비를 합쳐 지불해야 하지만, 그가 개원을 하게 되면 15%의 종별가산률만 적용받게 된다.

그가 하는 행위 자체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더 많은 투자를 했으므로 이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병원은 건물과 시설, 장비에 투자하는 것이지 의사의 행위에 투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설과 장비에 대한 보상은 재료비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보전할 수 있으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즉, 의료법이 병원으로 하여금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의원이 갖추지 못해 부대사업을 할 수 없는 주차장, 영안실, 식당, 편의점 등등을 병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종별가산률은 명백히 법령에 의한 의료기관 종별 차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201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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