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통계학이나 의술은 예술이다


의학은 통계학이나 의술은 예술이다

의학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의학은 정의(定義. definition)와 묘사(描寫. description)의 학문이며, 통계학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의학이 정의와 묘사의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의과대학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무엇에 대한 정의와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의과대학 시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의 유형은 “가장 흔한 것은 무엇이냐?”라는 것인데, 이를테면 가장 흔한 적응증(the most common indication) 혹은 부적응증(contraindication)이 뭔지, 어떤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의심해야 한 가장 흔한 질환 (the most common disease)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것들이다.

정의와 묘사는 주로 기초 의학을 공부할 때, “가장 흔한 것”은 내과나 외과 등 임상을 공부할 때 많이 쓰인다.

이를테면, 일 주일 넘게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고, 가래가 낀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질환은 인후두염, 기관지염, 폐렴이겠지만, 이 환자가 20대 젊은 남자이고 최근들어 밤에 식은 땀을 잘 흘리는 증상이 있다면 결핵을 의심해봐야 하며, 50대 남자이며 흡연력이 있다면 폐암도 의심해야 한다.

병의 진단은 증상을 토대로 가장 유력한 진단명부터 나열한 후 이학적 검사와 임상 검사 등을 통해 하나씩 지워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워가는 것을 rule out이라고 한다.

즉, 우선은 진단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통계적 기법으로 서서히 좁혀가는 과정이 바로 진단의 과정이다.

그래서, 의학을 통계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의사들이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판독할 때, 참고하는 수치가 있는데 이를 참고치(reference range)라고 한다.

흔히 정상치(normal range)라고 부르지만, 이를 정상치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는 참고치는 특정 질환이 없는 사람들 수백, 수천명을 검사해 나온 결과를 분포도로 그리고 그 분포도의, 때로는 90%, 때로는 95%, 때로는 99% 범위 안에 있는 값을 정하기 때문이며 그 범위 밖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질환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혈색소(hemoglobin)의 경우 참고치의 범위가 12~16g/dl 인데, 흡연자이거나 고산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특별한 질환이 없어도 16g/dl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질환자는 아니다.

“The medicine is an art.”라는 금언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의학은 과학이나, 환자를 다루는 의술은 예술과도 같다는 의미이다. 과학은 동일한 input에 따라 늘 동일한 output이 나와야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건 늘 그렇다고 할 수 없는데, 그것은 환자마다 개인차가 크고 질병은 늘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의학의 어려움이자 동시에 위대함이기도 하다.

의학을 통계학이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론 통계학의 숫자 장난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많은 환자나 보호자들은 의사에게 치료 결과나 완치 가능성, 생존 가능성 등을 수치로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고, 의사들 역시 무엇의 가능성을 숫자로 답하기도 한다.

이 때 의사들이 말하는 숫자는 말 그대로 통계에 의한 것일 뿐, 그 결과가 해당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말기 췌장암 환자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물었을때, 의사가 앞으로 앞으로 6개월 내에 사망할 확율이 90%라고 말했다면,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췌장 두부에 발생한 췌장암의 크기와 다른 장기의 전이 정도를 감안하고, 환자의 나이, 현재 증상, 치료 여부 등을 고려할 때 유사한 환자들의 백 명 중 90명이 6개월 안에 사망했었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는 것이지, 그 환자가 반듯이 6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런 자료가 있다”가 곧 “당신도 그러하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질문이나 대답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좀 더 명쾌하게 답을 듣길 원하고, 의사들은 이걸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중간을 잘라내고 답을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며 의사는 기계를 고치는 수리공이 아니다. 게다가 치료는 약물에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치유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약물이나 의학의 힘은 그저 거들 뿐이다.

지난 6월 8일 메르스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페북에 올렸다.


나름 의사 생활 경험 짧지 않은데, 어떤 결핵 환자가 불과 3일만에 30명 넘는 다른 입원환자, 의료진, 방문객에게 전염시키는 거 본 적 없고, 어떤 폐렴 환자가 입원 중 원내 감염되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후 응급실 대기 중 오가는 셀 수 없이 수 많은 사람에게 옮기는 거,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메르스가 별거 아니라고?

결핵은 해마다 2~3 천명, 페렴으로 1만명 죽는데 고작 몇 명 죽는게 무슨 문제냐고?

의사들이 언제부터 병의 경중을 사망자 수로 따지기 시작했지?

일년에 결핵, 폐렴으로 쓰여지는 의료 자원 (인력, 시설, 장비, 재정)이 얼마인줄 알고 그런 말을 할까?

그게 지금 메르스로 쓰이는 의료 자원과 비교할 수 있을까?

사망율이 40%든, 4%든 간에,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100% 인거고, 안 걸리면 남의 일인 법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병 치료하러 입원했다가, 환자 병문안 갔다가 메르스 걸려서 비명횡사한 사람이 다섯, 병에 걸려 불안에 떨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80명이 넘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그들 앞에서, "메르스 별 거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메르스 별 거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빈도로 따져도 진짜 별거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전체를 놓고 봤을때 그렇다는 거지, 긍휼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숫자로 봤을 때 그렇다는 거지, 국민 전체를 놓고 봐야 하는 공무원, 정치인들 시각에서 그렇다는 거지,

최소, 환자 하나 하나를 만나고 얘기하고 만지고 치료해야 하는 임상의들은 그러지 말자.

우리가 "국민 여러분, 불안에 떨지 마십시오"라고 확성기 잡고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담당한 건 아니잖아.

누가 그걸 우리에게 시킨 게 아니잖아.



이 글을 올린 후 여러 의사들이 댓글을 달아, 이 글의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사실 의식적으로 댓글을 읽지 않았을 뿐더러, 의문에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윗 글은 논쟁을 위한 글이 아니며, 애초 의사인 페친들이 이 글에 대해 저항감을 가질 것을 뻔히 알고 쓴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페친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메르스가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지금, 의학 통계 인용의 가벼움을 무시한 체 메르스가 별거 아니라는 의사들의 발언이 증폭될 경우, 전염병 확산 초기에 국민들이 갖아야 할 두려움이 상쇄되어 메르스에 대한 경계심이 약화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메르스가 별거 아니라면, 그것에 감염되어 고통받거나 이미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에게 ‘별거 아닌 것에 걸려 죽었다’ 혹은 ‘별거 아닌 것에 우리 아버지, 내 남편 혹은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는 상처를, 적어도 의사들은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전염병을 대하는 마음에도 순서가 있어야 하고, 초기에는 오히려 전염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경계심을 더 주어야 하며, 그럼으로 파생되는 여러가지 문제점 즉, 경기 침체, 사회 혼란, 불안과 공포의 확산이 전염병 그 자체보다 더 큰 문제가 될 때는 비로소 의료인들이 나서서 불안을 잠재워야 하는데, 이 글을 올린 6월 3일의 싯점은 경계심을 주어야 할 단계이지, 별거 아니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할 싯점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글은 의사가 동료 의사에게 부탁하는 글일 뿐, 이 글을 비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보여주며 공포를 선동하려는 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북의 특성상 이 글이 비특정인들에게 공개되어 불안을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유감이며, 그것이 불안을 넘어 광우병 사태 때처럼 악용되었다면 더욱 더 큰 유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페친 수도 얼마되지 않고, 널리 알려진 저명한 사람도 아닌 내가 쓴 글이 인용되었거나 악용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할만큼 어리숙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6월 18일자 조선일보의 조이라이드 “조심한다고 나쁠 것도 있다”라는 윤서인 작가의 웹툰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만화 중에 “통계? 니 가족이 걸려도 통계같은 소리가 나올까? 아무리 희박한 확률이라도 막상 걸린 사람에게는 100%라구!!”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설마 윤서인 작가가 6월 3일의 글을 보고 이런 시각을 비난하기 위해 만화를 그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코멘트하고 싶은 건, 메르스 확산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그래서 실질적 손해를 보며, 단순히 손해 이상의 큰 타격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거시적으로 볼때 경기 침체와 메르스로 인한 손실 비용은 어쩔 수 없이 치뤄야할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비켜가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좋은 건, 설령 메르스 감염 환자가 국내에 들어왔어도 초기에 완벽한 방역으로 손실을 최소화했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알다시피 초기 대응에도 실패, 이후에도 지독한 불운과 안이한 대처로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누가 잘못했던 혹은 운이 없었던 지금의 손실은 치룰 수 밖에 없는 댓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비싼 댓가를 치루고 큰 교훈을 얻어 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면 ‘치룰 가치가 있는’ 댓가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경우에는 불필요한 희생과 댓가를 치룬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건, 메르스로 인한 경기 침체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이 비싼 댓가로 좀 더 값어치 있는 교훈을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며, 경기 침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사람들을 국가와 사회적 부조로 회생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201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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