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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바보들>
몇 년전 싱가폴의 글렌이글스 병원(Gleneagles Hospital)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병원은 Parkway Holding group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병원인데, 파크웨이 홀딩스는 말레이시아의 Pantai Holdings 와 합병하여 현재는 Parkway Pantai Ltd.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회사는 현재 싱가폴,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부르나이 등지에 21개의 병원, 60개의 메디컬 센터 등 4천 병상 이상을 운영하고 있는 동남아 최대의 병원 지주회사이다. 
글렌이글스 병원은 270 병상 규모로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파크웨이 그룹의 모태가 된 병원이며, 영리병원의 대명사로 불리며, 싱가폴 의료관광의 아이콘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애초 글렌이글스 병원은 45베드의 너싱홈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30개과 160명의 전문의들이 진료하고 있다.
이 병원의 특징은 모든 의사는 attending 즉, 계약직이라는 것이다. 병원에 상주하는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 건물 옆에 별도의 클리닉 건물을 지어 그곳에서 외래를 보고, 수술을 하거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 병원을 이용하며, 외상 및 응급센터도 운영하는데 이 역시 attending doctor이 교대로 근무한다. 
싱가폴에 영리병원이 발달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싱가폴은 다른 나라와 달리 독특한 특징 즉, 도시 국가이며,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고, 동남아 국가들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는데, 가족을 싱가폴에 두고 다른 국적을 가지고 외국에서 사업하며 주말에 돌아오는 ‘외국인’에게 싱가폴 정부의 복지, 의료보험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생각과 화교 자본으로 병원을 운영하면 낙후된 의료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맞물려 영리병원을 일찌감치 허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인에게도 제한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관대함(이라고 적고, 호구라고 읽는다)이 싱가폴에는 없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돈 제대로 내고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글렌이글스 병원의 의료비 수준은 대충 이렇다.
복강경 하 담낭절제술 : 천만원~천3백5십만원 (이중 의사가 받은 금액은 560만원~720만원)
치질수술 : 580 만원~650 만원 (의사가 받는 금액 : 330 만원~350만원)
자궁절제술 : 1,280만원~1,550 만원 (의사가 받는 금액 : 720만원~870만원)
편도선 제거술 : 700 만원~823만원 (의사가 받는 금액 : 390만원~480만원)
대략 우리나라 의료비의 5배~10배 정도 된다.
이렇게 의사가 받는 금액이 따로 있는 건, 환자가 병원비를 지불하면 이를 병원과 의사가 나누기 때문이다.
병실료는 가장 싼 4인실이 20만원 조금 더 넘고, 1인실은 50만원 가량, 가장 비싼 병실은 580만원 이며, 중환자실은 60만원이다.
(위 가격은 2015년 현재 가격임)
이건 순전히 병실료이며, 치료비나 병명과는 무관하다.
보험이 없는 경우 본인이 직접 병원비를 내야하는데, 워낙 돈 많은 화교들이 많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싱가폴 국민들도 이 병원을 많이 이용한다. 
싱가폴은 국립병원도 여럿 있는데, 가장 좋다는 국립병원을 가 봐도 태평양전쟁 시대에 지어진 낡은 병원 건물에 우리처럼 다인실로 되어 있는데, 4인실이나 6인실의 다인실이 아니라, 한 층이 전부 터져 있는 구조로 부분 부분 허리높이의 낮은 벽 (이걸 pony wall이라고 한다.)로 구획되어 있는 뻥 뚫린 구조에 침대만 빼곡히 놓여 있고, 적도가 지나는 엄청나게 뜨거운 싱가폴임에도 불구하고 에어콘 시설도 되어 있지 않다.
시설이 이러니 다수 싱가폴 국민들 역시 글렌이글스 병원과 같은 private 병원을 찾는데,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고 private 병원을 쓸 수 있는 건, 싱가폴의 독특한 보험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폴은 Medisave 라 불리는 일종의 medical saving account라는 보험제도를 198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 소득의 8~10.5%를 의료계좌에 넣도록 강제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경우, 이 계좌에서 지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건강한 사람이냐, 만성질환자이냐, 노인이냐 등을 따져 복잡한 방식으로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도록 제한하는데, 만일 이 제한폭을 넘어서 의료비를 써야 할 경우에는 본인이 부담하거나 별도로 보험을 들어 커버해야 한다.
고혈압, 당뇨, 천식 등 19가지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정부가 진료비를 보조한다.
또 Medishield와 Eldershield라는 제도도 있는데, 이는 의료계좌에 모이는 돈으로 별도 보험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Medishield에 가입할 경우, 입원시에는 하루 37만원까지, 수술할 경우에는 630만원까지 의료비가 보상되며, 이 금액을 초과할 경우에는 역시 본인이 부담하거나 별도의 보험으로 커버해야 한다.
글렌이글스 병원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은 원장(General manager)이 간호사라는 사실이다.
한국 정서상 그 점이 생소했지만, 파크웨이 측의 설명은 이랬다.
“병원의 지향점은 어차피 이사회에서 결정하므로, 실제 살림을 사는 원장은 병원 사정을 더 잘 파악하는 간호사가 맡는게 당연하다. 의사는 수술이나 처방을 내면 끝이지만, 환자를 실제 돌보는 건 간호사 아니냐? 병원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간호에 달려 있다.”
파크웨이 홀딩스는 간호대학도 운영을 하는데, 말로는 아시아 전역에서 해마다 1천명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모집해 훈련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1천명은 뻥 같지만, 아시아 전역의 학생을 모집해 가르쳐서 21개 병원에 분산 배치하는 것은 맞다. 입학 첫 일년동안은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서 병원내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도록 하고 출신국의 환자가 들어오면 자연스레 모국어로 환자를 돌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의료관광의 메카 병원다운 발상이다.
메르스 사태로 우리나라 병원의 간호사가 태부족이라는 사실이 새삼 언론에 거론되고 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의사는 오히려 남아 돌아도, 간호사는 나라와 관계없이 부족 현상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정부는 “보호자 없는 병원”을 모토로 이른바 포괄병동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국내 여건에서 빛 좋은 개살구이다.
우리나라 간호대학의 수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대형병원을 선호하고, 대형병원이 졸업생을 다수 확보해 놓는 바람에 지방으로 갈수록 간호사 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병원, 지방으로 갈수록 대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고, 그건 또 작은 병원일수록, 지방으로 갈수록 병원 경영이 어렵기 때문이며, 결국 이는 낮은 수가로 결론지어진다.
정부가 호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의료 관광, 병원 수출 모두 이렇게 안으로 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의무감만 가지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두려움을 무시한 체 진땀을 흘리며 메르스 환자를 간호하는 대한민국 간호사들은 그래서 바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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