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우리 정부의 메르스 방역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당연히 낙제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속단하기 전에 가슴을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메르스를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 수준이 세계최고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주장이 많다.

외국 의료기관이 포기한 수술을 척척해내는 한국 의료 수준도 공중보건에는 휘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의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주장도 있고, 우리가 의료를 수출하겠다고 하는 사우디로부터 오히려 메르스 방역을 돕겠다는 말까지 들었으며, 민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의료체계에 대한 위기의식도 생기게 되었다.

정부가 그렇게 늘리라고 강조한 다인 병실의 문제점도 노출되었고, 전염병을 놓고 중앙 정부와 지자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간의 부처 간 갈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이것이 우리가 가진 보건의료 수준 그대로이며, 보건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가만히 세워 놓고 보면, 멋진 신상 자동차 같지만, 시동을 켜고 달리면 이내 덜컹거리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푸드득 시동이 꺼지는 빛 좋은 개살구이거나, 사실은 누군가가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피똥을 싸며 밀고 갔기에 움직였던, 엔진 없는 멍텅구리 자동차와 같은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아무튼, 이런 허접한 시스템을 가지고 지금 수준에서 감염자가 더 확대되지 않는다면 꽤 괜찮은 점수를 줘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점수를 매기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도대체 뭘 근거로 점수를 매겨야 할까?

시계를 지난 5월 17일로 되돌려 보자.

중동에서 <신상 바이러스>를 수입해 온 A씨가 서울S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는 이 병원에 도착 전 이미 몇 군데 병원을 더 거쳐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중 평택성모병원에 3일간 입원을 했다.

A 씨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된 것은 5월 20일인데, 이 때 비로소 당국은 국내에 메르스가 상륙한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보름이 지난 6월 5일 현재 A씨가 직접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환자 (즉, 2차 감염자)는 모두 32명으로 그가 평택성모병원으로 가기 전 거쳤던 의원 2개소의 의료진 2명과 그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의 환자와 의료진 30명을 포함한 숫자이다.

이 32명에 대한 감염은 A 씨가 확진 판결을 받기 전 이미 완료된 상태이므로, 이들에 대한 예방은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는 한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20일 이후이다.

메르스 확진이 알려진 후, 비로소 보건당국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최초 보건당국은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적은 수의 감염자만 발생하고 말 뿐이라고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가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첫 확진 후 1 주일이 지난 26일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날, 최초감염자와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의 딸이 메르스 확진을 받게 되었는데, 그녀는 4번째 확진자이며, 역시 확진된 같은 병실 환자의 보호자로 면회를 왔다가 감염되었고, 학계의 주장과 달리, 비교적 젊은 40대의 여성이었기에 주목을 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날 최초 감염자가 방문한 의원의 의사도 감염자로 확진되었지만, 정부는 계속해 "3차 감염은 없다", "메르스 전염력은 낮다", "지역 감염은 없다"는 등 마치 국민을 세뇌하듯 반복해 말했다.

왜 그랬을까?

메르스는 말 그대로 신종 바이러스이며, 전세계 수십개국에서 발생한 바 있다고 하지만, 그 오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이며, 사우디의 경험이 인류가 갖는 메르스에 대한 경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 1천명 조금 더 넘는 감염 확인자와 400여명의 희생자가 전부이며, 불과 2년 전에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 이 신상 바이러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을 리 없으며, 오로지 같은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나 사스에 대한 경험과 일반적인 세균학에 대한 지식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사우디는 매우 특수한 풍토와 여러 모로 제한된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사스가 대유행한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고, 국내 감염학자 중에 메르스를 직접 경험한 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의심되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감염력은 낮으며, 사망률은 높고, 3차 감염은 절대 없으며, 공기 감염도 안 되고, 지역감염의 예가 없다>고 스스로 선을 긋고, 이 기준으로 격리 조치를 취하고 방역활동을 함으로 문제를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기준은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공무원들의 머리 속에서, 혹은 그들이 축적해 놓은 자료에서 나온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소위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을 것이고, 그 전문가들이란 자들이 위원회를 구성해 "토의를 한 후" 그 같은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염병 방역에 서로 ‘내 말이 맞다, 니 주장은 틀렸다.’고 논쟁하여 기준을 정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의료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들, 특히 감염학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공무원들은 그 전문가 집단의 가르침(?)대로 발표하고 격리 범위를 정하고 방역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그 전문가 집단의 자기 오만이 일을 그르친 첫번째 요인이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움직인 오판이 두번째 문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그쳐야 하며, 이를 감안해 정책적 결정을 하는 건 공무원의 몫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누가 전문가고 누가 공무원인지 헷갈리는 기자 회견을 방송으로 듣곤 한다.

전염병 예방의 첫 번째 원칙은 철저한 격리이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고, "그 조건이 맞는다면~"이라고 가정을 세웠다가 그 조건이 비틀어질 경우, 어김없이 방역에 구멍이 뚫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비특정 다수의 집단을 대상을 할 때,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기대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는 건, 마이클 크라이튼 쓴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배우지 않았는가?

의사의 대부분은 임상가인데, 임상의는 통상 1대 1로 상대하지만, 공중 보건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경험 많은 임상의일수록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하고 확신을 갖지만, 공중 보건은 경험보다는 원칙과 포괄적 위험성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어느 임상의도 '어렵다, 할 수 없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자부심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걱정마라, 이렇게 하면 된다. 내 말만 믿고 따르라'가 흔히 하는 말이며, 이건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수록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복잡다단한 변수를 갖는 공중보건을 이런 자신감으로 대처할 수는 없다.

사실 메르스 별 거 아니다. 좀 심한 독감 같을 수도 있고, 개인 위생만 준수하면 피할 수 있으며, 건강한 사람은 큰 위험이 없다. 게다가 폐렴으로 해마다 1만명 이상 사망하고, 결핵은 2,3천명이 죽는 걸 생각하면 이걸로 쓸데없이 불안해 할 필요 없다....

고 나는 이야기해도 된다. 왜냐면 나는 그냥 보잘 것 없는 동네 의사니까. 내 말에 크게 귀 기울일 사람 없을 테니까.

그러나 국가와 국민 건강 전체를 생각하고 Mass game을 해야 하는 사람은 결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사실을 말해야 한다. “우리도 잘 모른다. 그러나 알려진 외국의 사례는 이렇다. 이 사례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모른다고 해서, 국가 체면이 깎이거나 국민이 더 불안해 하지 않는다. 실컷 따라 오래 놓고, “이 산 아닌가 봐” 할 때 불안해 한다.

그래서 사우디의 경험과 그들의 통계를 믿지 말라, 그 어떤 상황도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한 명의 감염자가 한 장소에서 30명에 이르는 피감염자를 만들고, 8명 가까이 3차 감염자로 간주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또 애초 정부가 주장한 바와 달리, 공기 감염의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이고 (앞으로 역학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30명이 한꺼번에 감염된 것은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라는 3차 감염자의 존재도 있으며, 만성질환이나 노인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지만 50대 여성의 사망도 있었고, 3차 감염은 증상이 경증이라고 했지만, 3차 감염 사망자도 발생했다.

이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건, 누굴 비난하거나 음해하자거나 비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특정 조건을 가정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병원 공개에 대한 것이다.

병원 공개는 3차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병원을 공개해 그 병원의 환자나 방문자를 신고하도록 하고, 스스로 주의하도록 해서 초기에 감염 확산을 막도록 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위 전문가들은 이를 계속 반대하다가 결국 6월 5일에서야 뒤늦게 병원을 공개했다.

이로 인해, 최초감염자 A 씨와 같은 병실을 쓴 40대 남자는 평택성모병원을 퇴원한 후 다시 대전의 2 군데 병원에 연달아 입원하면서 5명의 3차 감염자를 만들고, 이 중 한 명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또 다른 환자 역시 서울S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다가 우연히 응급실을 방문한 의사와 환자를 감염시켜 2 명의 3차 감염자를 더 만들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자기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 중에 메르스 최초 발생자가 있음을 몰랐고, 자신이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일 정부가 공기 감염이나 높은 감염력의 가능성, 3차 감염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병원을 공개했다면 이들 모두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거나 검사를 조기에 받아 3차 감염의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우리 정부의 메르스 방역에 점수를 매길 기준을 삼자면 그건 3차 감염자의 수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보균하거나 매개할 낙타도 없고, 이제 국민들 모두 메르스에 대해 충분히 위험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3차 감염자가 더 늘지 않는 이상 감염자가 더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이런 낙관론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팩트는 2차 감염은 대체적으로 끝이 났다는 것일 뿐, 3차 감염 확대 가능성과 또 다른 돌발변수는 누구도 모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무엇을 단정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극단적으로 말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낙타 대신 우리나라 토종닭에 고착해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때문에, 우리 정부의 메르스 방역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지금 내릴 수가 없으며, 오로지 그 기준은 3차 감염자의 수에 달린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3차 혹은 4차 감염의 예방은 철저한 격리와 감시, 방역활동 노력과 성공 여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2 주 이상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중앙부처, 지자체 공무원들과 의료계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며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해 줄 것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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