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핵 모델을 따른다?
일부 언론은 북한이 파키스탄의 핵보유국 인정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파키스탄이 핵을 가지게 된 과정을 답습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파키스탄은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인도가 핵 개발을 하자, 뒤늦게 핵 무기 개발에 뛰어 들었다. 반면 인도는 이미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한 바 있다. 아시아 최초의 핵 보유국인 중국의 첫번째 핵실험이 1964년에 있었으므로, 불과 10년 뒤였다.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은 80년대 중반에 서방에 처음으로 알려졌지만, 핵실험은 98년에 있었다.
파키스탄은 98년 5월 하루에 3번씩, 이틀에 걸쳐 총 6번 핵실험을 했다.
이후, 파키스탄은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묵인되었다.
"미국으로부터"가 중요하다.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은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핵을 가질 때 미국이 아닌 그 어떤 다른 나라도 이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9/11 사태 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즉, 파키스탄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필요한 나라였으며, 친미 정권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잠정적인 핵보유국 인정이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미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힘의 균형이 필요하고, 방어적 목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해명해야 했다.
모든 나라가 핵 보유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가 포기한 나라도 많다. 남아공은 핵미사일을 7기 가량 만들었지만, 이를 모두 폐기하고 NPT에 가입했다.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ICBM 176개와 탄두 1,240발을 보유하게 되었고, 카자흐스탄은 1,410개의 핵무기를, 벨라루스는 825개의 핵무기를 보유하여,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4,5 위 핵보유국이 되었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설득 (과 경제적 보상)으로 이들은 핵을 폐기하거나 러시아로 넘기는 방식으로 핵보유를 포기했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면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어야 한다.
('핵보유국 인정' 의미는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인증서를 발급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핵을 가지고 있으나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은 공공연히 반미를 외치며, 미국을 협박하고 있는 깡패 국가(rogue nation)이며, 일본과 같은 동맹국을 위협하는 체제이다. 또 표면적으로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이 공산주의를 추종하며, 자유 시장 경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들, 그것이 미국의 국익과는 하등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 미국 동맹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뿐이다.
물론, 핵 폐기를 조건으로 핵보유를 인정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 즉,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 폐기를 조건으로 대화를 통해 폐기에 합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선 폐기, 후 대화"이다. 일단 폐기하라는 것이다. 전부 폐기하고 나서 (혹은 이에 준하는 행동을 하고 나서) 대화를 요청하면, 그 때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폐기를 전제로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화를 해야, 보상을 해 주던지 말던지 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미국 정부의 입장은 이렇다. 이 입장은 바뀔 수 있으나 그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 차이는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압박과 제재를 하더라도, 대화 창구를 열어 놓겠다는 것이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이 비핵화인지, 아니면 핵 동결인지도 불분명하며, 과거의 사례를 보았을 때, 비핵화든, 핵동결이든 약속하고, 이에 따른 보상은 받고, 핵개발을 진행해왔던 전례를 비춰보았을 때, 이런 식의 대화가 의미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북핵 문제 해결의 이 같은 한미간 입장 차는 후에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반면, 김정은은 일관성이 있다. 최근의 ICBM 발사 실험, 6차 핵실험으로 보건대, 미국이 어떻게 나오든, 국제 사회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일정에 따라 뚜벅뚜벅 핵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 조만간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타겟으로 하는 수소폭탄을 실은 ICBM의 완성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데, 너무 일관적으로 뚝심있게 앞만 보고 달려가서, 그의 행동을 치킨 게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배짱 부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국제 사회가 어떤 제재를 가하든, 그것과 무관하게 달려가므로, 시간의 변수 외에는 수소탄을 실은 ICBM의 개발을 막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위기는 재깍재깍 초침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급해진 건 미국이다.
미국의 선택은 두 가지이다.
수소탄을 실은 ICBM의 전력화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이다.
김정은은 ICBM의 실전 배치를 끝나고 이를 곧바로 미국으로 쏴 올리지 않을 것이다. 이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 협상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완성때까지 기다렸다가 실전 배치 후 김정은과 협상할 수도 있다. 아마 오바마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걸 견디지 못할 것이다. 즉, ICBM의 전력화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그 수단은 외교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통해 김정은이 스스로 포기하도록 하는 것인데, 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외교적 수단이 통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군사적 수단 뿐이다.
재깍재깍 시간이 가고 있다.
이제는 어떤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만 남아 있다.
어쨌든, 북한의 파키스탄 식 핵보유 인정이라는 옵션은 없다.
착각하지 말자.
2017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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