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를 욕 보인 아들












신현확 전 총리는 일제 시대에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제국 정부 부처인 상무성에 근무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인물이다. 조선총독부 출신 관료가 아니다.

이 때문에, 친일 인사로 분류되기도 하였는데, 해방 후 정부 행정을 맡을 역량이 없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승승장구하며 총리직까지 맡았다.

행정뿐 아니라, 군, 사법부 하다못해 학교 교사나 시골 작은 역 역장까지, 일제 시대에 현업에 종사했던 인물을 쓰지 않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게 되니, 반일 감정을 가졌던 이 대통령도 이들을 기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감정을 언급하며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일제 시대에 부역하며 호가호위했던 인물을 건국 후에도 기용하여,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했고,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누리도록 했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으나, 35년 일제의 지배 속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아 노력 끝에 자기 자리를 잡은 이들을 모두 친일파로 모는 건 무리이다.

이런 논리로 행정, 사법, 군 경험이 있는 자들을 모두 내치면 누가 국가를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라는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과연 그럴까.

가장 최근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혁명에 의해 축출되자 권력의 공백을 메운 이들은 NTC(National transitional committee)이었다. 이들은 혁명 즉,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며 카다피 정부군과 전투를 벌였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무직이거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그냥 동네 청년들이었다. 아랍의 민주화 열기의 원인은 많지만, 가장 현실적 원인은 청년 실업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에 속하는 국가이지만, 사실상 유럽과 더 가깝고 교류도 많은 나라이다. 카다피는 매년 수 천명을 서방 국가로 보내 교육과 연수를 받도록 지원했다.

이렇게 외국 물(?)을 먹고 들어온 이들이 수 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넘게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한다. 이들은 비록 카다피라는 독재국가에서 살지만, 유럽과 민주주의, 시장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잘 알고 있고, globalized mind 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카다피 시절 리비아를 돌아가며 한 주역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가 카다피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내몰리고 NTC가 요직을 차지하였다. 영어 한 마디 못하고, 문서 작성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이 국가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리비아 혁명은 2011년에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반군 조직들과 권력을 찬탈하려는 세력들, 거기에 IS 를 추종하는 광신자들이 뒤섞여 치고 받고 싸우며, 서로 암살, 납치, 폭탄 테러를 일으키며, 지금도 국가의 틀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국민은 먹기 살기 힘들어졌다. 오죽하면 리비아 국민들 사이에는 카다피 시절이 더 나았다며 왜 혁명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35년간 식민지 생활을 한 국민들을 이끌고, 친 공산주의자들이 들끓고, 김구 등 임정 요인들이 자기 지분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해방 3년 만에 자유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건국을 선언할 수 있었던 건 기적같은 일이며, 이를 이끌어 낸 이승만 대통령은 어찌되었던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신현확 전 총리는 건국, 개발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걸쳐 국가에 미친 지대한 영향이 있지만, 나는 그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따라서 그를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2007년 사망 시까지 자신의 지나온 길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역사의 한 복판에서 보고, 알고, 겪으면서도 모른 척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회고록을 작성하지 않았는데, 그 아들이 이 시기에 부친의 과거를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게 신 전 총리의 뜻이었을까?

21세기 오늘을 기점으로 200 여 국가 중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거나, 가슴 아픈 과거사가 없는 나라가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아픈 과거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 아니다.

막말로, “건방진 놈”이라고 호통칠 배포를 가지고 신현확 총리가 구국의 심정으로 대통령 직을 맡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면, 젊은 장교들이 권력 찬탈을 꿈꿀 수나 있었을까?

신현확 전 총리가 3당 합당 추진을 제안한 것이 사실이고, 그 배후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역대 가장 무능했던 대통령 YS과 DJ, 노무현 10년 좌파 정부가 들어서게 한 조정자였던 셈이다.

그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이 될 뻔 했다’며 이를 자랑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부친을 욕 보인 꼴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2019년 9월 21일


참고 자료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