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혁명의 원인




작금의 홍콩 사태, 즉 우산 혁명 (Umbrella revolution)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의 원인은, 알려진 바와 같이 홍콩 자치 정부의 수반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장관” 선출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행정장관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당시부터 현재까지, 홍콩의 헌법 기능을 하는 “홍콩 기본법”에 따라, 800 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추천과 투표를 통해 선출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홍콩 섬은 지난 1841년 영국에 의해 점령 되었으며, 난징 조약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영국으로 양도 된 바 있다. 이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침략되기도 하였지만, 일본 패전에 따라 다시 영국의 식민지권이 회복되어 1997년까지 영국에 의해 통치되었다.

1997년 7월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반환 되었고, 반환 전, 영국 지배 하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하에 생활하던 홍콩 시민들은 중국 반환에 따른 제도 변화와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여 대거 홍콩을 이탈하기도 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 하였지만, 실제로는 영국과 중국과의 조약에 따라, 소위 “일국양제”라는 묘안(?)을 통해 홍콩 시민들의 경제권과 자치권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중 조약은 97년 이후 50년 동안 일국양제를 인정키로 한 것이다. 이 조약을 통해 영국식 민주주의와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역할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영국이 임명하고 파견해 온 총독과는 달리 홍콩 출신의 행정 수반을 ‘선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출에 대해 홍콩 시민들의 지속적인 불만을 야기하여 왔는데, 이는 지난 행정장관들이 모두 친중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이 행정장관의 직선제 선출을 끊임없이 요구한 것에 대해, 최근 중국은 전인대(전국인민대대회)를 통해, 2017년부터 선거인단을 1,200 명으로 늘리고, 이들이 추천하는 인물 서너명을 후보로 하는 직선제를 통해 행정장관을 선출하도록 선거 제도를 개편하게 된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이 안대로 할 경우, 선거인단이 친중 성향의 후보만 추천하게 되어 결국, 중국이 원하는 후보가 행정장관으로 선출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일국양제에서, 일국일제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발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대 데모를 하게 된 것이다.

영국 역시, 전인대의 행정장관 선출 안은 영-중 간에 맺은 일국양제 조약을 어기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홍콩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충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중국 본토의 중국인들은 홍콩 사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침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정부가 언론과 SNS, 구글을 강력하게 검열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이제 단순히 “원칙적인 보통선거” 주장을 넘어서 현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중국군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의 충돌을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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