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유감
이른바 단통법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단통법은 국가 (특히 국회)가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인 것처럼, 국민을 모자란 철부지 어린애처럼 간주하고, 핸드폰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엄한 관리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상한 우월적 가치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 가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 법안의 “제안 이유”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다수 포함하고 있다.
즉, "차별적 보조금 지급이 번호 이동 중심으로 하는 일부 이용자에게만 집중되어 소비자간 후생 배분이 왜곡되고 있어", 불쌍한 호갱들(호구 잡히는 고객이란 의미)이 양산되고,
"동일 단말기 구입자 간에도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구입하느냐에 따라 보조금이 천차만별로 달라 이용자간 차별이 심화되고 있으며, 단말기 가격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힘들어"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에 이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법안 제안 이유에 ‘호갱’이나, ‘무지몽매’니 하는 단어는 없지만, 내용은 그대로 이다.
어쩌면, 우리의 지엄한 관리자들이 우려하듯, 휴대폰 유통 시장은 왜곡되어 있고, 그래서 국민들이 피해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피해라는 건, 바가지를 쓴다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싸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덜 싸게 구입”한다는 것인데, 사실 원래 물건은 제 값에 구입하는 것이 맞다.
휴대폰 보조금이란, 이동통신사, 기기 생산자나 이를 판매하는 소매점이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하고, sales promotion 즉, 판매 촉진 행위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종의 리베이트인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판촉 수단이며, 시장주의 경제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장 경쟁 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공급자가 우월적 지위에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판촉에 목을 맬 이유가 없으니 보조금은 줄거나 없어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소비자가 갑일 경우에는 보다 더 많은 보조금, 지원을 받아가며 이통사와 휴대폰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즉, ‘지엄한 관리자’들이 우려하는 국민의 손해라는 건, 남들보다 덜 지원 받는 보조금에 대한 것인데, 이걸 공평하게 지원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 하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납득되어서도 안 되는 논리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장 원리에 법으로 개입하고 규제를 만드는 것이며, 시장을 더 왜곡시키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단통법의 문제는 ‘지엄한 관리자’들이 애초 구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법을 통해 공평한 보조금 지원을 받게 되고, 종국에는 소비자들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입법했다.
그러나, 오히려 지원되는 보조금 수준은 법 발효 이전과 비교해 월등하게 낮은 수준에서 책정되었고, 결국 전 국민이 ‘호갱’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이 법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이동 통신사, 휴대폰 제조사를 위한 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왜냐면 결국 이 법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보조금은 더 이상 판촉 수단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통사와 제조사는 형식적으로 낮은 보조금만 주게되어, 이 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라, 이동 통신사, 휴대폰 제조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법은 이통사, 제조사들의 일종의 합법적 단합을 조장하게 되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휴대폰 공급의 한 축인 유통 매장은 오히려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보조금 지원이 줄게 되므로, 당장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신규 고객이 급감하게 되고, 매장은 이 법이 정한 제한을 넘어서서라도 구매자 확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줄여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통법의 제정의 과정을 볼 때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단통법에 대한 법률안은 최초 2012년 10월 24일 새민련 전병헌 의원이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으로 제출된 바 있으며, 2012년 11월 이재영 의원(새누리)에 이어, 2013년 2월 노웅래 의원 (새민련), 2013년 5월 조해진 의원(새누리), 2013년 12월 김재윤 의원(새민련) 등 약속이나 한 듯 5명의 여야 의원들이 교대로 유사한 법안을 쏟아내 결국,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나서서 이 5개 법안을 통합하는 대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왜 유사한 시기에 약속한 듯 여야 의원들이 비슷한 법안을 쏟아낸 것일까?
휴대폰 보조금 지원에 관한 법이 과연 국민들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는 민생법안인가?
아무튼 이 법안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휴대폰 구매자, 매 달 수만원의 통신료를 내는 국민들이 체감하지 않을 경우 이 법안을 입법 발의하고 통과시킨 해당 의원과 소관 상임위에 대한 질타는 그치지 않을 것이며, 여야 관계없이 비난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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