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 한민족의 민족성은 무얼까?
<민족>이란 단지 뿌리가 동일하다거나, 사는 지역이 같다는 말로 정의될 수 없다.
즉, 민족이란 같은 지역에서 오랜 기간 같은 풍습, 문화, 역사, 경제 등을 공유한 인간 집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국가와는 반듯이 동일하지는 않은, 일종의 상상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만 놓고 보자면, 현존 일본인의 상당수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후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느라 정신없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 역시 같은 뿌리이고, 독일의 주축을 이루는 게르만, 인도인, 아랍인들은 모두 아리아 족속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전적 뿌리는 민족의 구성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사실 허상일 수 있으며, 민족이 국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며, 민족성이 국민성은 아니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자, 특히 유전적 동일성을 토대로 민족주의를 거론하는 자는 무언가 이차 획득을 꾀하는 사기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에서 민족성과 국민성이 겹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이해하기 쉽게 나라를 기준으로 하자면, 나라마다의 국민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건 그 나라 국민들이 같이 겪어온 역사적 배경과 경제의 부침, 문화성, 관습과 종교적 동일성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대 일본의 경우, 패권주의와 군국주의의 역사를 가졌고, 전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실전 핵으로 공격받았던 나라이며, 지리적으로 잦은 지진과 쓰나미의 역습을 받아야 했다.
조선처럼 쇄국하였다가 일찌기 개항하여 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문화를 일본화시켜 재생산하기도 했다.
우리처럼 자원 부존의 섬나라인 일본은 그래서 외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철저하게 일본화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며, 그게 일본의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본화의 특징은 그들이 만드는 신조어에서도 나타난다. 카라오케, 돈가스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문화 속에 종말과 거대 괴물이나 상상 속의 절대자, 막강한 능력을 갖는 재앙적 존재가 흔히 등장하는 이유 역시 이런 일본인의 국민성 혹은 민족성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저급 노동 시장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의 국민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핀, 멕시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험한 환경에서 험한 노동을 제공하며 벌어들인 작은 돈을 송금하여 본국의 가족을 먹여살린다.
그러면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생성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국민성을 갖추고 있다.
나름 노동시장에서는 선배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과 멕시코가 그런데, 동남아 maid와 nanny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리핀 출신들은 매 주말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기들끼의 회합을 갖으며 그 자리에서 정보를 소통하고 오락을 즐기며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참조)
이건 홍콩이나 싱가폴 등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이들이 있는 거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의 경우 혜화동 성당 부근이 이들의 아지트(?)이다.
그럼,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민성, 한민족의 민족성은 무얼까?
우리는 아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살며 중국에 조공을 바친 역사가 있고, 오랑캐와 왜구의 수많은 침략을 받긴 했지만, 중원의 민족들에 비교하자면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살았고, 오히려 극강의 유교 사상과 양반제도에 의한 고통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왕조 이후에도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나라를 구한 건 국왕이나 영웅이 아니라 의병, 농민, 학도병, 학생, 넥타이 부대 등으로 불린 민초들이었고, 그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민족성의 특징을 극대화(maximization)와 동일화(identification)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극대화란, 일본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때 그걸 철저히 일본화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는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이면 그걸 최대화하여 끝장을 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동양 최고의 시멘트 공장, 세계 최대의 조선소, 세계 최대의 단일 반도체 라인 등 생산 기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면 끝장을 보이는 극성이 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좁은 토지와 적은 자원, 많은 인구에 따른 노동집약적 성향, 다랑이 논을 만들어야 한 민족적 성향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왕족과 양반과 상놈의 계급, 노비 매매가 존재했던 나라였다.
그 신분제도가 사라진 건, 미국처럼 노예제 폐지를 놓고 전쟁을 벌였거나, 프랑스처럼 혁명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힘에 의한 근대적 개혁 (갑오개혁)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 물론 갑오개혁이전에 임오군란, 동학혁명 등 민초들의 항거가 이어졌지만, 그것이 계급 제도 개혁, 노비 제도 폐지를 목적으로 하였다고 보긴 어렵다. )
일제강점기에도 실제적으론 노비로 볼 수 있는 소작농과 노비와 같은 하녀, 하인이 존재하였고, 실질적으로 계급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건, 사실 한국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남침으로 국토가 모두 폐허가 되었고, 거의 모두가 가난했고, 잿더미 속에서 거의 모두가 새로 시작해야 했는데, 물론 전쟁은 위기이고 늘 기회는 위기 속에 있는 것이므로 이를 기회로 삼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한국 전쟁의 폐허로, 드디어, 우리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게 되었다고 '착각'하였고, 그리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 왜 누군 더 부유하고, 왜 누군 더 가난한지에 대한 의문과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이 같은 갈등과 의문은 부를 이룬 자에 대한 맹목적 질시와 경멸로 이어져서,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붙어 먹은 친일파이거나, 한국 전쟁 통에 장사를 해서 민족을 고통스럽게 한 장사꾼이거나,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며 치부한 부정부패자의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왜?
우린 같이 시작했으니까,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저들은 더 부자이니까...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부는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간의 내전을 통해 숱한 배반과 고통을 맛보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난이다.
피난을 가야 하나? 아니면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나?
당시 이승만 정부는 방송을 통해 국군이 북괴를 막을 수 있으므로 피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은 한강을 건넜고, 다리를 폭파했다.
서울에 남은 백성들은 숱하게 죽고,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 일은 1.4 후퇴를 통해서 또 한번 반복되었다.
이제 국민들의 뇌리 속에 박힌 건, "정부를 믿지 마라", "남들을 따라 가라", 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들처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머리 속에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과 같이 출발해서, 남들과 같이 행동하면 적어도 낙오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전쟁을 통해서뿐 아니라, 70년대 강남 개발을 통해서도 체험하였고, 90년대 초 주식투기 열기와 2000년 IT 붐을 통해서도 각인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파트를 유독 선호하는 이유도 단지 편이성, 용이한 환금성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모양과 같은 구조의 집단적 주택에 모여 사는 것이 동일시의 안정감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패딩 점퍼를 입어야 하고, 남들이 보는 영화는 나도 봐야 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과자(허니버터칩 같은)는 어떻게든 구해 먹어야 동일화의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버려지는 것이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들의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하면 억측일까?
2014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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