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티 호의 후손들





사건의 발단은 영국 Kent 출신의 신출내기 여 경찰관 Gail Cox가 연수 차 남태평양의 한 섬으로 파견가면서 시작되었다.

갓 경찰에 입문한 Gail은 신입 경찰 답게 사명감을 무장한 체, 핏케언(Pitcairn)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한 작은 섬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핏케언으로 가려면, 영국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에 도착한 후 3개월에 한번 핏케언 섬에 들리는 화물선을 타고 5,300 km 이상을 항해해야 한다. 

핏케언 섬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중 하나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 중 하나이다.

이 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1789년 영국 국왕의 특별 명령을 받은 함선 바운티 호는 런던을 출항하여 천신만고 끝에 타이티 섬에 도착하게 된다. 바운티 호가 받은 명령은 '빵 나무'에 대한 현지 조사이었다.

타이티 섬에 6개월 넘게 머무는 동안, 선원들은 물론, 부선장까지도 타이티 섬의 원주민에 빠져 선상 반란을 일으켜, 선장과 선장에 동조하는 선원들을 작은 배에 옮겨 타게 한 후 바운티 호를 가지고 도주한다.

겨우 티모르 섬에 도착한 선장은 선상 반란을 본국에 알리고 본국 해군은 반란군을 추격한다.



그 사이 반란을 일으킨 해병들 사이에도 싸움이 있어 이미 여럿이 죽었고, 타이티 섬에 숨어 들어간 남은 인원은 추적대에 의해 대부분 검거되어 교수형을 당하지만, 그 중 7명은 타이티 섬의 폴리네시안 여성들과 함께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섬을 찾아가 숨게 되는데, 그 섬이 바로 핏케언 섬이었던 것이다.

즉, 핏케언 섬의 주민들은 바운티 호의 반란군의 후손들인 것이다.

이들은 핏케언을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하지만, 영국 정부는 해외 영국령으로 주장하였고, 사법권을 이곳에 확대하기 위해 Gail 을 현지에 파견 보낸 것이다.

사실 독립국이라고 하기에 핏케언 섬의 크기는 2마일 x 1 마일 정도로 너무나 작았고, 무엇보다도 인구 수가 고작 40여명에 불과했다.

Gail 이 핏케언에 도착할 당시, 섬 주민 수는 47명에 불과했으며, 이 중 성인 남자는 12명 뿐이었다. 이들이 생존을 위한 모든 일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섬에 도착한 후 Gail은 15세 여자 아이로부터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즉, 그 소녀는 수 차례에 걸쳐 섬의 여러 남자들로부터 강간을 당해왔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성폭행은 그 소녀만의 일이 아니라, 섬에 있는 거의 모든 여성, 심지어 5살 여자아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이 같은 성폭행은 모든 성인 남자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묵인되어 왔다는 것이다.

또, 어린 여성에 대한 성폭행과 강간은 무려 2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Gail 은 기초적인 사실을 수집한 후 뉴질랜드에 체류하고 있는 영국 핏케언 총독에게 보고하였고, 영국 경시청은 수사를 개시하기에 이른다.

수사 결과 Gail 의 보고는 사실로 밝혀졌고, 영국 경찰은 핏케언 섬의 남자 7명을 성폭행 및 미성년자 성행위 금지에 관한 영국법에 따라 기소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형사재판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핏케언 주민들은 자신들은 영국 시민권자가 아니며, 매년 바운티 호의 모형을 불태우며 영국 시민권을 부정해 왔으며, 핏케언이라는 독립국가의 주민이라고 항변하였고, 성인 남자와 미성년 여자와의 성관계는 핏케언의 오랜 관습일 뿐 영국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칙적으론 이들 피의자들을 영국으로 압송하여 영국에서 재판을 벌여야 하지만, 그럴 경우 섬의 노동력이 대폭 감소하여 주민들이 아사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뉴질랜드 판사와 변호사가 핏케언 섬으로 파견되어, 영국법에 따라 스스로 영국 시민이 아니라는 자들을 재판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재판은 2004년 핏케언 섬에서 시작되어 2006년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이 내려지게 되었는데, 기소된 55가지 범죄 사실 중 35 건에서 유죄 결정이 내려져, 기소된 7명 중 한 명은 무죄, 2명은 사회봉사명령, 나머지 4명은 2년에서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뉴질랜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2013년 현재 핏케언 섬의 인구는 49명이며, 이 중 가임 여성은 한 명에 불과하다.

영국 정부는 핏케언 섬의 수입의 95%를 재정지원하고 있으며, 이민을 늘리라고 종용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 추문 이후 주민들은 섬을 떠나고 싶어할 뿐 외지인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해외 언론은 노령화에 따라 앞으로 30년 내에 인구는 20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결국, 핏케언 섬 주민은 사라지고 핏케언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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