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를 없애는게 답 ?






10세기 경, 지금의 우즈벡 남단 작은 마을에서 이슬람의 르네상스를 연 대학자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이븐 시나(Ibn Sina)인데, 신학, 법학, 철학, 의학에 통달하여, 18세에 이미 페르시아 왕가의 궁중 의사가 된다.

천년 전 의술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된다.

그가 저술한 의학서들 특히, <의학정전>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17세기까지 유럽 의과대학의 의학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현대 서구 의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유럽은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과학적 방법에 의한 의학연구와 해부학이 도입되면서 근대의학이 시작되었고, 과거 페르시아 왕조가 점령했던 중동 지방의 의료 수준은 서구의 의학을 차용해 쓰기에 급급한 수준에 머물고 만다.

예를 들자면, 지금도 일부 중동 의사들, 특히 갓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마져도 "사혈법(Bloodletting)"에 대한 맹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혈법 원리는 피를 뽑아 체액과 피의 균형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인데, 2천년 넘도록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된 주요 치료법의 하나였으며, 유럽에서도 18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던 치료법이다.

그러나, 사혈법은 이미 여러 차례 임상적 효과가 없음이 입증된, 폐기된 치료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사혈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니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체하면 손을 따는 행위, 부황을 뜬다며 피를 빼는 행위는 변형된 사혈법의 하나이다.
한의원에서 시행되는 어혈침이라는 치료법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병의원에서 행해지는 의학을 서구의학(western medicine)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물론 세상에는 서구의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의 치료법이 의술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치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술을 전통 의학(Traditional medicine)이라 하며,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근거 중심 의학(Evidence based medicine)과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통 의학을 제도권 내 의학으로 인정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비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독특한 치료방법, 비방을 본인에게 시술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검증되지 않은 근거없는 행위를 아무에게나 제공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일부 의사, 의학자들이 주창하는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 역시 제도권 내 의학으로 포함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사회안전망으로써의 의료 서비스에 전통의학을 포함해서는 안된다.

의학은 과학이며, 과학은 동일한 프로세스로 동일한 결과가 나올 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한의사들에게 X-ray 등 진단기기를 허용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한의사도 의사와 같은 커리큘럼으로 동일한 의학을 배웠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며, 한의사 스스로, 자신들도 서구의학을 공부했다고 최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의 기본이 음양오행과 사상체질이라는 건 바뀔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한의사들이 의학 라틴어를 입에 달고 산다고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과 서구의학은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보는 시각도 다르며, 질병을 접근하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ray로 다리 사진을 찍고 골절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침을 놓겠다는 건, 이미 한의학의 근본을 부정하고, 의사 흉내를 내며 의료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의사는 한의사이지 의사가 아니다.

이건 한의사들을 무시하고 모욕하자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한의학 원래의 의술로 돌아가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한의학이 전통의학으로써 학문적 가치와 의술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현대 의료기기를 넘볼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논리와 학문적 위업을 쌓아야 하며, 만일 스스로 한의학이 의술로써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 논쟁을 결론지어야 한다.

만일 X-ray 와 같은 현대의료기기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면, 한의과대학을 폐쇄하고, 한의사 면허를 없애고, 의과대학내 한의학 강좌를 개설하여 제도권 의학 내에서 우리나라 전통의학을 계승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무의미하며, 분열을 야기하는 논쟁일 뿐이며, 국민의 편이성을 앞세워 건강권을 침해하자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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