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 무차별 복지가 만능은 아니다.





제가 아는 어떤 나라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무상입니다. 대학교 시설이 아주 우수해서 인근 국가들에서 유학생이 많이 오는데, 그 유학생들도 모두 무료로 다닙니다.

물론 대학 입시라는 건 없습니다. 그러니 입시 과열도 당연히 없습니다. 의대에 가고 싶으면 아예 고등학교 때부터 의대진학반을 따로 두고 가르치며, 원하면 누구나 의대진학반을 거쳐 의대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의대생만 약 4만 명이 넘습니다. 의과대학 수는 10개이니, 학교당 4천명 정도의 의대생이 있는 것입니다.

유학을 원하면 국비로 유학을 보내줍니다. 많을 때는 한 해 1만 명씩 보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꼭 귀국하지 않더라도, 즉, 그 나라에서 취업해도 뒷바라지를 해 줍니다. 물론 귀국하면 요직에 앉힙니다. 그렇게 귀국해 정부 요직, 국영기업체 임원으로 일하는(혹은 일했던) 사람이 수십 만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영국, 미국, 유럽 등에서 공부하고 직장 생활을 하여, 우리나라 기업 임원, 공무원들보다 훨씬 더 국제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그 나라 국민 수는 6백만명이 채 안됩니다.

의료비는 물론 모두 공짜입니다. 병원 시설은 우리나라 메이저 병원보다 더 낫습니다. 물론 낡고 오래된 병원도 있지만, 2천 병상의 초현대식 병원도 많고, 새로 지어지는 병원이나 요양 병원, 결핵 병원 등은 모두 우리나라 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습니다.

약도 모두 무상이며, 게다가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모든 약은 오리지널 의약품입니다. 복제약 따위는 안 씁니다.

그 나라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나랏돈으로 외국에 보내 치료받게 합니다. 환자만 보내는 게 아니라, 돌볼 가족도 같이 보내서 호텔에 투숙시켜 줍니다.

이렇게 외국에 환자를 보내 치료받도록 하고 쓴 돈이 2011년에만 3조 원이 넘습니다.

세금은 소득의 5~10%이고 법인세도 딱 10%입니다. 전기값이 매우 싼데도 제 때 전기값을 내고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휘발류 가격은 정부가 외국에서 리터당 1천원 정도에 사와서 국민들에게 리터당 200원 미만에 팝니다. 승용차에 가득 채워도 1만원이 되지 않습니다.

일자리가 별로 없다고, 공무원을 무지하게 뽑습니다. 이를테면 한 해 필요한 교사 수가 1만명이면 2만명을 뽑아서 그냥 월급만 줍니다. 물론 정부가 줍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만일 성인이 되어 취업을 못하면 일인당 50만원 정도 무상으로 나누어 줍니다. 그 나라 공무원 월 평균 급여가 80만원 정도인데다가 물가가 싸고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아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세가 넘어가면 그 동안 받았던 월 급여 100%가 연금으로 지불됩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빵 공장에서는 매일 빵을 만들어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천원이면 팔뚝만한 빵 20개를 살 수 있습니다. 당연히 굶어 죽는 사람 없습니다.

결혼하면 정부가 은행을 통해 주택 자금을 빌려줍니다. 우리 돈으로 3억 정도 빌려주는데, 물론 무이자이고, 그 돈이면 실평수 100평 가까운 주택을 지을 수 있습니다. 주택을 완공하면 4천만원 정도만 나누어 갚으면 되지만, 실제 갚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 '천국 같은(!)' 나라는 바로 리비아입니다.

리비아는 리비아인데, 카다피 독재 시절의 리비아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 카다피를 쫓아내고 시민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자스민 혁명, 아랍의 봄은 왜 왔을까요?

헐벗고 가난해서 일까요?
정치적으로 억압받아서 일까요?

자스민 혁명은 과거 동유럽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랍의 봄, 자스민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장하고, 그래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튀니지와 이집트, 예맨, 사우디에 아랍의 봄이 온 이유는 각기 다르며 그 결과 또한 다릅니다.

적어도 리비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더 노력하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 더 노력하고 고생하면 더 큰 보상이 돌아올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리비아 독재자가 국민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어도 그것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갈망이 있었고, 그 갈망을 채우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탱크와 전투기 앞에 맨 주먹으로 서도록 한 것이라고 봅니다.

혁명의 결과, 지금은 내전에 휘말려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고, 카다피 시절의 원칙들(예를 들어 1가구 1주택 원칙)이 무너지면서 주택 매점매석이 성행하여 주택 가격이 몇 곱절 뛰었고, 혼란기를 틈 딴 조직들이 밀수와 마약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면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갔고,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 커졌고, 석유 생산은 급감하여 정부 재정은 엉망이 되었고, 천원에 20개를 주던 빵은 이제 5개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이들은 현재의 리비아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고 현 정부를 비난하고, 가족과 친구를 잃어 힘들어 하지만 누구도 카타피 시절을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무상 복지, 무차별적 복지가 만능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소득을 보장한다고 평등한 사회가 온다는 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면, 행복해 할 것이라는 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해 주면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습니다.

물론 리비아의 사례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고, 리비아에 비추어 우리나라를 볼 수는 없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NHS나 이와 유사한 제도를 채택한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나라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아낌을 받습니다.

우리나라도 환자가 직접 진료비를 내지 않는 이른바 무상의료제도를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아마 의사가 아니라 국민들이 더 반대하고 나설지 모릅니다.

왜냐면 의료비 지출은 지금보다 훨씬 더 통제되고, 병원 이용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떨어지고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리비아 역시 누구나 국영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낮은 의료 수준 때문에, 국영병원을 기피하고, 비싼 민간병원으로 환자가 몰립니다. 몇 년 전부터 리비아 민간병원은 호황을 누리며 환자를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력 수준을 볼 때, 우리나라도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복지 국가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사회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도움이 필요하고 국가가 돌봐 줘야 할 사람을 제대로 돌봐 주는 겁니다.

또, 열심히 노력하면 꼭 보상받을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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