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스톤 작전 (Operation Hailstone)
난파선 (Wreck) 다이빙은, 스릴 넘치고 흥미로운 다이빙의 한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난파선은 수심 깊은 곳에 있기 마련이고, 난파선을 둘러보려면 깊은 수심에 체류하는 경우가 많아 고난도 다이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타공인 난파선 다이빙의 메카는 추크라고 불리는 섬이다.
그런데 이 섬이 오늘 날 난파선 다이빙의 메카로 불리기까지에는 아픈 전쟁의 역사가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에는 진주만(pearl Habor)이 있었다면, 일본 군에게는 트룩(Truk)이 있었다. 트룩은 지금은 추크(chuuk)라고 불리는 섬이며, 괌의 남쪽, 팔라우와 폼페이 사이에 있는 "남태평양"의 작은 산호 섬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남태평양"은 남반구에 있는 태평양이 아니라, 남쪽 태평양을 말한다고 해야 하며, 실제 위도상 북반구에 있는 섬들도 남태평양에 있다고 말한다.
이 "남쪽 태평양"에는 수 많은 섬들과 군도가 있는데, 이들은 마이크로네시아(micronesia), 멜라네시아(Melanesia), 폴리네시아(Polynesia)로 구분할 수 있다.
마이크로네시아는 필리핀의 동쪽 팔라우에서부터 더 동쪽으로 길게 늘어선 섬들로 로타(Rota), 사이판(Saipan), 팔라우, 얍(Yap), 괌(Guam), 트룩(Truk), 폰페이(Pohnpei), 코스레(Kosrae) , 마샬군도( Marshall Islands)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도에서 볼 때, 모래처럼 작은 섬들이어서, micro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멜라네시아는 melan 즉 검다는 의미로, 마이크네시아의 아래쪽, 파푸어뉴기니의 윗쪽에 위치한, 어드미럴티섬, 솔로몬제도, 산타쿠르즈, 바누아투, 피지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 섬들의 주민은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폴리네시아의 poly는 많다는 의미이며, 하와이 섬과 이스터 섬, 뉴질랜드의 삼각 권역 안에 있는 섬들로, 뉴질랜드, 사모아, 쿡 제도, 통가 등이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핏케언 제도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이 중 마이크로네시아는 다시 4개의 군도로 나누어지는데,
마리아나 군도(Marianas),가 그것이며,
캐롤라인 군도(Carolines),
마샬 군도(Marshalls),
질버트 군도(Gilberts)
크게 보면, 마이크로네시아는 'ㅗ' 모양으로 섬들이 이루어져 있는데, 괌, 사이판 등이 속한 마리아나 군도는 북남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나머지 동서로 이어져 있는 군도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캐롤라인 군도이며, 캐롤라인 군의 동쪽에, 마샬 군도, 마샬 군도의 남쪽에 질버트 군도가 위치한다.
FSM은 다시,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얍 (State of Yap),로 나뉘어져 있다.
추크 (State of Chuuk),
폰페이 (State of Pohnpei),
코스래 (State of Kosrae)
남태평양 섬들에 대한 지리적 이해가 되었다면, 추크 섬이 왜 군사학적으로 중요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섬이 마이크로네시아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활주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섬의 크기가 크고, 높은 산이 있어 안테나를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기 쉽고, 섬 주위를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어 자연 방파제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배를 정박시키기 쉽고, 바다가 깊어 큰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은 추크 섬을 매우 중요한 군사 기지로 사용하였고, 많은 군함과 수송선들이 이 곳에 정박하였다.
미연합군은 추크를 침공하기로 결심하고, 엔터프라이즈 등 항공모함 8대, 경모함 4대, 전함(battleship) 7대, 그외 전투함 45대, 잠수함 10대, 비행기 약 600대를 동원하였다. 이 작전의 이름은 '오퍼레이션 헤일스톤(Operation Hailstone)'이었다.
Avenger TBF's ready to roll on deck of US Carrier Monterey, attack on Truk Lagoon, 17th. February 1944. |
16 inch main armament of US battleship Iowa, firing at fleeing Japanese Destroyer Nowake.Truk Lagoon, February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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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k force 58, peacefully at anchor at Majuro Atoll
after the attack on Japanese stronghold of Truk in February 1944. |
추크 공격이 있기 2주 전, 미군은 정찰기를 띄어 추크의 항공 촬영을 감행하였다.
이 항공 촬영으로 추크 라군 안에 일본군의 항공모함 2대, 전함 1척, 구축함 20척, 순양함 10척, 잠수함 12척, 그외 수송함 50척 이상이 발견되었으며, 활주로 주변에 다수의 군용기, 전투기가 포착되었다.
정찰 사진 |
그런데, 이 정찰로 일본군은 미국의 침공을 예상하게 하여, 일본군 제독 마사미 고바야시는 전함 일부를 부랴부랴 팔라우로 옮겼다.
드디어, 2월 17일, 이틀에 걸친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고, 12대의 항모와 경항모에서 수 백 대의 폭격기들이 교대로 추크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작전명처럼, 우박과 같은 폭탄을 섬에 퍼부었다.
Dive Bomber Over Truk |
추크를 감싸고 있는 coral reef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파도를 막아 주었지만, 배가 내해에서 외해로 빠져나가려면, coral reef를 파괴하고 준설하여 운하처럼 배가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추크 섬에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 같은 통로는 불과 서너 군데 뿐이어서 동시에 많은 배들이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수십대의 군함과 수송선들은 서로 엉켜서 미군 폭격기의 폭격에 의해 그대로 수장되고 말았으며, 가까스로 빠져 나온 배들 역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함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게 된다.
이 작전으로 일본군의 주요 함정과 수송선 47 척이 수장되었고, 270 여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반면, 미군은 40명이 죽고, 25대의 비행기를 잃었을 뿐이다.
이 operation hailstone은 항공모함의 위력을 여과없이 보여준 중요한 해전사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일본군이 항모 등 전함을 빼돌리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손실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다.
미군은 추크에 상륙하지 않은 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수천명의 일본군 등이 폭격에 의해 사망했지만, 당시 추크에는 2만5천 여명의 일본군과 일본 시민, 약 1 만명의 원주민과 약 1만 5천명의 징용 노동자 등 5만여명이 있었다.
그러나 Chuuk는 5만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물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Chuuk 침공으로 일본은 거점 기지를 잃었고, 태평양에는 미 전함과 항공모함, 잠수함이 돌아다녔고, 전쟁 막바지에 이른 일본은 Chuuk를 거들떠 볼 겨를이 없었다.
고립된 Chuuk에서는 곧 식량은 동이 났고, 바다는 침몰한 배들로 오염되어 Lagoon 안에서는 고기를 잡아 먹을 수도 없었고, 땅에서 나는 과일이나 농산물은 일본군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나마 거덜이 나자, 드디어는 공공연히 인육을 먹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자료를 의하면, 당시 1만 5천 명의 징용 노동자 중 약 9천명 정도는 한국인 징용자였다. 이들은 활주로 건설 등을 위해 징용되었으며, 이 들 중 살아 돌아간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추크 섬 바다에 가라 앉은 일본군의 잔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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