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통계학이다
기침하고, 가래가 끓고, 미열이 있으면 감기 혹은 상기도 감염을 의심한다.
왜냐면, 감기가 가장 흔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관지염 혹은 폐렴일 수도 있고, 폐혈핵일 수도 있다.
또, 구토, 설사, 복통이 있으면 장염을 우선 의심한다. 그러나 장폐색, 장괴사, 장중첩증, 충수돌기염 등의 응급질환일 수도 있다.
진단은 증상, 과거력 혹은 증상이 발생한 이력, 진찰과 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진단 기기의 발달로 병원이 할 수 있는 모든 혈액 검사, 방사선 검사를 하면 확진의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과대학에서 가장 강조해 가르치는 것이 '가장 흔한 증상', '가장 흔한 질환' 같은 것이다. 통계적으로 가장 흔한 질환을 먼저 염두에 두고 진단을 붙이는 것이다.
만일 단순 감기나 장염을 확진하기 위해 모든 혈액 검사와 CT 등 모든 방사선 검사를 했다가는 환자나 보호자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심평원의 삭감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는 늘 그 사이에서 갈등해야 한다.
기사 만으로 상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8세 어린이가 구토, 설사, 발열 등 다른 증상없이 단지 복통으로 내원하는 어린이라면 누구라도 변비의 가능성을 우선 의심한다.
왜냐면, 이런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사에서처럼, 횡격막 탈장은 거의 대부분의 의사들이 교과서에서 배웠을 뿐 임상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매우 드문 질환이다.
횡격막 탈장에는 크게 3 가지 형태가 있는데, 첫째는 선천적 횡격막 탈장이다. 즉 횡격막 기형이다.
선천적 횡격막 탈장은 치사율이 높은 응급 질환에 속하며 절반 가량이 조기 사망한다. 빨리 발견해 수술하지 않으면 폐의 형성에 장애를 주며, 선천적 횡경막 탈장이 있는 경우는 다른 기형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둘째, 식도 열공 탈장이다.
이는 식도와 위가 만나는 부위의 횡격막 구멍이 늘어나면서 위가 흉곽으로 탈출하는 병인데, 비만하거나 고령인 경우에 잘 생긴다.
세번째는 외상성 횡격막 탈장이다.
이는 말 그대로 외상에 의해 횡격막이 터져 장이나 장기가 흉곽으로 탈출하는 경우이다.
이 환아의 경우 세번째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선천성 횡격막 탈출로 8세까지 생존했다면, 그것으로 느닷없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며, 식도 열공 탈장은 그 나이에 호발하지 않을뿐더러 이 때문에 혈흉이 생기고 저혈성 쇼크로 사망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케이스라면 이건 학회에 보고할 일이지, 의사를 구속할 일이 아니다.
그럼, 세번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횡격막은 근막이 잘 발달해 매우 질긴 근육이다. 외상에 의해 탈장이 생길 정도로 횡격막이 찢어졌다면, 외상의 과거력이 있어야 한다. 외상의 과거력 없이 기침, 재치기로 생긴 경우도 국내에서 1 례 있었지만, 매우 드문 예외적 경우라 할 수 있다. 물론 통증이 주증상이었을 뿐 생명을 위협할 저혈성 쇼크는 없었다.
외상에 의한 횡격막 탈장은 교통 사고가 가장 흔한데, 둔상에 의한 경우가 2/3, 관통상에 의한 경우가 1/3 정도이다.
또, 지연성 횡격막 탈장도 있어 외상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이 지난 후에 탈장이 생긴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학회에 보고된 매우 드문 경우이다.
기사에 의하면, 이 환아의 사망 원인은 출혈성 쇼크라고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출혈성 쇼크에 이를 경우 단지 복통만 호소하는 경우는 없다.
외상의 과거력이 있고, 출혈성 쇼크에 동반되는 증상이나 징후 즉, 혈압이 떨어지고, 심박수가 빠르고, 식은 땀을 흘리고, 초조해하거나 불안해 하고, 외상에 의한 다른 증상이 있을 때 이를 놓칠 응급의학과, 소아과 의사는 없다.
한 마디로 외상의 과거력 없이 복통으로 시작해 열흘만에 저혈성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케이스이다.
이 사건과 같은 경우를 확율로 계산한다면 0.01~0.001% 에 가까울 수 있다. 즉, 복통으로 내원한 환자의 만명, 혹은 십만명 중 한 명 꼴로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소아과 전문의 등 세 명의 의사가 네번이나 진료를 하고도 놓친 케이스로 의사를 교도소에 쳐 넣고, 1년 6개월 금고형을 때리고 의사 면허를 박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애가 죽었는데, 고작 1년 6개월 금고형이 뭐냐, 이게 나라냐고 분통을 터트릴 국민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사망한 환아에 대해서는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명복을 빌며, 그 부모와 가족에게는 깊이 위로를 드리지만, 때로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긴다는 사실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의사는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치료는 자동차 타이어 갈듯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진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운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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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의료계가 얻는 교훈을 뭘까?
방어진료이다.
범죄자가 되지 않고, 면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방어적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방어 진료는 단지 0.01% 혹은 0.001% 의 가능성을 잡아내기 위한 각종 검사를 말하는 건 아니다.
확진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정중하게 다른 병원 더 나은 의사를 찾아 가시라고 권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했다고 꼼꼼히 기록을 남겨 자신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레지던트가 있는 수련병원에서 발생한 케이스인데, 대학병원일 가능성이 크지만, 대학병원이라고 오진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체면 불구 그렇게 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결과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환자는 자신을 확진했다고 확신을 가질 의사를 찾아 이리저리 병원을 오가며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고, 각각의 병원은 확신을 얻기 위해 수없이 검사를 남발하게 될 것이고, 그건 고스란히 건보 재정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며, 심평원은 이를 막기 위해 마른 수건을 더욱 세게 짤 것이다.
또 하나는 결국 이 나라에서 가장 용하다는 병원으로 환자는 더욱 몰릴 것이며, 그 병원은 밀어닥치는 환자를 처리 못해 결국 변비, 장염, 감기로 진단될 환자로 인해, 실로 심각한 환자들의 치료가 지연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오진에 대한 의사들의 처벌이 강화되고, 구속시키고 실형을 때리고, 면허를 취소하는 재판부의 정의(!)가 지속된다면, 이 나라에서 토종 의사는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이를 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 의대의 1991년 연구에 따르면, 1984년 한 해 뉴욕주에 있는 51개 급성기 병원에서 퇴원한 2,671,863 명 중에 98,609 명(3.7%)에서 명백한 의료 사고가 있었는데, 2,564 명에서 영구적 장애가 남았고, 13,411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사고의 27.6%가 의료진의 태만에 의한 것이었다.
1992년 유타와 콜로라도 주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고, 비슷한 비율의 의료사고와 사망자가 있었다.
미국 CDC는 2011년 미국 내 병원에서 75,000 명 가량이 병원내 감염으로 사망한다는 보고를 했고, 2014년 뉴잉글랜드저널 (NEJM)에 실린 논문에는 미국 내에서 수술받은 환자의 12.5%에서 수술 후 뱃속에 거즈나 가위가 발견된다는 조사도 있었다. 수술받은 환자 10명 중 한명 꼴이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쾌유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뿐이다. 환자와 의사의 계약은 100% 완결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명백한 과실이나 고의가 아니라면, 의료 사고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 만일 의사가 과실하거나 진료 수준이 떨어지면 재교육하고, 민사적 책임을 물을 뿐이다.
매우 희귀한 케이스의 오진을 문제 삼아 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매우 나쁜 사례로 남게될 것이다.
사법부는 의료계에게 방어 진료를 명했고, 의료계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사법부가 아니라, 의료소비자들이 지게 될 것이다.
2018월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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