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겹치면 우연이 아니다














당국의 설명은 외국인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북서풍을 타고 저유소 인근 잔디밭에 떨어져 불이 붙었고, 이 불씨가 저유소 탱크의 유증기 배출 배관에서 나온 유증기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났다는 것이다.

우연이 너무 많이 겹치면 의심이 든다.


사실 이 사건 발생 직후 ‘설마’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곧 ‘그럴리야’ 했는데, 소방당국의 설명 기사를 읽고, 설마는 ‘혹시’로 바뀌었다.

기사를 보면, 전문가들은 이렇게 보고 있다.

제진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환기구 끝에는 구리 재질로 된 인화 방지망이 있는데 열을 분산시키며 화재를 예방한다"며 "이런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는데도 이번처럼 큰 화재로 이어졌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잔디에 불이 붙었다고 하는데 토요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비가 왔다. 젖어 있던 상태라면 잔디에 풍등의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작다. 의문점이 많다"고 했다.

당국은 이번 화재는 발생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지만, 조건이 맞으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기사에 나온 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화재가 발생한 탱크는 휘발유 490만ℓ를 저장할 수 있는데, 발화 당시 440만ℓ가 들어 있었고, 260만 리터를 다른 탱크로 빼냈고 180만 리터만 탔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면 ‘설마’나 ‘혹시’는 틀렸을 것이다. (10월 8일 오후 10시 기사)

http://news.chosun.com/…/html…/2018/10/08/2018100802172.html

그런데, 조선일보 다른 기사에는 180만 리터가 아니라, 266만 리터가 탔다 (10월 9일 오전 3시 기사)는 보도도 있다.

http://news.chosun.com/…/html…/2018/10/09/2018100900150.html

왜 기사 내용이 다를까.

당국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더 이상하다.

풍등으로 보이는 물체가 저유소 잔디밭에 떨어지는 영상을 볼 때, 떨어진 위치와는 다른 위치 즉, 탱크와 가까운 곳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도 풍등으로 보이는 물체가 떨어지는 시점에 카메라는 다른 곳으로 급하게 옮겨진다.

http://news.chosun.com/…/html…/2018/10/09/2018100900543.html

우연은 이 뿐이 아니다.








우연히, 외국인 노동자가 저유소 인근에서 풍등을 날렸다.

우연히, 그 노동자는 인근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10시40분 당시가 휴식 시간이었단다. 동영상에 쉬고 있는 다른 노동자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그 풍등은 저유소 인근에 떨어졌다. 풍등에 제대로 불이 붙어 있었다면 불과 몇 백미터 날고 떨어지지 않는다. 풍등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풍등에 붙인 불이 꺼졌다는 얘기이다. 동영상을 봐도 풍등으로 의심되는 물체가 떨어질 때 붙이 붙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카메라는 풍등을 날리고 잔디밭에 떨어지고, 잔디에 불이 붙는 모습을 모두 촬영했다.

그런데 우연히, 풍등 낙하 시점에 카메라가 휙 돌아간다. 다음 장면은 불 붙은 잔디이다.

우연히, 잔디에 붙은 불이 유증기에 옮겨 붙었다.

우연히, 불붙은 저유소는 최북단에 있는 고양이다.

우연히, 북한은 기름이 많이 필요하다.

참고로, 아무리 한국 정부가 북에 기름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 대북제재 위반, 유엔 결의 위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름을 북에 주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름은 국내 정유사로부터 구입하거나, 국내 정유사에 압력을 넣어 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 정유사는 세컨더리 보이콧에 걸릴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정권의 압력이라도 기업의 명운을 걸고 기름을 보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불타고 사라진 기름에 대해선, 아무도 추궁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름을 몰래 빼내고, 기름이 사라진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저유소에 불을 질렀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저유소를 오가는 유조차가 기름을 넣기 위해 온 건지, 기름을 가져가기 위해 온 건지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려 440만 리터가 저유된 탱크와 그와 유사한 양이 저유된 다른 탱크들이 여러개 있는데, 다른 탱크는 아무 문제 없이, 불과 하루 만에 기름 탱크 폭발 화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의심한다고 결코 말하지도 않았다.

저유소 화재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만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니다. 과거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저유소 화재 사건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리비아에서도 무장 세력에 의한 화재가 있었다. 이런 저유소 화재가 하루 만에 진압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없다. 물론, 우리 소방당국의 화재 진압 능력이 뛰어나고, 이란, 이라크, 리비아는 전쟁 상황이므로 화재 대응을 못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

지난 2005년 영국 Hertfordshire 저유소에서 폭발 화재가 발생한 바 있다. Hertfordshire 저유소는 영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저유소이며 20개의 탱크를 가지고 있었다.

2005년 12월 11일 오전 6시 경 유증기 화재로 탱크 하나가 폭발하면서 연달아 다른 탱크에도 옮겨붙어 5일간 화재가 지속되었다.







당시 화재 원인은 기계적 결함에 의해 탱크 roof vent (유증기 배출관)를 통해 휘발류가 넘쳐 흘려 탱크 주위에 두께 2미터의 유증기가 만들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했고, 곧 탱크가 폭발했다.

생각해 보자.

잔디밭 불씨가 유증기에 점화되어 탱크가 폭발했다면, 인근에 있는 다른 탱크는? 화염과 열기로 100 미터 이상 떨어진 소방차 유리가 터질 정도였는데, 다른 탱크에서 나오는 유증기에는 점화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물론 이 화재는 우연과 우연이 축적되어 발생했고, 아무 의미없는 ‘혹시’와 ‘설마’를 가진 나를 자책하는 것 뿐이다.


2018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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