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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명분 (Casus Belli)








전쟁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전쟁의 명분이다.

이 명분은 구실이나 핑계(pretext)나, 원인(cause)이 아니라 타당성(justification)을 의미한다.

만일 전쟁의 타당성이 충족되지 않으면, 병사는 적군을 쏠 수 없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살인의 행위인데, 살인이라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려면 이를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정당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이를 제대로 만들어낼 때, 제대로 된 전쟁을 할 수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의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다.

미국은 이라크가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대거 가지고 있어, 세계 안보를 위협하므로 이를 제거할 목적이라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울트라수퍼특급세계제일 패권 국가인 미국의 정보 수준이 고작 그 정도였을까?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없었고 (2004년 10월 미국이 파견한 조사단은 이라크에는 그런 무기가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결국 그 허위 정보는 이라크를 탈출한 재미 이라크인들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밝혀지게 되었다.

헐리웃에서 만든 수 많은 이라크 전 소재의 영화들에서는 자신들이 중동 모래 사막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의아해하는 미군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연기를 한다.

만일 지금 한반도 인근에 전략 자산을 전개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한다면, 미국의 전쟁 명분은 무엇일까?

- 핵무기의 제거?

만일 핵무기의 제거가 목적인 전쟁이라면, 미국은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과도 전쟁을 해야 했다.

- 반미 정권의 제거?

지구 상에 반미 정권은 북한 뿐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미제 타도를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북미 평화협정을 갈구하고 있다.

-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가진 반미정권의 제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지금 당장 그것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전쟁의 명분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만일 “장차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라는 단서를 붙이고 북을 공격할 경우, 이는 미국 패권주의의 침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따라서, 무언가 더 가슴에 와 닿고,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Humanity”를 언급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이 인류애를 실현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주민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독재 정권을 붕괴시킬 전쟁을 한다고 하면, 이는 수긍될 수 있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미지의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고, 전쟁으로 우리측 무고한 희생이 발생할까 우려하며,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할 뿐, 북한 주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3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수 없이 북한의 비인류적 행위에 대해 증언하지만, 애써 외면해 온 것도 사실이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은 한국의 동의없이 전쟁을 해서는 안되며, 그 이유는 한국이 피해받을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했다. 일견 주권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해 보이는 듯 하지만, 그의 발언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배려나 그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북한 주민에게는 이번 대선의 투표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Humanity를 슬로건으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킬 경우, 이 전쟁은 인간성 회복, 인류애의 실현으로 기록되는 첫 전쟁이 될 수 있다.

게다가 Humanity는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한 협의없이 개전하더라도 이를 용인시킬 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사실, 북한과 북쪽 주민은 미국이 안고 있는 커다란 업보이다.

6/25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연합군이 중공의 참전으로 다시 후퇴를 거듭하였을 때, 해리 투르먼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지휘하던 맥아더 장군을 해임했다. 전선에 있는 사령관을 해임한 건 둘의 의견 차이가 컸고, 맥아더 장군이 번번히 백악관의 지시를 어겼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한국 전쟁에 대한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시각 차이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맥아더는 북한을 다시 수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투르먼 대통령은 38선 교착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 협정이 이루어졌고, 북한 주민들은 인질이 된 체, 고난의 시간을 무려 60년 넘게 보내야 했다.

이는 어찌보면 미국의 원죄라고 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전쟁의 명분이 단지 미국의 안보 때문이 아니라 그 업보를 풀겠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남한의 그 누가 이를 반대할 수 있는가? 과거 우리가 무기력했고, 안일하여 북쪽의 동포들을 60년 넘게 고통 속에 방치했는데, 지금 이 기회에 그들을 북괴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데, 그 어떤 논리와 이유로 반대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Humanity를 거론한 것, 틸러슨 장관이 토스카나에서 “전 세계 어디서건 무고한 이들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모두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을 예사로 여겨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Humanity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는다면, 이 명분(justification)은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명분은 섰다.

결단이 남았을 뿐이다.



201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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