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돈의 모든 이야기 : 관행 수가 vs 보험 수가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1977년에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차용하여 만들어졌고, 우리보다 수십년 앞선 일본의료보험은 유럽의 보험제도를 빌려왔는데, 특히 독일 보험제도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초기에 일본이나 독일처럼 직장별, 지역별 의료보험조합이 별도로 있었다. 2000년 이후 건강보험제도로 바뀌면서 단일 보험자 체제로 바뀌었지만, 일본이나 독일은 지금도 여러 조합이 각기 조합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려면, 의료 행위와 재료, 의약품 등에 대한 가격이 정해져야 하는데, 이를 “수가”라고 한다. 건강보험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정부가 수가를 정해 고시했다. 지금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수가, 급여 항목 등을 결정한다.

문제는 건정심은 그 구성상 공급자 단체와 가입자 단체등 20 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서로 입장 차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합리적 수가 결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아예 정부가 고시했을 때가 훨씬 더 유연하고 탄력적이었다.

그렇다면 보험 제도가 도입되기 전 즉 76년 이전에는 의료 행위에 대한 가격을 어떻게 정했을까?

이 때는 따로 정해진 것이 없이 의료기관이 정하는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미장원을 생각하면 된다. 미장원에서 행해지는 서비스 즉, 커트, 퍼머, 염색 등등 미장원이 행하는 서비스의 종류는 대등소이하지만, 그 가격은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고 (비슷한 급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77년 이전의 의료기관은 지금의 미장원처럼 서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충 비슷한 가격을 받았다. 이렇게 받는 가격을 ‘관행 수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보험제도가 도입 되면서, 정부는 그 가격을 통일시키려고 했다. 서비스 행위에 대한 가격이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서비스의 품질도 동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의사의 숙련도, 경험, 하다 못해 의료기관의 시설이나 청결도, 위치 등이 서로 다른데, 서비스가 동일할 리 없다.

그럼에도 국내 모든 의료기관의 모든 의사의 의료 서비스의 품질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수가를 똑같이 책정해 버린 것이다.

이게 첫번째 문제이다.

또, 보험제도가 도입 되던 말던 그 의사가 환자에게 행하는 행위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보험이 없었던 어제와 보험이 시행된 오늘의 행위가 달라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즉, “관행 수가”가 “보험 수가”로 바뀌면서 동일한 행위의 가격이 반토막이 났다.

즉, 관행 수가로 1만원을 받던 행위가, 보험이 되면서 5천원으로 깎였다는 것이다.

반토막이란 건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일부 행위는 십분의 일로 깎였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1977년 6월 8일 최초로 '진료수가기준과 요양급여기준'을 고시했는데, 당시 보건사회부 기획관리실장은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 "진료수가는 관행수가보다 약 45% 절감된 55%선으로 책정했다"고 보고했다.


1977년 당시 국회의사록







이렇게 보고한 국회 회의록은 지금도 존재한다.

의료 행위 자체에는 변화가 없는데 가격만 반토막낸 것, 이것이 두번째 문제이다.

미국에 오바마케어, 즉 전국민이 의료보험에 들도록 강제하는 법이 시행되었을 때, 의료기관의 수가가 깎인 바 없다.

미국은 포괄수가제(DRG)를 개발하고 최초 도입한 나라이다. 미국에서 포괄수가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수가를 후려쳐 깎았다는 이야기도 없다. 미국 의사들은, 전국민의료보험을 하던 말든, 포괄수가제를 도입하던 말던 동일한 서비스 가격을 받는다.

왜냐면, 보험이 없던 환자가 보험에 들었다고 해서, 가격을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병원은 환자에게 받던, 아니면 보험사에게 받던, 같은 가격을 받으면 그만이다.

또, 미국은 DRG 를 단지 수가를 통제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DRG 를 설계할 때, 그 행위에 관련한 인력의 인건비를 제일 우선적으로 계산해 넣는다. 즉, 재료대가 깎이면 깎이지 의사, 간호사들의 인력 비용이 깎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미국의 의사들은 DRG를 확대하내 마내 하는 걸로 싸우거나 골치 아파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DRG 를 다빈도 질환의 진료비를 깍아버릴 요령으로 도입하였고, 진료비를 통제할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만일, 미장원 보험이라는 것이 생겨나서 30만원 짜리 파마 비용을 15만원 혹은 10만원으로 후려치면, 미장원 주인들이 가만 있을까? 그런데 의사들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며, 실제 군소리 못하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의 원가 보전율은 70~85% 선이다. 즉, 한 행위를 하는데 들어가는 경비가 100원이라면 이윤 10%를 붙여 110원을 소비자에게 받아야 할텐데, 공단에서는 70원만 인정하고 그것만 준다는 이야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치킨 집에서 닭 한 마리를 튀겨 파는데 들어가는 닭값, 양념값, 인건비, 자리세, 광열비 등등을 따져서 한 마리 원가가 1만원인데, 이걸 7천원에 팔라고 하면 장사 하겠나?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데?

이 원가 보전율이라는 건, 심평원이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인데, 지난 2006년 12월 자료에 과별 평균 원가 보전율이 73.9%라고 명시 되어 있다.





이윤은 커녕 적자가 나는데, 어떻게 의료기관들이 망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일까?

비급여가 살려 주었기 때문이다.

비급여란 병원에서 사용하는 물품이나 의약품, 의료 행위 중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즉, 보험 급여 대상이 아닌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CT나 초음파 검사가 비급여에 해당하였다. 그래서 이런 검사를 받을 때는 환자들이 10만원에서 수십만원이 넘는 돈을 따로 내야 했다.

이런 비급여 항목은 보험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77년 이전의 관행 수가처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비급여 항목이 많으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보장성이란 총 진료비 중 보험이 커버해 주는 비율을 말한다.

현재 보장성 비율 즉, 보장률은 2013년 기준 63% 정도 된다. 즉, 총진료비가 100만원이 나왔다면, 이중 63만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지불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보장률이 100%라면 환자 부담은 제로라는 의미가 된다.

아무튼, 의료기관이 원가 보전율 70% 대에서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비급여 항목이 나머지 30%를 커버하고 적어도 5~10% 정도의 이윤을 챙겨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급여 항목이 별로 없는 과 특히 소아과, 내과, 외과 등등은 손해를 보전하기 어렵고 경영이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 과더러 살아 남으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하든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고, 그걸로 부족한 원가를 채워넣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비급여 항목은 의료기관이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비급여 항목은 보험의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법에 따라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그 항목을 지정한다. 이를 포지티브 리스트라고 하는데, 일일이 항목을 나열하여 지정하고, 그 항목에 들어 있지 않은 모든 비급여는 “임의 비급여”라고 하여 만일 임의 비급여에 해당하는 서비스나 의약품, 재료 등을 환자에게 제공하고 이에 대한 값을 받을 경우, 환수 당하고, 처벌받게 된다.

사방에 규제 폭탄이 깔려 있는 것이다. 자칫 실수하면 한 순간에 훅 간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합법 비급여”로 병원과 산부인과 의원 등의 생명줄 같았던 초음파 검사가 비급여에서 급여로 전환되었다.

비슷한 CT, MRI는 2006년에 급여로 전환되었지만, 초음파는 많이 사용되는 검사이기 때문에 이걸 급여로 전환할 경우, 건보 공단이 지불해야 할 금액이 크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어왔는데, 최근 건강보험 보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2013년부터 부분적으로 급여로 전환되어 왔다.

즉, 2013년 10월에는 4대 중증 질환의 경우 급여화가 결정되었고, 2015년 9월에 4대 중증 질환 의심환자로 확대되었으며, 2016년 10월부터는 이에 더해 임산부, 신생아(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시행되는 초음파)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임산부와 신생아에 대한 초음파를 급여화하면서 임산부는 산전 진찰 7회 까지만 인정하기로 하여 논란이 되었고, 그나마 가격 또한 관행 수가의 50%로 후려치고, 신생아 경천문 초음파의 경우 20만원 정도의 관행 수가를 받던 검사비를 1만5천원으로 10%도 안 되는 가격으로 깎아 버렸다.

당연히 산부인과와 소아과 특히 소아과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은 크게 반발 하였지만, 늘 그렇듯 반발에 그칠 뿐이다. 왜 의사들은 부당한 것을 받아들일까? 아마도 이게 부당한 착취임을 모르고 있거나, 돈 문제는 거론하기는 너무나도 고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곧 초음파 급여화는 더욱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비급여 매출은 더욱 줄고, 원가 보존할 방법은 계속 줄어들고, 결국 적자에 허덕이다가 많은 의원, 병원이 쓰러지게 될 것이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연명한다면, 그건 뭔가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였다는 의미이며, 바꾸어 말하면, 환자들이 그 비급여 항목에 돈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누가 손해일까?

그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진료가 그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길 바랄 뿐이다.



PS : 위의 내용은 개업 하였거나 경험있는 의사들은 대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국민들 즉, 의료 소비자들과 아직 보험 정책, 의료 정책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 전공의들이 읽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늘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매우 잘못된 제도이다. 시작부터 잘못된 제도이며,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잘못되어 왔던 낡은 제도이고, 땜빵으로 일관한 누더기 제도이며, 지난 40년간 누군가의 피를 먹고 자란 제도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를 바꾸어야 하지만, 무능한 정치권과 곤고하게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는 관변 단체, 시민사회단체와 학자들이 있고, 의료계가 깨어나지 않는 한 허망할 뿐이다.


2016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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