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한의학과를 만들어 생존해 보겠다고?





기사에 나온 토론회는 생존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과, 딱하게도 궁지에 처한 사람들 틈 속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의 신세타령과 쉰 소리로만 보여진다.

한편으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어르고 달래려는 복지부의 안타까운 심정도 엿보인다.

냉정하게 말해, 진작에 한의학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극히 제한적 시범으로 전통의학으로써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에서 끝냈어야 하고, 지금처럼 의료법에 당당하게 의료인으로 인정하며, 양산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결코 한의사를 폄훼하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들을 무시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료법의 뿌리는 ‘의사규칙’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한제국 시절인 1900년 1월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시기 의료 환경을 보면, 한방 치료가 대부분이었고, 겨우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이 출연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시 의사는 醫士라고 주로 불렸고, 醫師라고 쓰기도 했다. 의사규칙 역시 醫士規則이라고 표기한다. 조선시대 의원의 신분이 중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아니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제는 의사규칙(醫士規則)을 의사규칙(醫師規則)과 의생규칙(醫生規則)으로 구분하여,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의사규칙에 두고, 한방을 해 온 한의사들은 의생규칙으로 통제하여, 한의사를 의생으로 격하하였다.

당시 조선 사람들의 경제 수준으로는 서양의학을 이용하기 어려워, 내과질환을 중심으로 주로 한의사를 찾아 침이나 뜸, 한약을 통해 치료받는 것이 전부였는데,

일제가 한방을 멸시한 것은, 조선 전통 의학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배경에는 일본의 의사들을 조선에 진출시키기 위한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또, 일제는 침술사(침), 구술사(뜸) 제도를 만들어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침술과 구술을 조선에 들여와 수 천명의 일본인 침술사와 구술사가 활동하게 된다.

해방이 되면서 일제의 침술, 구술 신규 면허 발급은 중단되었고,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던 침술사와 구술사는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건국과 함께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한국 정부가 부산으로 피난간 시절인 1951년 12월, 드디어 의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이 의료법으로 한의사는 의생이라는 이름을 벗고 비로소 한의사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전쟁 통에 의사의 수는 절대적으로 모자랐기에 의생을 한의사로 승격해서라도 이들을 동원하여 의료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할 판이었으므로 이들을 제도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 오늘 날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후 의료법이 제대로 정비된 것은 10년이 훌쩍 지난 1962년인데, 이 당시는 516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혁명 정부가 모든 법을 재정비할 시기였다.

그러나 그 당시도 의사나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진료비도 의사가 마음대로 정해서 받는 시기여서 상대적으로 비싼 의료비와 약값 대신 한의사를 찾아가 침이나 한약을 받아 먹는 것이 전부인 국민들이 상당수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러니, 혁명 정부는 한의사를 제도권에서 빼버릴 수가 없었다. 또 자주 국가를 내세운 혁명 정부가 치료 효과가 있던, 없던 한의학을 무시하거나 멸살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한의과대학을 늘려 주었고, 덩달아 한의사들의 배출은 급격히 늘어가게 된다.

62년 당시 의료법을 보면, 정비되지 않은 각종 직업군 즉, 침사, 구사, 한지의사, 공의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또 한의사의 경우도 과거로부터 면허 없이 활동한 한의사들이 많고, 제대로 학교 시설이 없이 한의학을 교육하는 대학의 학생들도 많아, 이들에게 한의사 시험을 볼 자격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이 있다.

그래서 당시 의료법은 “한의사는 한방 진료만 하라”고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한방 병원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한의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절로 소멸할 것을 예견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즉, 한의학을 전통 의학으로 두고, 희망자가 한방 진료를 원할 때, 이를 굳이 제한할 필요 없이 선택적, 제한적으로 진료받도록 허용하자는 것이 의료법 개정 취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는 의사, 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심지어는 약사도 의사처럼 진단 내리고, 마음대로 처방해주는 것이 용인되었던 시기이고,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격도 없었던 산파를 조산사로 격상해 부르고 분만하도록 법으로 허용하던 시기인데,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 그들이, 약사나 산파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의생”을 대대적으로 육성 보급하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이며, 당시로도 이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후 2003년 즉 DJ 정부 시절, 이른바 한의약육성법 (한의학 육성법이 아니다.)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의 입법 배경에는 사실 비아그라가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의료계는 보험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한의사들은 여전히 비급여 시장에서 유유자적하던 시기를 보냈고, 그러던 차에 1998년 비아그라가 발표되면서 된 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주 수입원은 사실 한약이며, 그 한약의 대부분은 보약 즉, 보신용 약인데, 이는 사실 정력제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력 증강을 위한 보약인 셈인데, 한약으로 얼마나 정력이 증강될지 몰라도, 가격 면이나 효과 면에서 비아그라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한의계로서는 대 위기였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의약육성법은 궁극적으로는 한약을 연구 개발하는데 정부 재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만들어 준 법이며, 이를 통해 비아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편으로 약사법에서는 한의사들이 직접 약을 제조하여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만들어 주어, 한약뿐 아니라 이른바 <약침>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성과 효능이 의심스러운 약물을 주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신약을 만들 때 엄청난 돈을 투입하여 신약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지난한 실험과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직관과 상상 만으로 약을 만들고, 주사제를 만들어 이를 환자에게 먹게 하고 주사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것이 비아그라의 효과 탓이건, 아니면 이젠 의료기관이 충분히 공급되었기 때문이건, 아니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올라가 더 이상 안전성이나 효능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한약이나 한의학 치료 방식에 대한 부정적 사고 때문이건, 이제 한의학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그런데 이 토론회에서 고작 나왔다는 이야기가, 서울대에 한의학과를 만들면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이니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의학에서는 임상이 꽃이며, 어려울 때 일수록 임상실습을 강화하고 전문의 제도를 개선하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 더욱 다양한 한의약 정책을 펼치려면 서울대에 한의학과가 설치돼야 한다"
“서울대에 한의학과를 신설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앞으로 한방의료가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

그것도 대학의 한방병원의 원장이라는 분의 입을 통해, 그 같은 얘기가 나왔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 대학의 수준으로는 교육과 임상이 어렵다는 이야기인가?

서울대에 한의학과를 만드는 것과 다양한 한의약 정책에는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가?
서울대 한의학과가 무슨 매력학과라도 되나?

한의학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일종의 자연 도태와 같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제도의 문제도 아니며, 교육의 문제는 더 더욱 아니다.

한의사들이 무능하거나 모자라서도 아니다.

공룡이 멸종하듯, 시대와 환경과 의식 수준의 변화에 의해 하나의 직종이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의사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한의약 공공보건사업을 더 확대시키고,  고령화 사회를 위한 공공 한방의료도 더 늘린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국고를 낭비하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문제는 한의약이나 한의학이 국민 건강을 위해서 효과가 있느냐, 학문적 가치가 있느냐이지, 전통의학이므로 무조건 명맥을 유지하고, 게다가 세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자는 것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이들을 생존시키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이를 강매하자는 얘기나 다를 것이 없다.

역사가 바뀜에 따라 수 많은 직종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갔다.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 영화 엘리시움에 나오는 만병치료기가 나오면 의사란 직종도 사라질지 모른다.

이 자연스런 법칙에 저항한들 반짝 효과는 볼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대처가 될 수는 없다.
또 이를 강행할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되새겨야 한다.

유일한 대안은, 한의과대학의 신입생을 더 이상 받지 말고, 기존의 한의사들을 재교육시켜 제한적 범위 내에서 의사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이에는 의료계의 동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한의계는 엉뚱한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이 같은 동의와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No comments

Theme images by fpm.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