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23일 "신의료기술평가 통과 이전 일정 의료기관에 한해 예외적으로 진료를 허용하는 제한적 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을 담은 '신의료기술 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24일 개정 공포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현재, 매년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료 행위들이 있는데, 이 행위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쳐 신의료기술로 평가를 획득해야,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할 것인지 아니면 비급여로 남겨 둘 것인지를 정해 환자에게 시행할 수가 있다. (급여로 한다는 것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즉, 신의료기술로 평가 받지 못한 의료행위나, 급여 혹은 비급여로 결정되지 않는 행위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진료비를 받을 경우 이를 “임의 비급여”라고 하며 불법행위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의 표면적 이유는, 대체치료기술이 없는 질환이나 희귀질환의 경우, 의료법에 따른 신의료기술 평가를 인정받지 않았다고 해도, 비급여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행위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며, 안전성은 확인되나 유효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경우 중 대체 치료기술이 없는 것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며 현재 9개 행위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또, 이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모든 의료기관이 아니며 제한된 의료기관 (아마도 상급종합병원 중 신청기관으로 제한할 가능성 높아 보인다)에서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9개 기술에는 관절 불유합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심근경색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당뇨 환자의 하지 허혈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 등 줄기세포 치료 항목이 유난히 많다.

줄기세포 치료는 사실 신의료기술이라기보다는 “신약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줄기세포 치료는 신약을 개발하듯, 동물 실험과 임상 실험 등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줄기세포 치료는 보통의 신약을 개발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약물을 주사 맞거나 약을 먹듯이 인체 실험을 할 수가 어렵다. 이것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관절 불유합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심근경색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당뇨 환자의 줄기세포 치료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료제와 치료 방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환자가 제한되며, 그 환자의 줄기세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폭넓은 실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을 획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 행위의 안전성, 유효성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안전성, 유효성이 담보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는 행위만 허용하는 것은 일견 당위성 있어 보이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당위성이 새로운 의료기술과 약물의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규정을 완화하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의료 기술 개발을 적극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를 더 깊숙이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이는 돈 문제로 귀결된다.

왜냐면 법이 다루는 규제는 신의료기술로 등재되지 않았으면, 급여나 비급여로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이지, 그 행위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의료기술이 있고, 그 기술이 신의료기술로 평가 받지 않았다면, 연구자나 약물을 개발하려는 기관, 회사, 병원 등은 임상 시험 대상자의 동의 하에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제공하거나, 혹은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임상적인 안전성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료 행위의 임상 적용은 법으로 규정된다기 보다는 윤리적인 문제이며, 대개 이런 경우 병원 내에 설치된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 의 승인을 거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규정 개정의 의미는 연구자 (줄기세포를 개발해 상품화하려는 기관, 회사, 병원 등)가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아가며 그 치료 기술의 안전성,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예상할 수 있는 문제는 만약, 부작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같은 행위라고 해도, 임상 시험의 경우 피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받겠다는 동의 하에 진행하게 되므로, 사실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도덕적 책임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성 유효성이 확립되지 못한, 그래서 신의료기술로 평가되지 못한 행위를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고 행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하고 이를 시행하였다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과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신의료기술 치료 환자의 예상치 못한 상황 발생 등 불안감에 대비하기 위해 별도 사보험 가입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라며, 국고 4억5천만원을 들여 사보험에 가입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생각해 보려면, 과연 이 조치의 수혜자는 누가 될지 생각해 보는 것이 빠르다.

이 신의료기술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기기 회사, 의약품이나 줄기세포와 같은 신약물의 개발, 제조 회사가 우선 수혜자가 될 것이다.

정부가 피험자를 모아주고, 피험자에 대한 임상시험비용 역시 낼 필요가 없고, 만약의 사태에 대해 그 피험자에 대한 보험까지 지원해 주니, 이들 기관, 회사들로써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일 것이다.

또, 이 의료기술을 시행하고 비급여로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특정 병원들이 수혜자가 된다.
요즘 대학병원, 대형병원들도 어렵다는데, 이 규정 개정이 조금이나마 혜택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이 같은 줄기세포 개발에 따른 지분을 요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의 임상을 적용하여 새로운 의료기술을 창출해 내게 될 의사도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이 치료 방법이 개발된다면, 이에 대한 학문적 업적은 물론이고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대체 치료 방법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했을 환자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임상 시험으로 진행되었다면 공짜로 받았을 치료를 정부가 의료기술로 간주해 돈을 내도록 한 것이 못 마땅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안전성, 유효성이 확보되어 새로운 의료기술로 개발된다면, 잠재적 환자들 역시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실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옆집 아저씨도 좋은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의료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선도할 경우, 의료산업화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바램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산업 분야에 정책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비하면 사실 이 정도 정부 투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정부는 복권 사는 심정으로 “약간의 돈”을 베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렇게 길을 열어줘서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면 대박이고, 안 되도 그만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럼, 다 만족하니, 이 규정 개정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정부가 가진 고유의 정책 권한으로 소정(?)의 국고를 투입하여 새로운 기술기반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데, 4대강 사업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엄청난 특혜를 주자는 것도 아니니 일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특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특혜의 정도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비교하여, 사회적 실익이 더 큰 경우에는 그 특혜를 묵인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이 가치 기준에서 보자면, 신의료기술이 아닌 즉, 유효성,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 줄기세포 치료의 사회적 실익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만일 규제 완화라는 특혜와, 돈을 받고 임상 시험할 수 있다는 특혜와, 국고를 지원해서 보험료를 내준다는 특혜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치료의 유효성을 결국 검증하지 못하거나,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해 치료 방법으로 쓸 수 없다면, 

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느 국가든 신약 개발에 국고를 함부로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신약 개발 뿐 아니라 그 어떤 새로운 창조적 기술에도 국고를 함부로 남용하고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를 개발코자 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최소한의 기술적 가치를 담보(guarantee )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혜를 주어도, 그 특혜에 비해 미래의 사회적 실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때에 특혜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특혜를 주는 것은 “먹튀”를 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정부의 조급증과 부조리, 일부의 사기 행각에 밀려 국고가 그런 식으로 낭비되고, 특혜를 받아 자기의 잇속만 챙기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다.

그럼에도 이 같은 고질적 관행이 바뀌지 않는 것은,

특혜의 정도가 사회적 실익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고 반복적인 질문을 던지는 공무원이 부족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규정 개정의 적용도 이 같은 숙고와 고민 속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2014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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