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이다!
- I -
여인네가 우물가, 빨래터에서 들은 근거 없는 소문은 금방 마을에 퍼지고, 그 소문을 놓고 요리저리 회를 친다. 그래 봤자 지레짐작이지만 청자(聽者)는 이미 소문을 맹신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난히 빨래터 담화(談話) 즉 뒷담화가 심하고, 소문에 예민하다.
왜일까?
아마도 반만년의 세월 동안 워낙 난리를 많이 겪었던 탓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던 빠른 정보 획득이 빠른 피난을 가져 올 수 있는 구명(求命)의 유일한 도구라고 체험(體驗)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DNA에는 “얇은 귀”, “뒷담화”가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II -
여러분은 지금 그 직업을 어떻게 결정했는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과 포부에 따라서?
고등학교 성적에 따라, 성적 맞춤형으로 대학과 전공을 정해서?
미래 소득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예측 하에?
개념 없이 인생이란 개똥 바닥을 구르다가?
사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느냐 하는 직업 선택의 기준은 학교에서 이미 교육받았다.
다만,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지.
중학교 교과서를 통해서 본 직업 선택의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아(自我) 실현을 할 수 있는가?
즉,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자아 실현의 도구가 될 수 없는 직업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그 직업에 대한 애착, 취미와 흥미, 적성이 중요하다.
둘째,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가?
즉, 그 직업을 통해 Socialize(사회화) 할 수 있느냐? 사람과 어울리고, 직장이나 직업 사회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찾고, 사회에 기여하고, 그래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인가 하는 것이다.
셋째,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는가?
즉, 그 직업을 통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금전적 소득과 복지를 제공받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사실 중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건,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있는 내용은 “인간의 속성”에 대한 내용이며, 그것을 맘대로 각색, 응용해서 만든 <직업의 선택 기준>이다.
아무튼, 인간의 속성에는 사회 참여의 속성과 자아 실현의 속성이 있으므로 이 둘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적당한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겠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나?
- III -
전설(Legend)과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말도 안 되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근성”하나만으로 자기의 직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바로 그 전설 말이다.
그 전설의 인물들은 소방관, 경찰, 상사(商社) 맨들, 열사(熱沙)의 나라에 간 해외건설업체의 근로자들 등이다.
한 때 그 전설의 직업에 의사와 기자도 있었다.
일 주일 내내 샤워 한 번 못하고 환자 밥을 대신 먹어가면서 중환자실에서 앰부를 짜면서 100 파인트가 넘는 수혈을 해가며 환자를 살려보겠다고 밤을 새워가는 젊은 전공의.
그래 봐야 대졸 초급 직장인 급여의 절반도 받지 못했다.
어깨에 가방 하나 둘러메고, 경찰서 당직실과 유치장을 오가며 “특종”하나 해 보겠다며 밤을 낮처럼 새우고도 또 사건 현장을 달려가는 신참이나, 거침없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겁 없이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은 고참 기자들도 있었다.
- IV -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비현실적이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요즘이다. 그들에게 지금은…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안락하고, 인생을 좀 더 즐기며,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고 주요 쟁점인 시대이다.
직장은 내 머리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오는 곳이지 그곳에서 사회 참여를 통해 무언가를 획득한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 끔찍한 일일 뿐이다.
자아 실현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직업을 통하거나 직장,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자아 실현 따위를 위해 뭘 더 해야 한다는 건 멍청한 짓일 뿐이다.
직업을 통한 소득은 많을수록 좋고, 직업 환경은 무조건 경쟁사보다 좋아야 하고, 나쁘면 옮기면 된다.
전설을 개뿔. 나는 소시민이다. 적당히 표 안 나게 일하고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 된다. 나설 필요도 없고 무리할 필요는 더 더욱 없으며 세상을 책임질 이유도 없다.
내 관심은 복권과 보너스와 주말에 가족들과 어디 갈까 하는 것과 언제 강남에 내 집 마련할 수 있느냐 뿐이다.
사회가 제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난 느긋하고 천천히 가면 된다. 세상과 소문엔 관심 없고, 내가 발끈할 때는 내 밥그릇 건드릴 때 뿐이다.
- V -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크기는 광고 수입과 비례한다.
퇴출 기자에게 새로운 활로이고, 이류 방송국에겐 떠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거기에 정의와 배려심과 팩트는 없다.
기자 짓은 먹고 살 방편일 뿐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이런 ‘기레기’ 들과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얇은 귀, 뒷담화 DNA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코 앞에 둔 선거로 사건의 본질은 사라진 체 좌우 진영 모두에게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기자 윤리, 기자 정신 따위는 오간 곳이 없다.
물론 기자 전체가 그렇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레기들도 할 말이 있다.
나에게 ‘근성’과 프로 정신(Professionalism)을 요구하는 너는 무엇이냐? 과연 너는 그러하냐?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어떠한가?
그런 근성을 가진 과거 전설들과 유사한가?
프로 정신, 직업 윤리로 무장되어 있는가?
나는 프로인가?
2014년 4월 29일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