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진정 부끄럽다.
전화번호 서비스 114에 전화를 걸면, 언젠가부터 들리는 소리이다.
녹음이 아니라 상담원이 라이브로 들려주는 소리이다.
처음엔 당혹스럽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미지의 여인이 내뱉는 “사랑 고백”이다.
...그녀는 얼마나 이 말이 하기 싫었을까.
톨게이트 요금을 정산하고 차를 출발시키려고 하면, 들리는 목소리도 있다.
“고객님. 안전 운전하세요.”
...그녀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고객님들의 안전 운전을 빌어주었을까.
이 뿐이 아니다. 어지간한 기업 제품 A/S 센터는 물론 주민센터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 왜 영어로 센터라고 하는지 희안하다, 동사무소가 어때서…)나 어지간한 관공서의 대민창구 직원들은 대부분 ‘과도하게’ 친절하다.
사실, 친절하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뭐든 과도한 건 불편하다.
그래도 관공서 공무원이 고압적이거나 틱틱거리거나 쌀쌀맞게 구는 것 보다 훨씬 좋다.
공무원은 어찌 보면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servant라고 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낮춘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기 좋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국가 공무원들이 고압적인 민원인에게 눌려 저자세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특히 치안을 담당해야 할 경찰 공무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의 경우 더욱 더 그러하다.
적어도 병원에서 지켜보는 경찰 공무원이나 소방공무원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환자를 이송하는 소방공무원을 자기 심부름 꾼이나 자기네 집 기사 쯤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게다가, 가슴에 경찰 마크를 달고, 제복을 입고, 옆구리에 무기를 찬 경찰에게 권위나 두려움이나 위압감 따위는 없다.
그들의 어떤 복무 규정, 규칙이 그들을 그리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섣불리 행패 부리는 국민에게 손을 댔다가 자신의 신분 상 안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가 그들을 무력한 솜방망이로 만들어 버렸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구타하거나 집기를 집어던져도 그건 온전히 그들만의 문제일 뿐 절대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다. 명백한 직무유기이고 방임임에 분명한데 현실은 그러하다.
가장 중요한 국가 공권력이 땅에 떨어져 오만가지 사람들의 더러운 발에 짖밟히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병원 야간 응급실은 무법 천지로 바뀌어 병원 창구의 접수직원은 마음껏 하대해도 좋은 신분이 되어버렸고, 울화통이 터지면, 의사건 간호사건 밀치고 때리고 화풀이해도 좋은 상대가 되어버렸다.
‘니 까짓게 뭔데?’
‘의사면 다야?’
홧김에, 술김에 의사 멱살 잡고 욕 한바가지 퍼 붓는 건, 행패가 아니라 권위에 도전하여 이를 꺾어 버린 또 다른 술자리의 호기로운 영웅담으로 전락해 버렸다.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니, 응급실 환자나 보호자들의 난동과 행패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버린 것이다.
방법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방법은 충분히 있다.
다만, 병원은 비용 문제로 회피하고, 경찰은 보신을 위해 못 본 척하고, 정부는 시민 단체의 눈을 의식해 외면하고, 시민사회단체는 이 상황을 웃으며 즐기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밤 지새며 응급실을 지키는 젊은 의사들에게 무어라 말 할 수 있을까?
...부끄럽다. 부끄럽다. 말 할 수 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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