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임상의의 고백
어느 임상의의 고백
종양내과, 특히 유방암을 전공하시는 임상의인 이수현 선생님 글 "언제까지 소견서를 쓸 것인가"에는 임상의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다양한 갈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 임상의가 의료비 증가를 우려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언젠가부터 뇌리 속에 “의료비 증가를 우려해야 한다”는 모범생적인 프레임을 집어넣고 진료에 임하고 있는 불행한 시대에 살게 되었습니다.의료비 증가는 임상의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 보험 정책 담당자나 보험자 즉 건보공단이 걱정할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속상해 해야 하는 것.
우리나라는 언젠가부터 검사나 치료가 환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진료 즉, 진단과 치료 행위는 의사의 고유 권리이고 의권이며 설령 환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진료>를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환자는 아픈 사람이지 의학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임상의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잘못된 사회적 관습 때문입니다.
“내가 보험료 냈는데, 내가 이 검사, 이 치료 해달라는게 무슨 잘못이냐. 왜 안 해주냐!”라는 인식이 국민들 마음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일일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피로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암환자는 진료비의 5%를 본인이 부담합니다. 나머지 95%는 건보 재정에서 나옵니다. 물론 그 95% 중에는 그 환자나 가족이 낸 보험료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대로 해달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옳지 않습니다.
검사와 치료는 온전히 의학적 판단에서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도덕적 해이를 걱정할 정도로 의사와 병원이 이를 방치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의료소비 통제는 공급자의 몫이 아닙니다. 보험자인 건보공단과 정부가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국민 교육과 캠페인, 인식 확산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 소비를 억제해야 하는 것인지,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사, 병원이 이를 걱정하고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건보공단과 정부가 이를 방기하는 것은, 의사를 압박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게으른 방법을 쓰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악역을 하지 않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료량 증가의 책임을 자꾸 의사들에게 덮어 씌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째, 임의비급여라는 건,
냉정하게 따지면, 사적 계약관계입니다. 수요자와 공급자의 자의적 판단과 계약하에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이는 건강보험재정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처벌하려고 무리하게 법적용을 하니까 자꾸 부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최근 법원이 연이어 의료계의 손을 들어 주는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건보법은 건강보험에의 테두리 안에서만 단속하면 됩니다.
비급여는 건보와 무관하며 민법상 계약인데, 사적 계약 관계에 속하는 행위를 건보법 안에서 규제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건보는 지금 모든 의료행위, 의료 시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항을 다 컨트롤하고 싶어 합니다. 지극히 오만이며 월권 행위입니다.
이 책임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심평원, 건보공단이 져야 합니다. 물론 행정부인 보건복지부도 그 책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2013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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