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속내를 드러내시라.
어제 정규재 TV를 통해 읽게 된 복거일의 한경 기고문을 보고 당혹스럽고 충격을 받았다.
우국충정으로 똘똘 뭉쳐 쓴 것처럼 보이지만, 현학적 가식을 빼고 나면, “국정 운영 능력이 안 되니 내려가라.”이다.
하야를 주장하는 건, 야당, 진보적 사회시민단체와 좌파로 분류되는 언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사면을 전제 조건으로 하야 하라는 건데, 본인 스스로도 그게 어렵다고 쓰고 있다.
쓸데없이 미국 예를 들었지만, 미국은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그대로 수행하지만, 우리는 총리가 대행을 하고 대통령 선거로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미국은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바로 임명되고 그 즉시 대통령의 전권을 휘두를 수 있어 사면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면을 미리 약속받고 하야한다는 이야기인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혹은 하야 하겠다고만 하면, 자신은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고 있으니, 약속을 받아주겠다는 것인가? 아리송하다.
더 큰 충격은 마치 대통령을 한정치산자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 중에 “국정에서 궁극적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이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니, 시민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온전한 인격을 갖추지 못하는 증거가 계속 나와 시민들이 당황하니 하야하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지금 우리나라 군 통수권자가 한정치산자와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 진보 단체와 좌파 언론도 이런 망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이상한 논리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묵은 때를 벗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랬을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후 이승만 1인 독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여 제 2 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새 헌법에 따라 정무적 실권을 가진 장면 국무총리와 국가 원수인 윤보선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 둘은 서로 딴죽을 걸어 상대를 넘어트리며 누구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며, 지리멸렬한 국정 운영을 했고, 결국 군사 혁명의 빌미를 주어, 2 공화국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묵은 때를 벗고 새 출발을 했다고?
또, 북한의 핵무장은 원래 중국의 세계 전략에서 나왔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듣도 보도 못한 사실이다.
사실은 이렇다.
중공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김일성은 중공에 핵무기 개발을 지원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당시 남한에는 미군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고, 김일성은 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예민해 있었다.
김일성이 군부대의 대부분을 휴전선 인근에 전진배치한 이유도 미군이 휴전선 부근에는 핵을 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왜냐면, 휴전선 부근에는 한국군과 미군도 있기 때문이다.
중공은 김일성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북한 따위가 핵을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 논리이며, 결국 김일성은 소련에 애원하여 영변에 핵발전소를 짓게 된다. 소련이 북한에 발전소를 지어 주면서 내건 조건이 IAEA, NPT 가입이었다. (관련 기사)
즉, 북한에 핵기술을 전수한 것은 소련이지, 중공이 아니다.(핵무기 개발 기술을 전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두 나라가 북한이 동맹국이므로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턱 밑에 있는 제정신 아닌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게 핵무기를 가지라고 권장한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고립주의가 강하며, 미국의 고립주의로 우리나라가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희안하다.
미국 고립주의는 건국 초기의 이야기이고, 이 역시 유럽에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일 뿐이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영국으로부터 막 독립한 상태였다. 그러니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을 그만 두면서 유럽에 신경쓰지 말라고 할만한 이야기였다. 당시 미국은 세계의 변방 국가였을 뿐이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은 폐기되었다.
미국은 세계 전역에 최소 30개 나라 이상에 자신의 군사 기지를 설치해 둔 나라이다. 오대양에 핵항모전단을 깔아 놓고 언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고립주의가 강하다고?
트럼프가 신 고립주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미국 전역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깨갱했다.
미국이 고립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화폐가 전세계 기축화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국 달러의 화폐 가치를 지켜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정세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중동에 더 많이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는 건, 원유 거래가 미국 달러로만 결제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미국 달러를 보유하려고 애쓰는 이유도 달러가 있어야 원유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시뇨리지 효과를 통해 매년 최대 10억불 이상을 앉아서 벌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상황에 개입하여 국제 경찰 노릇을 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관련 블로그 : 시리아 내전의 진짜 이유? -파이프 라인 전쟁- )
또, 미국은 일본은 중시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둔감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일본을 중시하는 정책을 줄곧 펴 온 이유는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부흥 했는지의 과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전범 국가인 일본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소련, 중공이 극렬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었다. 일본 입장에서 미국은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평생 갚아야 하는 은인이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옆에 끼고 사는 애첩과도 같은 존재이다.
지금 일본이 미국에게 어떻게 조아리고 입안의 혀처럼 구는지 봐야 한다. 미국이 일본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은 복거일 당신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말 잘 안 듣는 배다른 남동생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형이기 때문에 챙겨야 하고 보살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의회는 국방 예산을 짤 때, 한국에 대한 예산을 우선 배려한다. 좋아서 한국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의무감 때문인 것이다.
미국이 보는 남한은 마치 배다른 어린 형제가 다 찢어진 옷에, 낡은 고무신을 신고 더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닦이고, 먹이고, 입혀서 가르쳐 놓았더니, 어느 새 쑥쑥 자라 인기 좀 생겼다고 거드름피는 반항하는 고 2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일 년만 고생해서 좋은 대학 가면 좋을텐데, 요게 좀 살만해졌다고 꾀 피우고 말 안 듯고, 딴짓하는 딱 그 고 2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은 사촌 형 쯤 되고, 프랑스는 동네 아는 동생 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게 친 형제 같은 동맹국은 한국 뿐이다.
아무리 아껴도 애첩은 버려도, 형제는 밉다고 쉽게 버리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걸 체감적으로 안 김영삼, 노무현 등등 한국의 대통령들이 딱 고 2 수준으로 미국 가서 함부로 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내심을 너무 믿어서도 안된다. 아무리 형제라도 하는 꼬라지가 개차반이면 역시 버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안 보면 그만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둔감하다”고 하지만,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미국에게 중요하고 말고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오키나와 괌 기지를 가지고 있어, 한국은 없어도 그만이다. 언제적 지정학적 얘기인가. 요즘 무기가 어떤데...
아무튼, 이 분이 왜, 대통령 하야를 이리도 간절하게 바라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단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일까?
정규재 주필,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이 분들 왜 이러시나…
그냥 속내를 내놓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라.
2016년 11월 4일
[사회평론가 복거일 특별기고]
'도덕적 권위'의 회복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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