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식인인가?







지식인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식(knowledge)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인은 남들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이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자가 지식인이었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책은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책을 통해 지식이 전수되고 지식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 지식인들은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 책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글을 배우는 것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식을 갖는 것, 즉 현상에 대해 깨우치는 것을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활자가 만들어지고 인쇄술이 발달하여, 책이 대량 유통되면서 지식인의 위치는 마치, 총의 발명으로 위협받은 기사(knight) 그룹과 같아졌다.

그러나 기사가 맥없이 사라진 것과 달리 지식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그들만의 옹벽을 쌓아 아무나 지식 계층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읽고 쓸 수 있으며, 정보에 접할 수 있는 지금도, 학위, 면허, 자격증, 졸업장, 고시 등으로 전문 지식에 대한 진입 장벽을 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이 지식을 독점하려는 것은 지식을 갖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이 돈과 권력과 우월한 신분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새로운 세기를 예측하며 쓴 글에서 ‘현대 사회의 지식인의 정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 망이 적극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원래 정보를 확산하고 유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보를 분산 배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터넷의 시초는 미국 국방부가 가진 군사 정보를 한 곳에 둘 경우, 소련의 핵 공격에 의해 망실될 것을 우려해 동일한 정보를 미국 전역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망(network)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이름은 ARPANet(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ARPA)이다. 이 망은 UCLA, 스탠포드 연구소(SRI), 유타 대학 등 대학이 주도하여 만들었고, 이 네트워크와 미국과학재단이 구축한 NSFnet이 ARPAnet과 통합되었는데,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ARPAnet이 그 유효성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쉽게 해킹에 노출되었다.


ARPANet의 개발 과정



심지어 소련의 사주를 받아 해외에서도 이 망을 해킹하여 국방부 정보를 빼내는 일(1980년 독일의 한 시민이 KBG를 대신해 미국 국방부, 대학 등을 해킹한 일이 있었다. 이를 알아챈 UC벅클리의 컴퓨터 운영자 클리포드 스톨이 후에 ‘뻐꾸기 알’이라는 책을 써 이 사건이 유명해졌다.)이 생겼는데, 사실 대부분 해킹은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정도의 낮은 보안 개념과 대학생들의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방부는 ARPANet을 아예 교육 기관에 넘기고, 별도의 망을 구축하게 된다.

망의 권한을 넘겨받은 이후에도 해킹의 시도는 끊임이 없었고, 결국 대학, 연구소 들은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의 서버 일부를 내주며 누구나 접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시작했다.

즉, 가진 정보 일부를 공개할테니, 거기까지만 들어오라는 것이다. 특별히 로그인 하지 않고 아무나 관계없이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anonymous site라고 불렀다. 이, anonymous site가 지금 인터넷으로 불리고 쓰이는, 정보 제공, 광고, 홍보, 상거래 사이트 등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서버들이 UNIX라는 운영체제로 운영되었고, Text를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 받았는데, 제네바와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학 연구소(원래 명칭은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한 연구원이 분자식이나 그림을 보다 손쉽게 유럽 다른 곳에 있는 연구자에게 보내기 위한 방편으로 만든 것이 월드와이드 웹 즉, WWW이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원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익스플로러, 구글 크롬, 사파리 등에서 펼쳐지는 것을 인터넷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초기 인터넷은 고퍼(gopher), 텔넷(Telnet), FTP, Usenet 등이 인터넷 형태이며,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형태이었다.


Telnet



인터넷은 궁극적으로 정보를 유통시키기 때문에, 정보유통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고, 지식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데, 유통되는 정보의 양뿐 아니라, 생산 속도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도 빠르다.

2016년 현재, 매일 매 1 분마다 35만 개의 트위터가 만들어지고,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는 수만 2백5십만 개이다. 2013년 기준 매 분, 3백만 개의 페이스 북 글이 만들어졌는데, 2011년에는 65만 개에 불과했다. 현재 매분 4백만 개의 페이스 북 포스팅에 ‘좋아요’가 눌러진다. 실제 읽혀지는 포스팅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유튜브에는 매 분 400 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올라오고, 네플릭스를 통해 매분 8만7천 시간 분량의 컨텐츠가 공유되고 있다.






시리(siri)는 매 분 10만 개의 답을 하며, 아마존은 22만개의 상품을 팔고, 미국인은 매분 1천8백만 메가 바이트의 wifi 를 쓰며, 3백6십만개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구글에서 검색되는 수는 매분 4백만 개이고, 2015년, 하루에 전송되는 메일의 갯수는 최소 2천억 개였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지고 전송되는 정보의 양은 해마다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어떤 정보는 독점 적이지만, 그 경계는 매우 옅어져가고 있으며, 심지어 학위, 면허와 같은 전통적 방식의 지식 울타리는 허물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98년 정의 했던 현대 사회의 지식인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이를 통합 분석하여 새로운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즉, 새로운 개념의 지식인은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보의 진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각각의 정보의 연결 고리를 알아야 하며, 그렇게 통합된 정보를 분석하여 새로운 가치있는 정보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원초적으로 말하자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글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하고, 더불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글의 참,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기초 소양과 그와 관련한 폭 넓은 지식(이 지식은 마찬가지의 알고리즘을 갖는다)을 가져야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면, 지식인이 될 수 없다.
또, 그 글이나 정보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다면 지식인이 될 수 없다.
그 정보의 과거나 그 정보와 관련한 이웃 정보(즉, collateral information)를 파악할 수 없다면, 역시 지식인이 되기 어렵다. 단편적 지식만 가질 뿐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연결 고리를 모르고, 정보를 분석할 능력이 없어도 지식인이 되기 어렵다.
정보를 사유(cogitation)하여, 새로운 가치있는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역시 지식인이 아니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지식인, 지식 계층이라고 보았던 전문 직업군에 속하는 이들을 모두 지식인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문자의 최면에 빠져,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해내는 능력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광우병 사태나 작금의 최순실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매체의 유사한 정보가 반복되면서 어느 새 그것이 진실인 양 세뇌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식인, 논객, 학자라고 불렀던 많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 행태를 보였고, 실망을 주고 있다. 만일 이런 사태가 없었다면, 그들은 계속 지식인인양 그 지위를 누리며 군중을 호도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보의 습득 만으로 그것이 자신의 지식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지식 수준이 낮을 수록 이런 현상을 더 심하다.

이 역시 정보가 폭주하며 유사한 정보에 반복적으로 접촉하면서 생기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직접 접하고 경험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거나 지금이나 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습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경험일 뿐이며, 자신의 직접 경험이 아니다.

간접경험으로 얻어진 정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는,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유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정보를 만들어 낼 때이다.

즉, 아프리카에 가 보지 않은 이가 아프리카에 대해 논하려면, 아프리카에 간 이의 간접경험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할 수 있을 때인 것이다.

아프리카에 간 이의 경험을 수없이 들었다고 해서, 아프리카에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간 더 많은 이들의 정보를 통합하고, 아프리카에 대한 다른 연결 정보를 모아 아프리카에 간 이도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만들 수는 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 직접 간 것은 아니므로, 아프리카에 갔다고 해서는 안 되며, 아프리카에 가 보지 못한 것이 창피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 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폭주하는 정보량과 진화하는 정보 전달 방식은 독점적이었던 지식 울타리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전문 지식인 그룹에 속하며, 마치 과거에 책을 보면 위험하다고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책을 보면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 독점이 깨어지는 것이 싫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 지식인의 정의와 개념이 보편화된다면, 학교 교육 역시 달라져야 한다.

지금 교육받고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때, 이들이 정보화 수단에서 멀어져 있을 가능성은 없다. 집이나 직장, 실내나 실외에서 늘 정보화 수단과 같이 할 것이므로, 주입식 교육을 배제하고,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가르쳐야 한다.

정보를 찾는 방법과 정보의 연결 고리를 찾아 이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 자신에게 던져진 정보의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초 소양을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 같은 교육이 수행되지 않으면, 이들은 결국 과거처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에 의해 종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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