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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건강보험의 진짜 문제








두 가지 경우로 예를 들어 보자,

첫째는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이다. 비행기는 예약이 가득 찰 정도로 만원이었는데, A 씨는 비행기 표 다섯 장을 사서, 편안하게 누워서 가겠다고 우겼다.

둘째는 서울에서 천안가는 전철이다. 출근 시간이라 앉을 자리는커녕 빽빽하게 서서 가야 하는데, B 씨는 전철표를 다섯 장 산 다음, 그 자리에 누워서 가겠다고 우겼다.

우리가 사용하거나 소비하는 것들을 “재화”라고 하고, 교통이나 금융, 의료 등을 “서비스”라고 부르는데, 이 중 어떤 것은 사적 재화/서비스이며, 어떤 것은 공적 재화/서비스(혹은 공공재/공공서비스)이다.

사적 재화/서비스와 공적 재화/서비스 즉, 사유재와 공공재를 나누는 첫 번째 기준은 누군가 그 재화 혹은 서비스를 쓸 때, 다른 이가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즉 경합성이다.

A 씨가 5장의 비행기 표를 사서, 다른 4명이 그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면, 높은 경합성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통 수단이라는 공공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또, 정말 급하지만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이들로부터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A씨가 민간 항공사의 좌석을 독점하겠다고 할 때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민간 항공사의 티켓은 경합성이 높은 사적 재화이기 때문이다.

그럼 천안으로 가는 B 씨의 경우는 어떨까?

A 씨처럼 도덕적 비난을 받는 것에 그칠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다.

천안 가는 전철표를 다섯 장 샀다고 해서, 5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 좌석의 원래 가치는 A 씨가 낸 전철표 값보다 큰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서울-천안간 요금은 2천 원이 약간 넘는데, 이 정도 비용으로 서울에서 천안까지 갈 수 있는 건, 정부의 세금이 투입된 보조금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며, 실제로는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공공 재원이 투입된 시설을 공공시설(공공재) 혹은 공공 서비스라고 한다.








따라서 천안으로 가는 전철에서 "내 돈 내고 내가 내 맘대로 누워서 가겠다"는 건, 실질적으론 부당 이득을 취하겠다는 것이므로 통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공공시설/서비스는 내가 쓰면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는 경합성이 낮거나 없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전철에 좌석보다 서서 가는 공간이 많은 이유는 최대한 경합성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흔히 "내 돈 내고 내가 원하는 진료를 내 맘대로 받는 건 내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이에 동화되어 같은 생각을 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공공재가 아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는 경합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 씨가 C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다면, B 씨는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없다.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받으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럼, 경합성이 없는 것이니 공공재가 아니냐.

그렇다. 맞는 말이다.
게다가 실제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모든 의사는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그 서비스 가격은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설계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자들은 유명하다는 의사에게 몰리고, 소위 메이저 병원이라 불리는 대형 병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이를 통제하여 경합하지 않도록 할 기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의료 근간을 이루는 국민건강보험을 공공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가 이처럼 경합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의료전달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환자가 언제든지 원하는 의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의사는 찾아 온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가격 배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보험자와 정부는 오로지 환자의 의료기관 접근성 강화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의료 소비를 통제할 수 있는 기전이 없기 때문이다.

등등등, 이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럼 다시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의료는 경합성이 높으므로 사유재라는 말인가?
사유재라면, <내 돈 내고 내 맘대로 내가 진료받겠다>는 것이 무슨 문제이냐?

원래 건강보험은 공공재로 설계 되었지만, 설계가 잘못되는 바람에 경합하게 되므로, 공공성을 잃어버린 것일 뿐, 사유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내 돈 내고 진료받는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왜냐면, <나>는 돈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더 많은 비용이 건강보험 공단에서 지불되고 있으며,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낸 돈이기 때문이다. 천안으로 가는 전철 요금과 같다. 다만, 국세로 보존하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낸 사회보험(건강보험)료로 보존되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즉 <내>가 내 맘대로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남의 돈을 마구 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남>의 돈을 마구 쓰면, <남>은 그만큼 그 돈을 쓸 수가 없다. 즉, 재정의 경합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첫째, 건강보험은 대단히 설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높은 경합성과 높은 가격 배제성을 가진 마치 공공 의료보험인양 가면을 쓴 사적 보험서비스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건강보험은 일반 민간의료보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국가가 설립한 공단 형태의 보험자라는 점과 전국민을 상대로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내도록 하면서, 단 하나의 보험사(보험공단)가 독점하고 있으며, 모든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강제로 보험 가입자를 진료하도록 하면서도, 가격을 자기들 마음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모든 불평등성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합성을 배제하지도 못한다.

때문에, 의료소비자들은 실망하고, 공급자의 숨통은 조여드는 것이다.

둘째, 잘못된 설계로 생긴 문제의 책임을 의료 공급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완벽한 공공보험이 아니면서도 공공보험의 흉내를 냄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공급자의 목을 졸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공공보험 혹은 공공의료서비스를 만들어야 해결되는 것이다.

공공의료 서비스는 완벽하게 경합성이 없어야 하며, 배제성이 없어야 한다.

경합성이 없는 공공의료 서비스는 의료 공급자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를 컨트롤하여야 가능해진다.

즉, 전달체계를 통해서만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강제해야 하고, 의료 공급이 아니라 의료 소비를 통제해야 하며, 무임승차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공공의료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외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점에 있다. 즉, 의료소비를 컨트롤 할 역량과 배짱이 없는 것이다. 일부 진보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무상 의료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의료 소비의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만한 의사 목만 쥐고 흔들어 대는 것이다.

사실 배짱이 없기는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의사는, <내 돈 내고 내 맘대로> 진료받겠다는 환자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하고, 이를 바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소비자의 위세가 너무 세고, 의사는 너무 빈약해졌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실이다.



2016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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