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대처하는 자세
나이를 먹어갈수록, 달달한 러브 스토리나, 눈물 쏙 빼는 멜로 드라마 류의 영화보다는, 재난 영화가 더 좋아진다.
그건, 감독이 재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어떤 단계로 펼쳐갈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사실은 그 전개되어지는 재난 상황 마다, 또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 중에서도, 자연 재해와 같은 재난이나 전쟁과 같은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더 궁금하고 더 흥미롭다.
물론 인간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강력한 무기와 힘을 가진 '외계인'에 관한 영화 역시 흥미롭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 막히는 재난'은 <좀비 영화>이다.
사실 나는 좀비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좀 수준 낮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대부분의 좀비 영화는 B급 영화로 분류된다.
좀비 영화가 좋다고 해서 흉물스럽고 기괴한 좀비에 흥미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좀비의 매력(?)은 그 자체는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생할 방법도 없고, 감정도 없으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이나 다리를 자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심장을 관통 당해도 여전히 움직이고, 공격할 수 있다.
게다가 좀비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신선한 사람을 잡아 먹는 것 뿐이다.
세상에 이런 무지막지한 절대적인 괴물이 또 있을까?
더구나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집단으로 움직인다.
영화 속에 '좋은 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밀려오는 좀비를 향해 계속해서 총을 쏘지만, 이미 사람들은 공포로 질려버린 상태이고, 좀비들은 무감각하게 다가 온다.
모든 재난 영화는 사실 <공포>를 관객에게 파는 것이다.
어떤 감독이 관객에게 더 크고, 더 절대적이고, 더 치밀하게 공포를 팔 수 있느냐가 그 영화의 성공 여부라고 할 수도 있다.
관객에게 예측되어지는 일말의 생존 가능성은 반대로 영화를 시시하게 만든다.
처절한 공포를 느낄수록, 그 가운데에서 관객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한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살아남았음에 대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나 현실에서 경험하며 반복되어지는 공포는 마치 학습 효과처럼 각인되어 실생활에서는 마치 조건 반사와 같은 구매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치, 허기와 식욕이 음식에 대한 강력한 구매 충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공포 유발은 소비를 촉진시키는 강력한 마케팅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방접종은 질병에 대한 공포 유발 때문이며, 상해 보험이나 암보험 역시 공포 해방을 파는 상품이다.
앞집 옆집, 건너집이 보는 신문은 나도 봐야 하고, 그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엔 우리 아이도 보내야 하며, 그 집 부모님들이 우리나라 5대 메이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나도 우리 부모를 그것에 보내 진료 받도록 하는 것 모두,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진다는 불안을 떨칠 수 있게 하고, 공포에서 해소될 뿐 아니라, 안도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 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또,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분명 더 건강에 좋은지 알면서도, 남들처럼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 물을 마셔야 한다는 강박감 역시 공포 마케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독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재난, 공포가 잘 먹히는 건,
그래서, 유난히 무언가에 우르르 몰리고, 따라하기 좋아하며, 전기 주전자 처럼 순식간에 부르르 끓어 오르는 건,
영화에서의 재난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큰 현실적 재난의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 386 세대(30년대 생, 80대 연령, 60번대 학번)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1.4 후퇴, 대한민국 건국과 4.19, 5.16 혁명 등을 몸소 겪은 세대들이다.
60 대들은 베트남 전쟁과 유신을, 50 대들은 학생 운동과 최류탄, IMF를 겪은 세대들이다. 또 그 이후의 세대라고 해서,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났던 것도 아니다.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절대절명의 재난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재난에 대한 루머에 곧 잘 반응하며 수긍한다.
이를테면, 미국산 소고기 괴담이 그러하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퐁퐁 뚫려 죽는다는 루머는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여고생들은 촛불을 부여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외국 영화 (특히 미국 영화)를 보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혹은 아프카니스탄, 이란, 이라크 전에 참전했다가 충격적 장면을 목도하고 전쟁 후유증을 앓다가 마약 등에 빠져 폐인이 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국군 역시 베트남 전에서 단단히 한 몫 했지만, 고엽제 후유증 외에, 전쟁의 참혹한 장면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전쟁에서 돌아와서도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그런 내용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본 적도 없고, 주변에 그런 이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질 못했다.
혹자는 한국 사람들은 정신력이 강하고, 외세침략을 수 없이 받았던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DNA가 있어서 잘 극복해낼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진짜 그런지, 포탄에 머리 절반이 날아가고, 창자가 쏟아져 내리는 처참한 장면을 보고도 정신적 충격 없이 허겁지겁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면서도 선전 선동에는 매우 취약하다.
소위 주사파가 만들어진 배경을 캐다 보면 그 실질적 배경이 참으로 기막힌데, 그럼에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는 김씨 가족을 숭배하고, 북한 공산당의 사상을 흠모 하는 이들이 버젓이 38선 이남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막상 주사파 이론을 만든 이는 진즉에 전향하여 북한 주민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종북에는 주사파 같은 노골적인 친북, 종북 세력뿐 아니라, 은근한 친북, 종북 세력도 있다.
이를테면, '난 김일성 일가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내지는, '북한도 아무리 못 산다고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고, 북한 욕 할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도 또 잘한 건 뭐야?'라는 것들이 그렇다.
또 이런 것이다.
“에이, 천안함이 북한 어뢰를 맞은 거겠어. 그냥 어디 암초를 들이박고 쪽팔리니까 북한 핑계를 대는 거겠지.”
이쯤 되면, 국민들은 알게 모르게 생기게 된 일종의 집단적 스톡홀름 신드럼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도의 공포의 댓가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불안과 공포를 이용한 대남 심리전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앞서 이야기한 절대절명의 공포의 대상, 즉 좀비를 대하는 자세에서 배우면 된다.
즉,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갖고 공유하는 것이다.
‘좀비는 머리를 날려 버리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라는 fact 말이다.
이 작은 정보는 좀비를 대응하는 ‘좋은 쪽’ 사람들에게 실날같은 희망을 안겨주고, 결국 좀비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이다.
루머에 잘 휩쓸리고 선전 선동에 약한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루머의 유포가 아니라, 근거가 있는 사실의 유포”가 중요한 대처 방법이다.
즉, 적극적으로 Fact 를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토대로 말이다.
지금 그 역할을 가장 잘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베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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