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3월 13일 : "유가 인하의 진짜 이유와 배경"







2018년 기준 원유 생산 1위는 전체 원유의 15%를 생산한 미국(669.4만톤)이며, 2위는 사우디로 12.9%를 생산했고 (578.3 만톤), 3위는 러시아 (12.6%. 563.3 만톤)이다.

이 세 국가가 생산한 원유는 전세계 생산량의 40.5%에 이른다. 그 밑으로는 4~5% 대 비중을 갖는 나라가 5개, 2~3% 비중을 갖는 나라가 5개 가량 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시장에서 이 세 나라의 입김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원유 생산 강국인 동시에 약점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약점은 전통적 오일 생산량에 비해 비전통적 오일 생산량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즉, 미국 원유 생산은 셰일 가스나 타이트 오일, 셰일 오일, 콘덴세이트 등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비전통적 오일의 생산 단가가 배럴당 40~50 달러로 비싸다는 것이다.

지역별 셰일가스 손익분기점


미국 전통적/비전통 오일 생산량과 가격 변동

미국 오일 공급 비중

셰일 가스, 타이트 오일 등 비전통적 에너지 생산 비중




애초 셰일 가스 등은 고유가 시대에 높은 생산 단가에도 불구하고 채산성이 있었기에 개발된 것들인데, 유가가 하락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사우디의 약점은 젊은 통치자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의 상장이다.

사우디의 경우 매장량도 풍부하고, 생산 단가도 배럴당 10불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다.

그런데 사우디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한다. 또 현재 실질적으로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는 빈 살람 왕세자는 아람코를 상장해 그 돈으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해 원유 의존도를 줄이려하고 있다. 그런데 유가가 떨어지면 아람코의 가치도 같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Aramco 의 주가 하락




러시아의 약점 역시 국가 재정을 원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생산량 80% 가량을 유럽에 수출해 소득을 올린다. 유가가 하락하면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푸틴의 지배력도 떨어진다.

그러나 러시아의 실질적 약점은 바로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4년 말, 사우디는 유가 인하를 단행했다. 유가를 낮춰, 미국 셰일 업체의 시장 진입에 장벽을 치고 이들을 고사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에너지 최강자의 자리를 미국에 넘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OPEC 회원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일 생산을 감축하지 않았고, 그 덕에 2014년 11월 말, 유가는 배럴당 100 불에서 60불 대로 떨어졌다.

당시 셰일 가스 업체들의 생산 비용은 배럴 당 70~90 달러에 달해, 사우디가 저가 전략으로 버티면 미국의 셰일 업체들이 파산할 것 같았다.

2016년 초에는 유가가 26~27 달러까지 떨어져, 실제 미국의 셰일 업체들은 큰 손실을 보았고, 파산하거나 회생을 신청해야 했고, 막대한 자금을 오일 생산에 투자한 투자자들 역시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미국의 오일 생산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셰일 업체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오히려 단단해졌다. 최초 배럴당 70 달러 이상이었던 생산가는 40 달러선까지 떨어졌다.

결국 저유가를 견디지 못한 OPEC은 감산에 들어가, 원유는 2016년 6월 경 다시 50 달러선을 회복했고, 40~55 달러 사이를 오가다 같은 해 11월 비 OPEC 산유국인 러시아과도 감산에 합의 하였고, 2017년 1월부터 감산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동안 유가는 40~60 달러를 유지했다.

사우디의 저유가 전략으로 2015~2016년 사우디와 러시아도 큰 피해를 보았고, 경제 펀더멘탈이 약한 베네주엘라, 나이지리아 등 일부 산유국들은 국가 파산까지 몰렸으며, 이란, 이라크, 리비아, 알제리 등 대부분의 산유국들도 재정 위기에 몰렸다.

러시아 역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했지만, 러시아는 당시 4,500 억 달러에 이르는 여유 자금이 있었고 결국 견뎌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유가 인하 치킨 게임은 여러 모로 2014년 말 유가 인하와 닮았다.

차이라면, 이번에 유가 인하를 시작한 건 사우디가 아니라 러시아라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아람코가 기업 공개를 하자, 슬슬 원유 감산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가 비 OPEC 회원국인 러시아에게 감산 연장을 제안한 건,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등 전세계 원유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유가가 하락하자 유가를 끌어올려 아람코 가치를 지킬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3월 6일 러시아는 사우디의 감산 연장을 거부하였고, 사우디는 그 보복으로 유가 20% 인하, 수출 1300 만 배럴 확대를 선언했다. 현재 사우디의 일일 생산량은 1000만 배럴이하인데, 4월에 당장 1230만 배럴을 생산하고, 비축유까지 내다 팔 기세이다.

현재 미국의 일일 생산량이 1300 만 배럴이다.

러시아도 질세라 현재 1130만 배럴의 생산량에 50만 배럴 더 증산해 약 1200만 배럴을 생산하겠다고 한다.

메이저 국가들이 이렇게 양산에 돌입하자 UAE도 하루 300만 배럴 생산량을 당장 400만 배럴로 늘리고 곧 500만 배럴 생산 체제를 갖추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많은 언론은 러시아가 OPEC의 감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2014년 사우디처럼 미국의 셰일 업체를 고사시킬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일까?




이 내막을 알려면, 먼저 사우디에서 지금 돌아가는 판을 알 필요가 있다.

사우디는 본디 초대 왕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다음 왕위를 이을 왕세제가 정해졌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아들들이 고령에 이르러 형제 왕위 계승이 어려워졌다.

2015년 현재의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이 등극했을 때, 배다른 동생이자 초대 왕의 35번째 아들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가 왕세제로 정해졌는데, 곧 바로 폐위되고, 살만 왕의 생모가 낳은 동생인 나예프의 아들, 즉 살만 왕의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를 다음 왕위 계승자로 정했다.







즉, 왕세제가 왕위를 이어받던 전통을 깨고, 왕세질을 차기 왕위 계승자로 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살만 국왕은 차기 왕위 계승자인 조카를 내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에게는 국방장관의 자리를 줬다.

차위 왕위 계승자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는 FBI 에서 4년간 교육받고, 영국 경찰청에서 다시 3년간 교육받을 정도로 친서방파이다.


무함마드 빈 나예프



그러나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2017년 살만 국왕의 친아들이자 사우디 서열 3위인 ‘무함마드 빈 살만’은 전현직 장관 수 명을 부패혐으로 체포하거나 사살하고, 500 명에 가까운 왕자들을 감금하였으며, 차기 왕위 계승자인 빈 나예프를 폐위시키고 가택 연금했다. 빈 나예프는 빈 살만의 협박에 못 이겨 왕세질 자리를 내놓는다는 각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이렇게 차기 왕위 계승자 (왕세자)로 스스로 책봉한 빈 살만은 사우디 개혁의 칼을 꺼내 들었다. 우선 발표한 게 NEOM 이라는 5천억 달러 짜리 신도시 프로젝트이다.

그는 사우디 국민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이제껏 금지했던 여성들의 운전을 허용하고, 개혁을 외치는 동시에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방문 시 3500 억달러 무기 계약을 맺었다. 이 약속들을 지키려면 빈 살만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왕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반 체제 인사를 탄압하거나 암살하기도 했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살해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쇼기 역시 빈 살만이 연루된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2019년 빈 살만은 미국 CBS ‘60분’에서 자말 카쇼기 사망 사건에 자신의 책임이 있으나 살해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다)

러시아가 사우디의 감산 요구를 거절한 건 3월 6일인데, 당일 빈 살만은 왕위 계승자리를 빼앗긴 사촌 빈 나예프와 그 동생을 반역 혐의로 체포했다. 뿐만 아니라 살만 국왕의 친동생이자 자신의 작은 아버지인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역시 체포했다.

이들은 모두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사우디에서 반역죄는 사형 혹은 무기징역이다.

이 같은 행위는 국왕의 유고시 이들이 자신의 정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살만 국왕의 건강은 좋지 않으며, 빈 살만은 이제 35세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감산 제안을 거절했고, 자신의 통치 능력은 위협받았다.

빈 살만은 자신의 능력을 국민들과 왕족들에게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러시아가 원유 감산에 동의하지 않자 꼭지가 돌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왜 러시아는 감산에 동의하지 않았을까?

뚜렷한 전략적 이유보다는 감정적 이유가 더 커 보인다.

우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14, 2015년 사우디가 주도한 유가 인하에 타격을 받아 깊은 유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에도 커다란 감정이 있다.

현재 러시아 가즈프롬은 노드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 라인과 유사한 경로로 가는 노드스트림2 를 건설 중인데, 여기에 러시아가 투자한 돈은 950억 유로(125조원)에 이른다.






이 파이프 라인이 완공되면 각각 연간 550억 입방미터 씩 1100 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유럽에 보낼 수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모두 폐쇄하고 에너지 자원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다량의 천연가스를 수입할 계획으로 있다.

만일 두개의 노드스트림이 완공되면 천연가스 수요의 75%를 러시아에서 충당하고 나머지는 비싼 값에 주변국에 팔 수 있다.

그런데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NATO 회의에서 ‘독일은 미국의 안보능력에 무임 승차하면서, 미국과 유럽에 위협이 되는 러시아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며 러시아의 에너지 포로가 되었다’ 며 메르켈 총리를 강력히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역대 미국 대통령 모두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볼모로 할 경우, 유럽이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판매하고 있는 천연 가스를 유럽 국가들이 구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셰일 가스 채굴로 얻은 다량의 천연 가스를 해외에 판매 중인데, 일부 유럽국가들도 이를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노드스트림2 가 완공되면 유럽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미국 의회는 2019년 12월 노드스트림2에 관련된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2020년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그러자, 러시아 외무장관은 즉각, ‘반듯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러시아의 감산 합의 거부는 사우디는 물론 미국에 대한 보복일 수 있다.

러시아가 감산을 거부하면 사우디가 이를 보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증산하고, 그 결과 유가는 더 폭락하게 되고, 사우디 국가 재정은 엉망이 되고, 빈 살만의 통치력은 약화되고, 사우디와 미국은 갈등을 빚게 되며, 미국의 셰일 업체들은 파산하거나 재정 위기에 부딪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미국 경제가 위험해질 수 있게 된다.

특히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은 베네주엘라와 러시아 사이를 갈라놓은 미국에 대한 또 다른 복수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초 마두로 정권의 돈줄인 베네주엘라 국영 석유회사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하고, 베네주엘라 원유 운송과 판매를 중계한 러시아 국영회사를 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다.

요즘 많이 쓰는 용어인 ‘상호주의’ 보복인 셈이다.

문제는 유가 인하는 러시아에도 임팩트가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산 거부를 한 건, ‘강한 러시아’의 면모를 보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있다.

우선, 올해 러시아 예산은 배럴당 42 달러에 맞춰 짰기 때문에, 40 달러 내외로 유지될 경우, 큰 재정 손실은 없을 것이며, 1700 억 달러에 이르는 국부펀드, GDP 32%에 해당하는 5700 억 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 4월은 장기 집권을 꾀하는 푸틴 대통령의 집권 20주년인 해이므로 대내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인하를 놓고 ‘소비자에게는 잘된 일’이라며 별 것 아닌 척 한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 인하로 기름을 붓는 꼴이 되자 전세계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하며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세 원유 대국의 리더들은 누구 배짱이 더 큰지 치킨 게임을 하고 있다.

사내들이란...



2020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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