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3월 31일 : "진짜 보험이 없다고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부했던 걸까? 알아두어야 할 미국 의료제도"







최근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당해 사망한 우한 코로나 확진 한인 10대에 대한 기사가 있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 의료제도를 이해해야 그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의료기관 이용의 원칙은 사전 예약이다. 하다못해 미장원도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없다. ‘손님이 왕’ 이라며 아무 때나 밀고 들어가 원하는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는 건 우리나라나 가능하다.

때문에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이 때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예를 들어 장염에 의한 구토 설사, 가벼운 호흡기 질환에 의한 고열, 손이 베이거나 발목이 삔 것 같은 가벼운 외상 등으로 응급실 치료를 받는 건 쉽지 않다.

이들에게는 치료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별도의 의료 시설이 있는데, 이를 walk in clinic 이라고 한다. 즉, 응급실처럼 1년 365일 진료하고 (그러나 대개 주간에만 운영한다), 작은 규모의 봉합을 할 수 있고, 예약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설이다.

이런 시설을 미국에서는 Urgent care center 라고 하고, 영국에서는 Urgent treatment centre, 캐나다에서는 Walk in clinic 이라고 한다. 이 곳은 응급실이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우리나라 의원에 가깝다.

예약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으므로 편해 보이지만, 예약없이 이용하려는 환자가 차고 넘쳐 대개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Urgent care center 의 1/3 은 우리나라 의원처럼 의사가 소유하고 운영하며, 1/3 은 병원에 딸려 있고, 1/3 은 프랜차이즈나 다른 형태로 운영된다.

문제가 된 한인 10대는 이 곳을 간 것이다. 이 곳은 미국내 다른 의료기관처럼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이곳에서 치료하기 곤란하거나 증상이 중할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응급실은 어떤 응급 환자의 진료도 거부할 수 없다.

미국에는 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 (EMTALA) 이라는 응급의료법이 있고, 이 법은 보험의 가입 여부, 진료비 지불 능력 여부, 시민권 보유 여부 등과 관계없이 응급 환자는 무조건 치료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즉, 진료비 지불 능력을 기준으로 환자 치료를 거부하거나 타 병원으로 전원시킬 경우 위법이며, 처벌을 받는다.

보험이 있던 없던, 외국인이든 아니든 응급 환자는 무조건 치료부터 해야 한다. 치료비는 그 다음 문제이다. 대개 지불 능력이 없으면 미국 정부가 부담하거나 병원에 기부된 재원 등으로 처리한다.

물론 응급 환자여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응급 상태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a condition manifesting itself by acute symptoms of sufficient severity (including severe pain) such that the absence of immediate medical attention could reasonably be expected to result in placing the individual's health [or the health of an unborn child] in serious jeopardy, serious impairment to bodily functions, or serious dysfunction of bodily organs.”

“즉각적인 의료 개입이 없을 경우, 심각한 위험이나 심각한 신체 기능 저하, 심각한 장기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환자 (태아 포함)에서 나타나는 매우 심한 통증를 포함한 충분한 중증도의 급성 증상을 나타내는 상태”

조금 애매모호해 보이는 이 규정에 따라 응급 상태의 판단은 의사가 내린다. 의사가 응급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진료가 거부되거나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의사가 응급 상태라고 판단하면, 그 환자는 보험 없이도 수 만 달러에 이르는 진료를 ‘공짜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졌다고 응급실 가서 수액 맞으며 코골며 자고 나오거나, 응급인데 빨리 안 봐준다고 난리치며 의사를 때리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한때 한인 유학생들이 이 규정을 이용해 분만에 임박해 응급실로 가서 무료 분만을 받기도 했다. 분만도 거부될 경우, 태아에게 위중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어 응급 상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정상 분만은 보험이 없을 경우 최소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의 병원비가 필요하다.

문제의 한인 10대 경우, Urgent care center 에서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치료 능력을 벗어난 것으로 보고 응급실로 가라고 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또 그 10대는 단지 고열이 나니 응급실로 갈 생각을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상황을 단지 보험 소지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우리나라도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이 있고, 이 법에 따라 응급 환자는 진료비 지불 능력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응급실 뿐 아니라 그 어떤 의료기관도 의료비를 문제 삼아 진료거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만일 응급 환자가 진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안되면 응급의료기금에서 진료비를 대납하고, 환자나 그 가족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 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오래 걸리므로 병원이 이를 통해 보상받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아래 기사의 타이틀은 ‘의료보험이 있었더라면...’ 이라고 붙여서는 안 된다. ‘의료제도를 잘 알았더라면...’ 이라고 바꾸어야 한다.


[관련 기사]
의료보험 있었더라면..."美 코로나 사망 17세는 한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30/2020033004830.html




2020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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